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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가 장안의 화제다.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 한 편이 높은 완성도의 한국영화를 갈망해온 국내 객석의 환호를 받고 있다. 완성도 높은 한국영화에 대한 갈망은 곧 자국 영화에 대한 자부심을 갈망함에서 비롯된다. 자기 나라와 자기 민족에 대한 자부심은 어디에서나 발견된다. 사람들은 자기 소속 집단, 선택이 아닌 운명적으로 그 소속이 결정되어버린 공동체에 대해 자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국의 영화 뿐만 아니라 스포츠 행사나 기타 문화적 우위를 과시할 수 있는 일들에 열광한다. 반면에 국보 1호를 불태워 먹는다거나 하는 일에는 무한한 쪽팔림을 경험한다. 그러나 안심하라. 우리나라만 유난스러운 건 결코 아니다. 애국주의 마케팅으로 한 두 건 올리는 경우는 여기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쪽팔림과 자부심에 대한 갈망은 동전의 양면이요 같은 배에서 나온 이란성 쌍둥이나 다름이 없다. 쪽팔린 일이 아직 많다보니 자부심에 대한 갈망이 약간 강할 뿐이다. 쪽을 팔 일이 적어지고 지난 일들을 상기할 일이 없어질 때 즈음 과도한 갈망 역시 고개를 숙이게 될 일이다.

물론 <추격자>는 애국주의 마케팅(그 자체만으로는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화다. <추격자>에 대한 지지에서 그런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그건 결과론일 뿐이다. 내용으로만 보면 오히려 그 반대다.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조롱하고 우리 이렇게 살아도 되냐고 질문하는 영화다. 그럼에도 <추격자>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영화이고 그래서 한국영화에 대한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게 한다. 요즘 우리나라 영화 관객들은 한국영화 보는 걸 몹시 좋아하는데 문제는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큼 완성도를 갖춘 영화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거품 경제를 토대로 피어났던 1996년의 르네상스와 이후 2003년 황금의 해를 통과하기까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이전 보다 많이 좋아진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만 여전히 만들어지는 숫자에 비해 충분하게 만족할만한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추격자>는 완성도의 가뭄 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잘 자란 묘목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묘목을 잘 키워서 2008년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거목으로 키워주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추격자>가 남긴 가장 값진 선물은 무엇보다 한국영화의 훌륭한 성공 사례다. 엄청나게 고된 여건에서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한 편의 성공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은 대규모의 투자나 얄팍한 컨셉에 스타 캐스팅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영화를 직접 만드는 이들의 치열한 근성과 재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작품이 <추격자>다. 그리고 <추격자>는 그렇게 기억되어야만 한다. 이번 기회에 작품을 선택하는 관객들의 요구 수준이 이 정도라는 점을 한국 영화계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적당한 기획으로 만들어 놓고 배급력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돈 놓고 돈을 절대 먹을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저예산 상업영화나 독립영화 쪽도 마찬가지다. <추격자>는 이러저러한 점이 잘 되었다고 조목조목 설명할 필요도 없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만든 이들의 성실함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장르나 내용, 주제가 좋고 나쁨을 떠나 관객이 영화를 통해 '정성들여 만든 느낌'을 얻는다는 건 작품이 관객들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과정에 있어 아주 기본적인 사항이고, 이는 뛰어난 재능과 용기를 앞세우기 보다는 엄청나게 길고 고된 과정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추격자>는 나홍진이라는 걸출한 신인 감독을 또 하나의 선물로 안겨주었다. 데뷔작에서부터 뛰어난 재능과 근성을 보여준 감독들은 많지만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영화 팬들은 <추격자> 한 편으로 한국영화계의 일약 유망주로 떠오른 나홍진 감독의 존재를 몹시 반가워한다. 그가 앞으로 선보일 완성도 높은 영화들을, 그리하여 감상 자체가 만족스러울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국영화에 대한 자부심마저 느낄 수 있게 해줄만한 작품들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홍진 감독의 존재는(나아가 이 영화에 참여한 주요 스텝들의 존재는) 관객들 보다도 기존의 감독들이나 앞으로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상당한 자극제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값지다. 앞으로 나홍진 감독과 같은 신인 감독들이 더 많이 나와주길 바라는 마음 또한 인지상정이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는 관객이 알 바는 아니다. 관객이 할 일은 기성 감독이든 신인 감독이든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에는 좋은 대로, 미흡한 작품은 미흡한 대로 직관적으로 반응해주는 일 뿐이다.


그러나 <추격자>가 우리에게 남겨준 건 값진 선물만이 아니다. 이제부터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추격자>가 상당히 잘 만들어진 한국영화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질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양적인 면에서도 성공적인 작품으로 남게되길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지만 <추격자>는 개인적으로 마음 편히 환호해줄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다. 모방 범죄가 걱정된다는 얘길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흥미롭게만 바라볼 수 없었던, 뒷덜미를 잡아끄는 무엇인가가 분명 있었는데 이후로 이 영화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반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래서 감독 인터뷰 등의 관련 기사를 읽어보며 그 정체를 알고자 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추격자>와 유사한, 그러나 <추격자>와 같지 않았던 다른 영화 체험들을 기억해내고 또한 비교했다. 그리하여 <추격자>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는 이유를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과 논리에 근거해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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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랑스 영화감독인 가스파 노에(Gaspar Noe)의 2002년 작품이다. 장편 데뷔작 <아이 스탠드 얼론>(1998)을 통해 자신의 반사회적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낸 바 있던 가스파 노에는 벵상 까셀과 모니카 벨루치를 꼬드겨 전무후무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과 같이 시간 흐름의 역순으로 배치된 롱테이크 씨퀀스들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다룬다. 젊은 연인이 파티에 갔다가 말다툼을 하게 되고, 집으로 가려던 여자(모니카 벨루치)가 지하보도에서 괴한에게 폭행을 당한다. 애인의 처참한 몰골을 뒤늦게 발견한 남자(벨상 까셀)이 괴한을 추적하고, 마침내 지하 SM 클럽에서 발견한 괴한(이라고 생각한 남자)을 그 자리에서 죽인다는 얘기다. 살인 장면은 일반적인 극장 상영용 영화에서 허용되는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고 원테이크로 처리되는 성폭행 장면은 상상을 초월한다. 폭행 자체만 무서운 것이 아니라 특별한 폭행의 동기가 없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장면이었으며 그 긴 시간 동안 지하보도를 지나가려던 다른 행인이 발길을 돌리는 모습 또한 너무 사실적인 만큼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화 촬영 후 모니카 벨루치가 병원에 입원을 해야만 했었다는 <돌이킬 수 없는>을 나는 2003년의 본 영화들 중 베스트 10의 하나로 꼽았다. 영화는 너무 힘들었지만 완벽하게 통제된 잘 만든 영화라는 사실과 이 영화를 통해 전달받은 정서적인 충격(끝까지 보면 역겨움과 두려움만 있는 영화는 아니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현 방식에서나 영화가 다룰 수 있는 내용 자체에 어떠한 제한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가능/불가능과 호불호를 정하는 것은 만드는 이와 관객이지 정부 기관이나 평론 집단과 같은 제 3자가 미리 할 일은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을 지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전달한 정서적 충격이 감내할만한 수준이었던 탓도 있었지만(아마도 어떤 관객들은, 특히 여성 관객들은 도저히 감내가 안될 수도 있다) 그것이 외국 영화,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닌 장소에서 내가 어울려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연기한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엔 별의별 영상물이 다 있고, 심지어는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찍은 스너프 필름이라는 것도 있다. 그걸 만드는 사람들도 엽기지만 그걸 구해다 보는 수요층이 있다는 것, 그리하여 상업적으로 유통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엽기다. 그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끔찍한 장면을 감내하고 또한 어렵지 않게 잊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판타지로 인식되기 때문이고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된 영화라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연출된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연기하는 티가 나고 영화 찍은 티가 나는 허술한 영화가 좋을 리는 없다. 가급적이면 영화를 보는 동안 만큼은 정신없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가 잘 만든 영화다. <돌이킬 수 없는>은 저것이 실제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사실적인 영화다. 하지만 충분히 객관화가 가능하다. 나와는 관련이 없는 딴 세상 이야기라고 묻어둘 수 있는 영화다.

<추격자>는 잘 만들어진 그 만큼의 정서적인 충격을 주는 영화다. 더군다나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그리고 실제 있었던 연쇄살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만든 영화다. 한국 영화가 한국적인 소재로 그렇게 끔찍한 이야기를 너무 사실적으로 보여주니 외국 영화 볼 때와는 이야기가 다르다는 얘기다. <추격자>는 다양한 부분에서 기존의 한국 영화로부터 진일보한 만듬새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중에 하나는 끝내 미진(서영희)가 영민(하정우)의 장도리에 맞아죽는 것으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주인공 중호(김윤석)가 애타게 찾으러 다녔고 또한 어린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당연히 살아남을 것으로 기대하는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도식을 벗어났다는 점 자체는 칭찬 받을만 하다. 하지만 <추격자>의 이 장면에서 받은 일부 관객들의 충격은 예상할 수 있었던 수준 이상이다. 영화 한 편을 보고 관객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면, 예를 들어 대인기피증과 같은 노이로제 증세라도 얻게 된다면 그건 영화가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이 상업적인 고려에 의한 것이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작품 지상주의에 의해 의도된 것이었다면, 그러니까 일부 여성 관객들의 과도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런 장면들을 타자화해서 봐줄 수 있는 관객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이루어졌던 것이라면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추격자>와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는 유사점이 상당히 많은 작품이다. 싸이코 패스 계열의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는 점 외에도 영화가 남겨주는 씁쓸한 패배감과 좌절감은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끔찍한 장면이 많기로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쪽이 훨씬 심하다. 그러나 지켜야 할 선은 지킨다. 바로 굳이 안보여줘도 될 장면은 안보여주고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추격자>는 작품의 의도와 흐름 상 미진이 영민의 손에 의해 죽는 것이 맞다. <추격자>는 미진의 머리가 영민이 휘두르는 장도리에 찍히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만 않을 뿐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미니멀한 음악을 배경으로 영민의 클로즈업된 얼굴과 방 안의 사방 벽에 미진의 피가 튀고 마지막에는 눈을 뜬 채 의식을 잃은 미진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데 장도리에 맞아 흔들리는 모습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어디까지나 연출된 장면이라는 걸 감안하여 보는 사람도 있고 이 장면을 계기로 영민과 중호의 짐승 같은 싸움에 활력이 붙었다는 사실과 영화 전체가 상업영화의 울타리에서 박차고 나왔다는 사실은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이 장면에서 은근한 쾌감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와는 정반대의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르롤린(조쉬 브롤린)의 아내 칼리진(켈리 맥도날드)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건 다름 아닌 관객을 위한 최후의 배려다. 더군다나 우리에겐 외국 영화로서 현실감마저 덜 하다. 영화를 통해 얻는 서스펜스와 몸이 아프고 후유증이 올 만큼의 정서적 충격은 분명 다른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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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한국영화로서 끔찍하기로 이름난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1)은 <추격자>가 또 다른 맹점을 지적하기 위한 비교 대상이다. 기술적인 완성도와 사실적인 묘사로 치면 <복수는 나의 것>이 몇 수는 위다. 그러나 <복수는 나의 것>의 인물들은 관객이 납득할만한 동기를 갖고 있다. 류(신하균)는 죽은 누나에 대한 원한과 장기매매단과의 거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이유로 살인을 한다. 동진(송강호)는 죽은 딸에 대한 원한 때문에 영미(배두나)와 류를 고문하고 살해한다. 끔찍하기로는 동진 앞에서 자신의 배를 칼로 긋는 팽 기사(기주봉)도 마찬가지지만 그 심정이야 불을 보듯 뻔하다. <복수는 나의 것>은 원한과 복수의 굴레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관객은 각각의 분명한 동기를 지닌 등장 인물들을 타자화하며(그런 끔찍한 사연이 자신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자신도 그와 같은 방식의 복수를 고려할 일 조차 없을 것이므로) 유유히 극장을 빠져나가게 된다. 연민은 챙기고 극장에서 목격한 악몽을 잊는 것이다. 물론 <복수는 나의 것>은 국내 관객들에게 철저히 버림받은 작품이 되었다. 한국영화라서 도저히 남의 일 같지가 않은 데다가 개운하게 입가심도 시켜주지 않은 영화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보완한 작품이 <올드보이>(2003)였고 <친절한 금자씨>(2005)도 끔찍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한발 더 나아가 그런 방식의 대응이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해 나직하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추격자>는 복수극이 아니라 무차별적인 연쇄살인을 소재로 하는 영화다. 뚜렷한 동기가 없는 살인이니 길 가다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관객들은 그와 같은 일이 지금도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심지어 사법 제도와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잡았던 범인들조차 유유히 다시 걸어나올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감독은 그런 현실에 대한 분노에서 출발했고 그 분노를 영화 속에 잘 담아냈다. 그러나 여기에 공노하며 영화의 흐름을 계속 따라갈 수 있는 관객은 주로 남자 관객들이다. 다행히 여자 범죄자에 의해 남성들이 연쇄살인을 당한 사례는 적어도 국내에는 아직 없기 때문에 영화 속의 상황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히 여성 관객의 경우 그런 장면에 공노만 할 수가 없다. 당장의 두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진을 살려둘 수는 없었는지, 그게 아니라면 영민이 구멍가게에서 나오고 이후에 경찰들과 동네 사람들이 몰려든 장면만으로 미진이 죽었음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정말 부족했던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미진은 영민이 불러 살해해온 창녀들 가운데 하나였다. 유영철 사건 이후 희생자들에 대한 직업적 편견을 접한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를 보고 출장 마사지 여인이 죽지 않기를 바라도록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리하여 미진은 어린 딸 하나를 부양하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나마 몸이 아파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중호의 협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나갔다가 변을 당한다.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은 미진을 특이한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 내 누이, 내 가족의 하나와 마찬가지인 현실적인 여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미진이 살아남기를 바라게 되고 마침내 죽었을 때에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추격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요소가 감독의 의도대로 잘 만들어진 영화다. 그러나 너무 잘 되어서 탈이다. 유영철의 희생자들에 대해 '그럴만 한 부류'라고 생각하거나 김선일씨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너도나도 달려들었던 세간에는 이 영화를 통해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해 달리 바라보게 해주는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을테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은 김선일씨의 소식만 전해듣기만 했을 때에도 이미 고통스러워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추격자>는 성취를 담보로 넘지 말았어야 하는 선을 넘어가버린 영화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통해 직접 느낀 부분은 아니었으나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 읽던 중에 의외라고 생각되었던 부분을 언급하고자 한다. 나홍진 감독은 극중 영민과 같은 연쇄살인범들에 대해 "원래 그런 놈들이다"라고 말한다. 심지어 극이 진행되면서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결국 중호까지도 영민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 말종들을 키우고 방치하는 시스템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이고 또 그것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얘기는 이런 류의 영화를 숱하게 봐온 관객의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의 학대로 인해 성격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대목은 이제 지겹다. 차라리 <추격자>의 영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 <친절한 금자씨>의 백 선생(최민식)과 같이 굳이 설명하지 않는 편이 낫다. 어차피 유전적인 요소도 있다지 않는가. 굳이 두둔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뭔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그런 캐릭터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는가라고 본다. 안톤 쉬거는 그 자체로 피도 눈물도 없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형상화한 캐릭터이고 백 선생 역시 재미삼아 유아들을 살해하는, 그리하여 살려둘 가치가 전혀 없는 말종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말종에 대한 복수에 대한 복수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한 장치였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영민은 너무 현실적인 악몽이다. 그 역시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영화 속 캐릭터로만 끝나지를 않는다. 더군다나 김윤석의 카리스마를 압도하는 하정우의 연기로 인해 더 강한 잔상을 남겨주기까지 한다. <추격자>에서 시스템의 불완전함은 누구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주변 환경으로만 남게 되고 결국 강조되는 건 하정우가 연기한 영민의 극악한 캐릭터다. 나는 적어도 나홍진 감독이 이런 캐릭터를 사용할 때에는 나름의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균형있는 시각을 갖고 있기를 바랬다. 최소한 "원래 그렇다"는 식은 아니길 기대했다. 그리하여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작품 의도상 접을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해주길 바랬다. 경찰 조직과 사법 제도의 결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경각심을 일으키고 공론화를 하고자 했던 의도가 전혀 없다. 단지 분노할 뿐이다. 그 분노의 힘으로 완성도 높은 한국영화 한 편이 나오게 된 것이지만, 그리고 이런 정로의 완성도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굳이 고민을 할 필요조차 없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된 것과 그걸 얻는 과정에서 무시된 '지켜주었으면 했던 어떤 것들'을 맞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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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예전에 알던 어떤 분이 윤제균 감독의 <낭만자객>(2003)을 호되게 비판하는 걸 들었던 기억이 이제사 난다. 그 양반 얘기가 "영화에는 넘어서는 안될 선이 있다고 믿는데 <낭만자객>은 그 선을 넘어버렸다. 악당이 어린 아이를 활로 쏘아서 맞추고 아이는 공중을 붕 날아 뒷쪽의 나무에 막혀 죽더라"는 거였다. 나와는 영화 취향이 많이 다른 분이었고 <낭만자객>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영화가 전혀 아니었지만 아무튼 꽤 인상 깊은 이야기였다. 영화의 표현 방식에 아무런 제약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내 생각과는 부합되지 않았음에도 영화의 흐름상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게 관객에게 보여졌을 때에는 극장에서는 절대 보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을 건드릴 수가 있겠구나 했다. 그러고 잊었었는데 같은 이야기를 내가 하게 될 줄이야.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7 : Comment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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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ddr | edit/del | reply 이명열 2008.02.24 16:01

    글 잘읽었습니다. 영화 보고 여운이 많이 남던 영화 였는데 기타 설명이나
    느끼셨던 부분을 면밀히 적어 놓으셔서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물론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안타까운 면이 많지만
    한국영화가 이런식으로 발전에 계기를 만든다면
    앞으로 더욱더 완성도 높은 영화가 나올거 같네요
    잘 읽고 갑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5 01:49 신고

      제가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은 말씀은 결국 그겁니다. 더 좋은 한국영화가 많이 나와주길 바란다는 거죠. 어찌보면 저와 같은 소수 관객들의 반응도 관찰할 수 있게 해준 점 또한 '더 좋은' 한국영화들이 만들어지는 데에 <추격자>가 일조하게 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만 <추격자>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한답시고 '선 넘기'에만 앞다투어 몰두하는 경향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확실히 잔인하죠. 2008.02.24 16:57

    물론 단순한 장면의 잔인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김미진의 죽음으로 받는 관객들의 충격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두고 영화의 선을 운운하는 것은
    정말 주관적인 차원에서나 가능하리라 보네요.

    단순히 관객에게 충격을 주고 잠재적인 공포심을 심어 주는 것만으로
    영화의 선을 운운하는 것이라면
    밤새 잠못들게 하는 공포영화들은
    그런 점에서 현실에서 훨씬더 큰 영향을 주는 작품들이
    많을 듯 합니다.

    물론 하나의 영화에 대해 영화를 본 사람의 수 많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혹시나 영화를 안 보신분들이
    이 평만을 보고 고정관념이나 선입관을 가지지는 않았으면 하네요.

    스스로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만명의 평론가로 부터 듣는 것 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아일랜드 2008.02.24 17:40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은 영화 한 편을 봤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치밀한 구성력과 숨막히는 흡입력에 시간 흐르는 줄 모르고 영화를 봤었습니다. 그러나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그간 겪었던 감정의 찌꺼기들에 대한 그 해답을 찾은 느낌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그날 밤,, 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악몽을 꾸었습니다. 좀 잔악한 내용이었지요.. 영화 속과 비슷한 그림들.. 그 후로 며칠, 머릿속엔 살해 장면이 자꾸 떠오르고,, 영화 속 피해자들처럼 두려움에 떨었을 실제 피해자들의 공포를 생각하니 마치 제가 겪은 양 그것들에 옥죄며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치게도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모든 것을 집약한다면 그것은 '공포'.. 조금의 연민이나 아주 작은 일상적 시선이라도 남겨 주었다면,, 즉 님께서 말씀하시는 넘어서는 안 될 선,, 그 선을 지켜주었다면 조금은 두려움이 개였을 것이고, 인간에 대한 작은 예의의 선, 아니 예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아주 작은 신뢰의 선만이라도 지켜주었다면 조금 덜 씁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서야 님 글을 읽고 그렇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영화 속 그 공포와 맞닥뜨릴 것만 같은 기묘하고도 기분 나쁜 그런 기분,, 이것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것도 사회적 문제를 걸치고 나온 영화들이 조금은 정리해 주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 이렇게 관객의 지적 수준에도 부응할 수 있는 '좀 잘 만든 영화'가 꾸준히 나오기를 바랍니다만,, '선'을 지키고 '인간'을 지키는 영화가 되어 준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5 02:05 신고

      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요점에 가장 가까운 댓글이시네요. 물론 그 선이 어디까지냐, 인간을 지킨다는게 과연 무엇이냐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요. 저도 "앞으로 이렇게 관객의 지적 수준에도 부응할 수 있는 '좀 잘 만든 영화'가 꾸준히 나오기를 바랍니다만, '선'을 지키고 '인간'을 지키는 영화가 되어 준다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5. addr | edit/del | reply 지나가다 2008.02.24 21:12

    살인하는 이유가 안나왔다고 생각하시는분들이 많네요,,
    이유는 나왔었습니다,,
    심문하는 과정에서,,
    성불구자임이 나타나고,,
    못을 자신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그렇게 말하자,, 열내는거 보면 그이유가 맞는듯,,

    하튼,, 이렇게 신드롬이 일어날 정도의 한국영화는 아닌듯합니다,,
    요새 워낙 잘만든(관객의 관심을끄는) 한국영화가 없어서 그랬지,,

    이정도의 관심중 일부라도,,
    천년학에 쏟아졌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영화가 굳이 오락이라면,,
    한국영화를 사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6. addr | edit/del | reply 2008.02.24 21:39

    비밀댓글입니다

  7.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epoche 2008.02.25 00:42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코엔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훨씬 잔인하진 않었던 거 같습니다. 오히려 추격자가 잔인하면 했지요.

    영화를 만드는 자가 관객을 배려한다면 스릴러나 느와르 혹은 호러같은 거 자체를 만들지 않었어야하는 거 아닌지 합니다.

    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다분히 개인적인 아쉬움이신 것으로 이해를 해도 될런지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5 01:24 신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추격자> 보다 더 잔인했다는 건 살상 장면과 신체 훼손 장면이 좀 더 적나라하게 했다는 겁니다. 영화가 정서적으로 전달하는 잔인함은 <추격자>가 더 강하게 느껴지죠. 잘 만든 한국영화이고 우리가 한국에서 사는, 앞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켜졌으면 하는 선이 무너졌음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 맞습니다. 그 선을 객관적으로 정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제가 <추격자>가 선을 넘었다라고 언급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시는 다른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은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격자> 보다 쎈 영화들이 많았지만 이런 정도의 반응이 나온 적은 거의 없었어요.

  8. addr | edit/del | reply 류명선 2008.02.25 03:05

    난 여자이지만 그렇게 잔혹하다고 생각은 안들어서 안했고, 그만한 사회의 병리와 병폐, 사이코패스에 대해 일종의 경종을 울리는 세심하고 깊은 잔혹함?이라 봤는데 ...
    왜 실천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니까 거북했냐?
    말로만 뭐라하지말고 잘못한 것들 혼내줄 수도 있잖아, 그래야 정신도 차리고???

  9. addr | edit/del | reply 같은 사람 2008.02.25 03:14

    왜 여자들이라고 글 쓴이는 도매금으로 여자들을 매기는지..
    국민들이란 이름 제 멋대로 올리고 팔아먹는 사람들같이 영화평쓰는 자가 여자를 도매금으로 입에 올리는데 옛날부터 쭈욱 한심하고 짜증났거든, 영화 친구때부터~~~ㅋ
    쓸데없는 사족에 가까운 평이데 꼼꼼히 다 정독은 못했지만 제목보고 들어왔더니...

  10. addr | edit/del | reply 동감하기 힘든점 2008.02.25 09:29

    나홍진 감독의 "원래 그런 놈들이다"라는 것의 의미를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무슨 나홍진 감독의 대변인도 아니겠지만,
    좋은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저기 산이 있으니 오른다라는 것처럼,
    원래 그것을 아무 이유없이 즐기는 살인자들이 있다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싸이코패스지요.
    싸이코패스에 대해 감독이 인터뷰에서 대안이나, 또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좀 지나친 기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5 17:24 신고

      나홍진 감독이 '원래 그런 놈들이다'라고 이야기한 대상은 지영민만이 아니라 지영민과 엄중호 둘 다 였어요. 대책없는 정신질환성 살인마에 대해서만 그렇게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게 아닙니다.

  1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호박 2008.02.25 11:50 신고

    추격자.. 꼭보고싶은 영화에요~
    신어지님 리뷰 꼼꼼히 살펴보며(생각하며) 추격자를 볼생각입니다^^

    좋은글 감사하구여! 새로이 한주를 여는 월욜! 오늘도 좋은일만~ 좋은일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자아자 화이팅요(^^*)// 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5 17:21 신고

      기왕 보시기로 하신 거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말고 사전 정보 없이 보시는 편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스포일러가 무척 많은 글입니다만 <추격자>에 대해서 만큼은 스포일링을 좀 해야되겠다 싶었던 마음이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요.

      좋은 하루되시구요. ^^

  12. addr | edit/del | reply gg 2008.02.25 15:42

    두사부일체에서 코미디만 빼면 추격자라는 소리가 와닿는다.

  13. addr | edit/del | reply -_- 2008.02.26 10:17

    잘 만든 영화지만 두번 보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술마신 다음날 시원하게 오바이트한 느낌이에요.
    속은 뚤리지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ㅎㅎ

  14.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꼬동 2008.02.26 10:29 신고

    엄청 기네요.. ㅋㅋ 암튼.. 재밌었습니다~
    트랙백하구 가요~

  15.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건포 2008.02.26 12:40 신고

    제가 느꼈던 불쾌감의 원인이 저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선을 넘었다'라는 얘기 말이죠. 잘 읽었습니다.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6 12:47 신고

      아예 판타지라면 아무리 더 잔인하고 엽기라 하더라도
      상관 없겠죠. 잘 만든 한국영화라서, 그리고 저 역시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16.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댕글댕글파파 2008.02.26 14:29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은 전혀 없이 그냥 하정우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본 영화입니다. 우리나라 영화에 아직까지 크게 기대를 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그냥 잠시 눈만 즐기다가 오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예매를 하고 봤습니다. 헌데 그게 아니더군요. 오랜만에 정말 멋진 한국 영화를 본 듯 해서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 까지 일어나질 못하겠더군요. 만 하루도 안되는 시간을 영화에서 어떤 식으로 나를 지겹지 않게 보여 줄 수 있을까? 라는 저의 의문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신어지님의 말씀처럼 결국 미진이가 죽게 되는데 아마 제가 남자라서 그런지 그 장면이 아니 그런 스토리 전개자체가 좋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반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에겐 반전이 아니라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평이라는 건 머리에 든게 없어서 잘 못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한국영화를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돌이킬수 없는의 그 지하보도에서의 강간 장면은 아직도 머리에서 생생하네요. 당시 그 장면을 보고 너무 충격을 먹어서 그런지....ㅡ,.ㅡ

    신어지님의 글을 보고 영화에서 지켜야할 마지노선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은 드네요...
    그래도 뭐...전 그 장면이 좋았습니다. =ㅁ=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6 16:27 신고

      상당한 '발견의 기쁨'을 누리셨군요. 부럽습니다. 저도 <추격자>를 통해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얻고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고 몰입도 잘 안되고 그러다 말았어요. 잘 만든 건 알겠는데 마음 한 켠이 찜찜한 이게 뭘까, 생각하다가 글을 쓰게 됐습니다. 이게 다 상당히 잘 만들어져서 그런 탓이기도 합니다. ^^

      영화에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란 걸 객관적으로 정하기 어렵죠. <추격자>가 넘어섰다고 판단한 그 선은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인 선입니다. 저도 의식하지 못했던 걸 이번에 알게 된 거죠. 사실 <돌이킬 수 없는>이 넘은 표현의 선에 비하면 <추격자>는 약과죠. 하지만 한국영화이기 때문에, 미진에게 감정이입이 되도록 의도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평소와 같이 영화로서만 봐둘 수가 없었어요.

  17.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배트맨 2008.02.27 09:3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제던가 이 본문 글을 읽어내려 가다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야기도 나오길래 순간적으로 스포일러성 글이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어서 읽다말고 바로 빠져나온 후, 오늘 나머지 내용을 다 읽어보았습니다. ^^*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요. (비슷하다는 뜻이 넓게 봐서 같은 맥락의 가치관이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 그리고 해외 저질 영화의 공통적인 단점은, 꼭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연출을 하여 의도한 바를 이뤄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움입니다.

    보여주지 않고도 충분히 의도한 바를 이뤄내는 감독들과 작품들을 종종 우리들은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 부수적인 댓가로 그들은 명성을 얻는 것일테고요.

    <추격자>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이러한 요소들이 비교되는 정말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저도 어제 상영관에서 스탭롤이 올라갈때 똑같은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가치관의 차이보다는 이런 것이 바로 재능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덧말 - 상영관의 환경과 분위기가 정말 최악이였었지만, <노인을...> 영화는 정말 좋더군요. 대학로까지 어려운 걸음을 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7 22:13 신고

      사실 <추격자> 말고도 다른 영화의 스포일러들까지 잔뜩 있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무시해버렸어요. 지혜로운 방문자께서는 알아서 피해가시리라 믿으면서. ㅎㅎ

      직접 보여주느나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암시만 하느냐의 선택 앞에서 연출자들이 항상 갈등하는 것 같습니다. 돈이 많이 들어간 상업영화일 수록 제작자들의 입김이 커지게 되고 그래서 원치않게 노골적인 '직접 보여주기'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리하여 영화는 다행히 잘 만들었을 경우에는 보는 동안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 별로 기억하거나 되새김질 할 꺼리가 없는 평작이 되어버리는 거죠. 그러나 <추격자>는 보통의 상업영화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후유증'을 남겨준 작품이라고 생각되네요. 다른 한국영화들이 앞다퉈서 '노골적인 묘사'에 골몰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떤 환경에서 보더라도 정말 좋은 영화는 역시 좋을 수 밖에 없죠. 좀 더 나은 분위기에서 볼 수 있으면 더욱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작품 자체의 가치를 깎아먹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정말 좋은 영화일 경우에는 그렇더라고요. ^^

  18.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라면한그릇 2008.02.27 10:30 신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보셨고 간단히는 리얼하게 끔찍하다. 집에 오는길이 무섭다 등등의 간단한 평부터 신어지님이나 트랙백거신분들처럼 리뷰와 의견게시등으로 블로그스피어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긴 하네요.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봐버리고 나면 그냥 안보게 되는 삐뚤어진 버릇이 있어서 흐흐.볼지 안볼지 모르겠네요. (온갖 리뷰는 가능한 다 무시하고 있습니다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ㅎㅎ)선을 지켰어야 한다 하신 부분은 참 공감이 가요.그게 참 미묘한 차이죠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7 22:21 신고

      제가 이 글에서 제기한 이슈를 제외하고 순전한 개인 감상은 따로 리뷰에 적어두었어요. 잘 만든 건 알겠는데 저로서는 특별한 발견의 기쁨은 없었습니다. 배우들 연기 잘하는 거 원래 알고 봤고 신인 감독이 끝내주는 영화 만들었다고 소문을 듣고 봤던 터라 그저 확인하는 정도였죠.

      지켜줬어야 할 선이라는 거 개인마다 다 달라요. 공연윤리 심의위원도 아닌 바에야 그게 이러저러한 것들이다하고 정리해둘 필요는 없는 거고, 아무튼 <추격자>는 선을 넘어버린 영화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 덕에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요. ^^

  19. addr | edit/del | reply 라이 2008.03.03 10:52

    신어지님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거 보고 참 개운치 않았습니다. 이 영화 보고 '잔인하다'는 말 밖에는 할말이 없다고 했는데, 신어지님이 말씀하신 얘기가 일맥상통하는 얘기입니다. 저는 슬래셔, 고어 류에 굉장히 면역도 많고 영화가 보여준 어떤 시각적 효과의 사실성 때문에 잔인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어지님 말대로 '사실적'이기만 하다는 거지요. 아무리 잔인하다고 하더라도 영화에서 (어휘가 짧아 상당히 표현이 조악합니다만) 픽션을 통한 감정의 정화 같은 것이 일어난다면 '잔인하다'는 말 말고 다른 말도 할말이 생길텐데. 정말 할말이 생기지 않대요. 신어지님 말씀대로 '원래 그런놈들'을 그리고 있고, 제 생각에는 그게 더 나아가서 작품이 '원래 이런 세상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제일 찜찜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잔인하다고 느꼈던 장면은 '병수야... 괜찮아. 병수야... 괜찮아.'(어딘지 아시지요?) 아... 저 피튀기는 장면보다 거기가 더 끔찍했습니다. 저렇게 '너무 현실적이면서도 저항불가능한'세상을 그려 놓으면 어쩌란 겁니까.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3.03 11:22 신고

      <추격자>와 마침 비교가 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면서 생각해두었던 부분들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어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잔혹함 때문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추격자>가 찜찜하다는 사람들도 각자 다른 이유가 있을테지만 어쨌거나 찜찜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건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영화를 본 사람이 많아서 그만큼 찜찜하다는 사람의 숫자도 많은 것 아니겠냐는 반문도 가능하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이제껏 수많은 국내외 영화들을 보면서 이랬던 일이 워낙 드물어서 어쩔 수 없이 이건 다른 경우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그런데 "병수야... 괜찮아." 이거 어떤 장면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병수가 누구죠? 앞뒤 설명을 조금만 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 addr | edit/del 라이 2008.03.03 18:30

      지영민의 누나를 찾아갔을 때, 프랑켄슈타인처럼 머리통에 수술자국이 있는 아이가 촛점 잃은 눈으로 어정어정 걸어나오며 오줌을 질질 싸죠. 누나가 "집에 그 자식 밖에 없었는데."라는 말을 하죠. 소름 쫙. 가슴이 두근두근. 정말 미치겠더군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3.04 08:44 신고

      아 그 장면요. 입 안에서 벌써 "젠장"이란 단어가 맵돕니다. 지영민이 동정의 여지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종류라는 걸 그런 식으로 차곡차곡 깔아놓곤 하더군요. 취조실에서 범행 동기를 하필 성적인 부분하고 연계시킨 것도 마찬가지고요. 여기에 미진을 그렇게 살해하고 나니 마지막 격투 장면에서 중호가 망치를 들어올렸을 때에는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꺼리낌 없는 살의를 품을 수 있게 되는 거죠.

  20.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smirea 2008.03.09 14:59 신고

    신어지님, 리뷰 너무 잘 보았어요.
    이영화 잘 만들긴 잘 만들었는데, 결코 유쾌하지 않더라구요.
    신어지님께서 지적하신 그부분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잔인해서 밤에 택시 타고오는데 정말 온몸이 오돌오돌 떨리더라구요.

    트랙백 걸었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3.09 23:33 신고

      스미레님도 보고 오셨군요. 저에게 혹시 먼저 물어보셨다면 저는 말리는 쪽이었을 거예요. 일반적인 영화 관람이 아니라 블로고스피어의 화제 거리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직접 봐야만 하는 거였겠지만요. 놀라고 상한 심정 잘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21. addr | edit/del | reply 근데 2008.08.22 16:11

    추격자 난 왜 실망을 했죠-_-
    특히 슈퍼마켓씬 어이없었고..지나치게 감정이입이된 김윤식역이 공감이 안갔습니다
    오히려 수사에 방해만 줬고요.
    반복된 폭력씬도 보기에 지루하기만했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8.22 17:04 신고

      말씀하신 부분들을 지적하는 다른 분들도 많습니다.
      다른 한국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만들어진 부분은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도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던
      작품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