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대목을 맞아 여느 때 보다 더 많은 영화들이 홍등가의 창녀들처럼 몰려나와 손님끌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브릭>은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볼 품 없는 꼬락서니로 꾸벅꾸벅 졸고 앉아있는 모습의 영화입니다. 그 흔한 배너 광고 한번 제대로 하기를 하나, 포스터에는 주연 배우 얼굴 하나 내밀지 않고 "선댄스가 열광하고 선택한 영화!"라는 헤드 카피만 커다랗게 적어놓았습니다. 저는 이 포스터 처음 봤을 때 유사한 2음절 제목의 <미믹>(1997)과 같은 B급 공포영화인가 싶었습니다. 터널에서 쓰레기 시궁창 괴물이라도 나오는 건가. 선댄스가 열광하고 선택했다는 카피도 "전미흥행 1위" 만큼이나 구태의연하게 보일 뿐이더군요. 선댄스면 다 봐줘야 한다는 식이니 참 성의 없는 카피라이팅이 아닐 수 없는 겁니다. 이런 영화는 천상 기자분들 리뷰를 훔쳐봐야만 합니다. 잡지 리뷰를 영화 홍보사에서 뿌리는 보도 자료나 홍보 찌라시와 동급으로 취급하시는 고매한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재미도 없고 설득력도 떨어지는 영화에까지 온갖 의미 부여하기에 여념이 없는 전문 비평(이라고 자처하는) 글 보다는 객관적인 정보에 충실한 잡지 리뷰 쪽이 훨씬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브릭>은 겉으로 보기에는 한물 간 퇴물 창녀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 쪽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고전 느와르 영화'의 방중술로 환상적인 2시간을 선사한다는 게 제가 읽은 잡지 리뷰의 요지였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십대 영계들만 나오는 가게라더군요. 십대들 나오는 가게를 몇 번 가봤지만 대부분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아직 몰라서 재미가 없는 때가 많고 아니면 어설픈 어른 흉내내기로 코웃음만 자아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십대 영계의 하얀 속살에 카마수트라의 비전을 몸에 익혔다니, 그런데도 손님 끌기에는 별 신경도 안쓰는 그런 곳이라니, 이거야 말로 늙은 몸도 순식간에 달아오르게 만드는 희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최고의 서비스와 품질로 모시겠다며 취향찬란한 네온사인을 걸어놓은 곳은 많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만족할만한 곳이 없고(이런 곳은 입장료 보다 부식비가 더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요) 정작 내실 있는 좋은 곳은 잘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있어 쉽게 지나쳐버리는 일이 잦은 곳이 바로 극장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정말 좋은 것들은 언제나 애써 찾으러 다녀야 겨우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죠. 마치 너무 많은 손님들이 몰리면 희소 가치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품질 자체가 떨어진다는 믿음이 누군가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조용히 다녀와서 "아, 정말 좋았어"라며 고개를 끄덕끄덕, 눈웃음을 주고 받는 그런 비밀들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브릭>은 오랜만에 '이건 우리끼리만 알고 지내자'는 속물스러운 비밀 본능을 자극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지금 극장 상영 중이라는 게 너무 많이 알려지지 않으면 좋겠어. 애들은 어차피 봐도 이런 재미를 잘 모르잖아. 이런 영화에 구태여 홍보비를 쓰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해. 그 덕에 우린 이렇게 쾌적한 상영관 안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니까. 젠장, 이런 영화 개봉관에서 보는 거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차이나 타운>(1974)은 어쩔 수 없는 경우라 치고, <밀러스 크로싱>(1990)이랑 <L.A. 컨피덴셜>(1997)을 비디오로 볼 때는 이런 영화를 왜 극장 상영할 때 놓쳤던 걸까 장탄식을 했었잖아. 아, 이런 영화는 2시간 짜리가 아니라 아예 20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주면 정말 좋겠어. 아무튼 영화 좋다는 얘기 어디가서 너무 떠들지나 말자고. 다음 주엔 시간 어때? 문 닫기 전에 몇 번 더 봐둬야겠어.

이걸로 저의 <브릭> 리뷰는 끝입니다. 쉿.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8 : Comment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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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페니웨이™ 2008.02.02 20:35

    이렇게 조용히 왔다 갈 생각이면 뭐하려고 개봉한거냐고 묻고 싶을 따름입니다. 혼자보자니 너무 아까운데.. ㅠㅠ

    리뷰어분들도 그닥 많이 관람한 분위기가 아닌거 같고... 이래저래 안타깝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2 20:48 신고

      저는 이렇게나마 볼 수 있게 해준 하이퍼텍나다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예요. 이런 영화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은 역설로 밖에는 감당이 안되는군요. 무슨 사명감을 갖고 리뷰를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 다른 분들이 화제작 위주로 보러다니시는 건 뭐 어쩔 도리가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

  2. addr | edit/del | reply 2008.02.02 20:44

    비밀댓글입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2 20:50 신고

      한번 보낸 트랙백은 다시 보낼 수가 없더군요. 휴지통에 찾아보시면 거기 있을 거예요. 복구 아이콘 누르시면 될 겁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아쉬타카 2008.02.02 23:24 신고

    너무 괜찮은 영화였지만 너무나도 인지도가 부족해 소수만이 즐기고 사라질것 같군요...;
    신선하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3 13:45 신고

      소수 취향의 영화는 결코 아닌데 영화 외적인 조건들이 영화를 소수의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높은 신선도에 깊은 맛은 제대로 우러나오는 절묘한 영화였어요. ^^

  4.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Stephan 2008.02.03 00:01 신고

    이번주 개봉한 네편의 한국영화는 -_- 이런 표정을 남기게 했지만, 외화 두편이 그나마 만족을 주었네요. 특히 "브릭"!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3 13:49 신고

      영화 감상자 입장에선 사실 일주일에 좋은 영화 두 편이면 충분하죠. 전체적으로 외화내빈이라고 하더라도요. <브릭>은 정말 간만에 만난 완소 영화라고나. ^^b

  5.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tmrw 2008.02.03 00:56 신고

    쉿. 이라....
    이런.ㅋㅋㅋ

    잔인한 장면 많나요?
    LA 컨피덴셜은 저두 진짜 좋아했는데..흠.

    내일 전 조조로 일단 명장 보러 갈려구요.
    두눈 부릅뜨고 전투장면 다 보는거 도전합니다.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3 13:51 신고

      별로 잔인하지 않아요. 투모로우님도 조용히 다녀오세요. ^^

      <명장> 어젯밤에 봤는데 전투장면 보다도 드라마가 참 남다르더군요.
      위에 스테판님 말대로 <브릭>과 <명장> 두 편 모두 훌륭합니다.

  6.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천군 2008.02.04 11:34

    이웃 블로거님들의 호평이 이어지는 영화군요. <브릭>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리뷰는 살짝만 읽었다는. ㅎㅎ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4 13:55 신고

      <브릭>과 <명장>에 두 작품에 호평이 모아지고 있네요.
      천군님도 <브릭> 좋아하실 걸로 생각합니다.

      이번 <브릭> 리뷰는 영화 내용은 다 읽으셔도 상관없게
      영화 내용은 하나도 안넣고 딴소리만 했어요. ㅎㅎ

    • addr | edit/del BlogIcon 天軍 2008.02.04 14:40 신고

      흐흐 안심하고, 꼼꼼히 다시 읽어보았습니다요 ㅎㅎ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4 14:51 신고

      흐흐 그러셨습니까요. ㅋㅋ

  7.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j4blog 2008.02.04 14:25

    볼까말까 고민했었는데...신어지님의 표현대로라면 꼭 봐야겠군요.
    회춘을 위하야~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4 14:52 신고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복상사만 조심하세요.

    • addr | edit/del BlogIcon 만귀 2008.03.11 12:55 신고

      밤 늦게 너무 재미있게 봤던 영화였습니다. 호주친구에게도 소개해줬더니 'awesome~!'을 연발하더군요. 후훗~! 덕분에 여기선 나름 수준높은 영화매니아로 통합니다. 움후~ㅅ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3.11 20:54 신고

      드뎌 보셨군요. 애써 찾아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죠! ^^

  8.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나쉬 2008.02.04 15:11

    전 <브릭>이 우리나라에 수입될 리가 없어! 하고 생각하고 힘들게 구해서 봤었어요(...아 이건 잘못된 건데OTL). 원작 소설도 가지고 있는데.. 수입 개봉될 줄은ㅠ_ㅠ 털썩. 스크린으로 보니 감격이었어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소문내지 않고 보고싶은 영화에요. 전 CGV 인디영화관에서 봤는데 객석이 꽉 차 있더라구요. 깜짝 놀라면서도 별로 기쁘지는 않았어요.. 으허헝 (이기적이다-_-)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5 09:13 신고

      ㅋㅋ 정말 그런 이기심을 자극하는 영화예요. 저는 예전에 <트레인스포팅>이 딱 그런 영화였답니다. ^^

      원작 소설이 따로 있었나요? 리안 존슨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걸로 아는데 영화가 나온 후에 책으로도 출간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 addr | edit/del BlogIcon 나쉬 2008.02.05 14:09

      리안 존슨이 소설도 쓰고, 시나리오도 쓴 거에요 ^^
      http://www.rcjohnso.com/BrickScript.html
      요기 가시면 보실 수 있으세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5 23:23 신고

      우와, 소설과 시나리오를 pdf로 배포하고 있군요.
      일러스트가 영화 속 캐릭터들과 참 비슷하네요.
      프린트해뒀다가 천천히 읽어봐야겠습니다. 고마워요. ^^

  9.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리비군 2008.02.04 19:55 신고

    저렇게 평하시니까 더 보고 싶어지잖아요...ㅋㅋㅋ

  10.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까스뗄로 2008.02.05 00:30 신고

    맞아요. 볼 사람만 보고 은밀한 즐거움을 간직하라는 뜻인가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주변에 이 영화 아는 사람 하나 없을 수가... 봤다는 사람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저는 왠지 프랑스 영화 Ils가 생각나더군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주연들이 어려서 그랬나봐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5 09:38 신고

      네, 그런 뜻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

      <Ils> 이거 포스터부터가 아주 음산하군요. ㅋㅎ
      프랑스 공포물인데.. 시납을 보니 주인공들이 루마니아
      시골로 간다고. 요즘 동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공포물이
      많은게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05 09:52 신고

      아하.. Them. <뎀>이라고 하니 본 영화는 아니지만
      왠지 낯이 익는다 했어요. 재작년 4월에 개봉했었군요. ^^

  1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오만과 편견 2008.02.21 15:39 신고

    ㅋ 저는 하이퍼텍나다에서 마지막날 봤습니다.
    놓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트랙백 걸고 갑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2.21 16:14 신고

      보고나면 아, 놓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하게 해주는
      진짜 재미있고 좋은 영화죠. 저도 트랙백 보내겠습니다. ^^

  1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supab 2009.07.03 16:21 신고

    트랙백타고왔습니다. 디비디를통해 삭제된장면과 코멘터리까지 다보고다니 더욱더 소장하고 싶어지는 영화더군요... 안타깝게 친구에게 빌려본거라 돌려줘야하지만 ㅠㅠ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7.03 21:06 신고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 코멘터리와 함께 DVD로 다시 한번 보고싶은 충동을 마구 불러일으켜 주시는군요. ㅎㅎ 최고의 걸작이라고까지는 못하겠지만 나름대로 각별한 애정을 가져도 좋을만한 작품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