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삼력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스라이>는 "99%가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밝혔다는 감독의 말처럼 고등학교 졸업 후 첫 디지털 단편을 만들었던 일로부터 시작되는 10 여 년 간의 독립영화 체험담입니다. 기본도 없고 여건도 안되지만 그저 영화가 하고 싶어 고집스럽게 달려왔던 어느 청춘의 회상록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흔히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아스라이>는 독립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으로서, 때로는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서 겪어온 경험들의 재연입니다. 연대기 순으로 크고 작은 일화들을 나열하는 방식이고 그런 와중에 어떤 큰 흐름을 엮어나가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또한 영화 만들기라는 소재를 활용하면서 그와 같은 경험을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인양 받아들이게 만드는 확장성 있는 드라마를 구축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소 간의 첨삭을 가미해서라도 보편적인 정서적 감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재구성을 시도하기 보다는 소주 한 병 놓고 그간에 경험해왔던 이런저런 일들을 직접적으로 술회하는 식이라 할까요. 그리하여 마치 지난 10년 간 써온 누군가의 공개된 일기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영화 전체를 흑백으로 변환함으로써 시각적으로 균질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하였고 상당히 많은 등장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음에도 전반적으로 고른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 할만 합니다.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세계, 그것도 영화 학습과 제작 여건상 변방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대구에서의 고군분투기라는 점 역시 그 자체로 흥미롭다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확장성입니다. 관객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서도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만드는 내러티브, 드라마의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아스라이>의 직설 화법에 비하면 작년 말에 개봉했던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2007)은 같은 영화 만들기를 소재로 하면서도 연애와 소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섞어 상당히 영리한 내러티브를 엮어낸 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어떤 화법의 영화 속에서건 드라마는 발견되는 것이고 <아스라이> 또한 관객에 따라서는 충분히 자기 반영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군다나 채찍질 보다는 따뜻한 격려 한 마디가 절실한 독립영화계 내에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테지요. 하지만 그저 관객일 뿐인 저로서는 열심히들 만드셨군요, 이 말 밖에는 더 드릴 말씀이 없는 작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1 : Comment 8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까스뗄로 2008.01.13 12:01 신고

    포스터부터 매력있는데... 지방에서 보기에는 쉽지 않군요. (이럴 때 서울 시민들이 부럽다니까요. 이 엄청난 영화, 전시, 공연의 혜택 차이...) 첨부하신 스틸에서 약간 홍상수 감독 영화 생각도 나요. 오 수정 같은 그런 텁텁한 흑백이라 그런지, 수수하다 못해 약간 남루한 일상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그렇네요. 역시 다들 사정 뻔히 아는 독립영화에는 마지막에 쓰신 한 마디가 제일 먼저겠죠. 열심히 만드셨다는...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넌즈시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따뜻한 시선, 관심이 먼저 느껴지네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1.13 12:31 신고

      주류 영화와 비교하면 안된다고들 하시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주류 영화나 독립 영화나 같은 기준점에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죠. 나름대로 영화의 겉모양새에 현혹되지 않고 보려는 편입니다만 이야기의 진행 자체가 너무 단순하거나(<아스라이>의 경우) 너무 티나게 대충 만든 느낌이 들면 저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구게 됩니다. 하지만 초저예산의 어려운 여건임에도 허접한 주류 영화들 보다 백배 나은 작품을 발견하게 되면 정말 환호성을 지르게 되죠. 그런 작품들을 계속 만나고자 하는 기대감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지방 도시에서 2년 여 살아본 경험이 있어서요. 겉으로 보기에는 있을 거 다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직접 살아보면 문화 여건의 차이가 정말 심하죠. 한곳에만 너무 집중되어 여러모로 불편하고 아쉽습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koolkat 2008.01.16 07:30 신고

    너무 이렇게 몰아세워도 안되겠지만...어쨌거나 하류인생에는 다 이유가 있더군요. 이런 거 찍으면 결국 하류인생으로 귀결될 뿐. 겉멋잔뜩든 3류인생보다는 아예 대차게 쌈마이인 영구아트무비가 낫다고 생각하는 一人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1.16 08:11 신고

      저는 영화를 꼭 어떻게 찍으라는 식으로는 직접적으로 말 못하겠어요.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좀 더 고심해서 쓰고 찍은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김기덕 영화를 제가 싫어하는 점도 내용이나 표현 방법 때문이 아니라 후다닥 대충 찍은 날림 공사 그 느낌이거든요. 만드는 입장에서는 속도전으로 계속 만들고 어느 영화제엔가 출품하고 하는 것도 하나의 생존 방식이겠지만요.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N. 2008.01.18 12:02

    어, 이미 쓰셨구나. 제가 대충 찾았었나 봐요. 이궁.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1.18 12:48 신고

      나름 개봉 첫 날 보고 와준 거죠. ^^

      암튼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관객은 감독에 의해 압도 당하는 쪽을 원하지 응석을 듣거나 동정을 필요로 하는 작품은 차라리 피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만든 이들하고 동업자 관계가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받는 입장이니까요.

  4. addr | edit/del | reply 삼력 2008.01.21 19:55

    자기연민의 이야기구조가 되지않도록...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수미쌍관식 구조를 갖추려고 그렇게 노력했건만...^^ 그렇게 객관화 시켰건만...ㅠ.ㅠ 아직 연출이 부족한지 자연스럽게 영화속에 녹아나지 못한 것 같군요..^^ 다음 작품은 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꾸벅.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01.22 00:25 신고

      좋아해주신 분들도 많으니까 격려가 많이 되셨으리라 생각해요. 더군다나 모든 관객을 다 만족시킬 순 없는 거니까요. 시간이 좀 더 걸리시더라도 오래 삭혀 시큼한 맛을 보여주는 작품 기대할께요. 등 돌리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