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버트 러들럼 원작의 본 시리즈는 CIA의 인간병기 제이슨 본이 조직의 지시에 따라 사람 죽이는 일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용납하지 않는 비밀조직이 그런 개인의 선택을 가만 놔둘리 없습니다. 기억상실증까지 걸린 제이슨 본이 CIA의 비밀조직과 대치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인간병기가 되었는지(어떻게 훈련받았는지가 아니라 왜 하필 자신이 선택되었는지)를 밝혀나가는 과정이 본 시리즈의 기본 줄거리입니다.

제이슨 본의 기본적인 정서는 개인의 슬픔입니다. 거대 조직의 소모품으로 사용되다가 필요에 따라 냉정하게 폐기되기도 하는 개인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제이슨 본입니다. 그런 주인공이 혈혈단신으로 거대 조직에 맞서 싸우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제공합니다. 자연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퍼히어로의 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여느 액션물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우선적으로 주인공이 안고있는 슬픈 정서와 상황이 관객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크게 성공하고 있는 영화가 본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적들이 이념이 다른 반대편 국가이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는 자들이었다면 지금의 적은 다름아닌 나를 키워준 부모 조직입니다. 조직의 논리와 행동이 더이상 절대 선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개인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게 되고 이것은 태생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지를 용납할 수 없는 거대 조직의 논리와 대치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 조직의 존재가 불법적인 것이었다면 조직과 개인 간의 타협이란 애초부터 기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 됩니다.


본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본 얼티메이텀>에서의 조직은 9.11 테러 이후 더욱 강력해진 사회안전망을 철저하게 악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개인들의 활동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추적되고 관찰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지 오웰이 일찌감치 <1984>에서 묘사한 바 있는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과 개인의 비극은 이제 상상이 아닌 매일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의 신정아 사건도 개인의 활동이 경우에 따라 어디까지 까발려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는 곳 구석구석마다 CCTV가 깔려있고 개인들의 위치와 활동이 국가 조직에 의해 파악되고 있는 건 런던만의 현실이 아닙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본 얼티메이텀>은 우리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게끔 해줍니다. 개인의 비극을 초래하는 조직의 탄생과 활동에 우리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일은 없는지, 그것을 알았을 때 뒤늦게나마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강물 속에서 죽은 듯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자신의 갈 길을 헤쳐나가는 제이슨 본의 모습은 <본 얼티메이텀>이 팬들에게 남기는 부활과 갱생의 메시지에 다름이 아닙니다.


Daum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11 : Comment 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페니웨이™ 2007.09.16 18:31 신고

    아까는 급한일이 터져서 트랙백만 놓고 갔네요^^;;

    본 얼티메이텀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 잘 읽었습니다^^ 오락적 재미나 내용면에서 올해 최고의 영화, 아니 근 몇년간 최고의 액션 스릴러라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09.16 19:30 신고

      원작은 80년대에 씌여졌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된 걸까 궁금했었는데 페니웨이님 포스트 보고 궁금증이 풀렸네요. 트랙백 감사합니다. ^^

  2. addr | edit/del | reply 시루떡 2007.09.16 18:39

    아~ 기대만땅입니다
    1.2편을 너무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기대하고 있어요 >_<)//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09.16 19:31 신고

      기대한 만큼 채워주는 영화가 흔치 않죠. 즐겁게 보시길 바랍니다. ^^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쉐아르 2007.09.17 02:09 신고

    저도 써놓았던 글이 있어서 트랙백 걸고 갑니다. 저도 이 영화가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4. addr | edit/del | reply 테네시 2007.09.17 04:31

    스토리는 정말 잘 짜놨습니다

    하지만 보는 내내 머리 아팠습니다;;

    화면 전개가 제 머리에 비해 너무 빠르더라구요;;;;

    딸랑 둘이 싸우는대도 너무 화면이 빨리 돌아가서 이해도 잘 안되고

    하지만 싸우는 장면 외에는 멋졌습니다.

    개인적으로 1,2편 여주인공이 그립더군요; 3편 여주인공은...좀...

    암튼 두뇌회전이 빠르다면 추천!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09.17 08:41 신고

      화면 전개도 그렇지만 핸드헬드 카메라 때문에 화면이 시종일관 움직여서 머리가 더 아프셨을 거예요. 저도 보는 중에 화면 흔들리는 건 이제 좀 그만했으면 싶더라구요.

      3편 여주인공이면 줄리아 스타일스 말씀이시죠. 좋아하던 배우라 저는 반가워서 좋았어요. ^^

  5. addr | edit/del | reply 본시리즈는 2007.09.17 10:21

    맨몸액션이라는게 참 좋음. 묵직한 느낌. 근데 감독은 마치 앞으로도 더 나올수 있다는 듯이 말하던데 ㅋㅋ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09.17 10:49 신고

      4편의 여부는 감독이 아니라 제작자의 몫이죠. 지금으로서는 안만들 이유가 전혀 없는 거 같아요. 원작에선 제이슨 본이 두 아이가 있는 중년이었다고 하니 아무래도 니키(줄리아 스타일스)와 제이슨 본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다... 뭐 그렇게 마무리하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네요. ^^

  6.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미디어몹 2007.09.17 16:41

    Cinerge 회원님의 포스트가 금일 오후 05:00에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링크될 예정입니다. 익일 다음 헤드라인으로 교체될 경우 각 섹션(시사, 문화, 엔조이라이프, IT과학) 페이지로 옮겨져 링크됩니다.

  7.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아오네꼬 2007.09.19 18:23

    아직안봤는데 상당히 기대되네요. 캐리비안같은경우 3편보고 약간 실망했었는데...이번 본 얼티는 평이 좋더라구요.ㅎㅎ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09.19 22:09 신고

      저는 캐리비안의 해적 3편을 아직 못봤어요. 주윤발이 잘 했을지 궁금합니다. ^^

  8.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크레아티 2007.09.27 21:48 신고

    마지막에 헤엄치는 모습이 부활과 갱생의 모습이라....이야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군요 ^^
    리뷰 너무 인상깊게 잘 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저도 트랙백 보내고 갑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09.27 22:07 신고

      감상문을 쓰다보면 저 스스로 놀랄 때가 많습니다. ㅋ

      케이블로 2편을 다시 보니 완전히 고해성사에 가깝더군요. 마이클 꼴레오네가 말년에 3편에서 했던 걸 제이슨 본은 2편에서 일찌감치 끝내버린 거죠. ^^

  9.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GoldSoul 2007.10.03 21:22 신고

    아, <본 얼티메이텀>의 기막힌 리뷰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저도 부족하지만 트랙백 쏘고 갈께요.
    자주 뵈어요. :)

  10.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제노모프 2007.10.11 20:14 신고

    개인의 슬픔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시리즈를 다시 한번 쭉 보니까 1편의 클라이브 오웬, 2편의 칼 어반에 이어 3편에서도 본과 대치하는 요원들이 모두 비슷한 처지로 묘사되었더라구요. 철저히 소모되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받는... 2편의 마지막은 참 쓸쓸했는데, 3편은 활기차게 끝나더군요. 이쯤에서 마침표를 찍어주면 좋겠어요. 아마 다음 시리즈가 만들어지면 제이슨 본이 (람보 2편 이후의)람보가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부디 그럴 일이 없기를...

    영화만으로는 좀 지루했습니다. 액션씬이 너무 길어서 도무지 몰입이 안되고(살짝 졸았다는 후문이...), 2편에서 이미 봤던 장면들을 리와인드 하는 느낌이었어요. '본 시리즈'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한 것은 상대방의 뒤통수를 때리는 본의 주도면밀함이었는데, 얼티메이텀에서는 조운 앨런과 짜고 사무실에 침입하는 장면이 그런 쾌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 이런 면에서도 2편이 훨씬 낫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10.12 00:15 신고

      적은 무조적 죽여도 좋다는 식의 냉전 시대 액션 영화의 인간관이 본 시리즈에서는 전부 해체되어 버렸죠. 자연스러운 세태의 반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솔직히 3편 하나만 놓고 봤을 때는 그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이미 1, 2편에서 많은 걸 보여주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가적인 에피소드로 느껴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얼티메이텀에서 최고 장면이 바로 거기죠. 당신이 사무실에 있다면 지금 나하고 마주보고 있어야 할텐데? 그러면서 몽땅 들고 나와버리는 거.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