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칙칙해 보이는 포스터 때문에 하마트면 좋은 영화 한 편 놓칠 뻔 했다. <달콤, 살벌한 연인>도 그랬지만, 요즘은 HD 카메라로 촬영된 영화들도 꽤 보기 좋은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작년 빔 벤더스 감독의 <랜드 오브 플렌티>까지만 해도 디지털 영화는 아직 멀었다는 인상만 남기곤 햇었는데, 이제는 영화 촬영에 사용되는 HD 카메라도 좋아지고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솜씨도 상당한 수준이 이른 모양이다.

물론 <코드 46>이 보기 좋은 눈요기들로 승부하는 영화는 아니다. <이터널 선샤인> 이후 사랑과 기억에 관한 또 한편의 환타지랄까. 가슴 한켠이 싸해지는 뒷맛을 남겨준다.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화는 <쥬드>와 <인 디스 월드> 이후 세 번째인데 장르와 스타일의 일관성은 아직 찾기 힘들지만 뭐 어떠랴. 스타일 면에서 전혀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작품들이 같은 이름 아래 필모그래피를 구성하고 있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나인 송즈>와 <콴타나모로 가는 길>도 언젠가 볼 기회가 있다면 꼭 보고 싶다. 그리고 <24시간 파티 피플>도 꼭 보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SF 원작이 따로 있는 작품인가 했는데 마이클 윈터바텀의 대표작들을 써온 마이클 코트렐 보이스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였다. <매트릭스> 만큼 꽉 짜여진 느낌을 주는 정도는 아니지만 <코드 46>은 각본부터가 여러가지 은유가 적절히 녹아들어간 좋은 '물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코드 24>의 주요 로케이션인 현대적인 상하이의 건물들과 중동의 풍광, 그리고 미니멀한 배경음악이 한 몫을 한다. 영화 마지막엔 콜드 플레이의 Warning Sign도 삽입되어 주인공의 감정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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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Winterbottom, director @ Code 46 (2003)


다른 블로그를 둘러보니 영화의 시작 부분에 자막으로 설명되는 코드 46의 내용을 옮겨적은 곳이 많더라. 유전 정보가 100%, 50%, 25%가 일치한다는 건 유전적으로 근친이라는 뜻이고, 때문에 상호 간의 교배를 금지한다는 내용은 그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에 해당되는 메타포다. <코드 46>의 내러티브에서 전환점을 이루는 부분은 바로 남자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DNA가 50%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두 주인공이 결국 이런 사이로 밝혀질 거라는 정도는 왠만한 관객이라면 영화 처음부터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단순히 두 사람의 유전 정보가 50% 일치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법으로 금지된 사랑을 나눈 것이다 라는 점이 아니다. 여주인공의 유전 정보가 오래 전에 죽은 남주인공의 어머니와 100%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오이디푸스의 메타포를 살짜쿵 건드려주는 <코드 46>의 진면목이 여기에서 드러난다. 이런 일이 가능한 미래의 사회, 그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법령과 체계, 그리고 특별한 기술들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코드 46>에서 그려진 인류의 미래다. 그리고 시종일관 생기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연기하는 팀 로빈스의 모습은 다름아닌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미래 인류의 자화상에 다름이 아니다.

<코드 46>의 미래에는 유전 공학으로 재현되는 오이디푸스의 비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기본적로 '안'과 '밖'으로 분리되어 있다. 주인공은 프랑스인 아내를 두고 씨애틀에서 거주하는 미국인이고 그가 출장을 가는 곳은 중국 상하이의 공장이다. 영화 속에서 '안'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모든 게 통제되고 관리되는 곳이다.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CCTV 화면들과 화상 통신 기기들은 이미 우리가 처해있는 이곳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반면 주인공들의 도피 행각을 통해 관객들이 경험하는 '바깥'은 상하이의 외곽 지역과 지금도 제 3세계라고 불리우는 그곳들이다. 그곳에선 증명서가 필요 없고 순수한 자기 자신의 감정을 따라 사랑을 나눌 수도 있지만 '안'에서 경고하는 감염과 사고의 위험이 상존한다. 그러나 등장 인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과감히 take risk하며 '밖'으로 향한다.


2006.04.25 @ egloos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0 :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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