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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1 08:00
패스트푸드 네이션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2006 / 미국)
출연 그렉 키니어, 카타리나 산디노 모레노, 윌머 발데라마, 애슐리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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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슈퍼 사이즈 미>(2004)라는 화제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었죠. 감독인 모건 스펄록 자신이 직접 실험 대상이 되어 맥도날드와 같은 정크 푸드의 유해성을 고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루 세 끼니를 전부 맥도날드 세트 메뉴, 그것도 '수퍼사이즈 옵션'으로 계속 먹다보니 체중이 증가하고 머리털이 빠질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우울증과 같은 스트레스성 증세까지 보이게 되더라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저에게 실패한 작품이었습니다. <슈퍼 사이즈 미>를 보는 동안, 그러니까 주인공이 빅맥 세트 메뉴를 먹는 장면이 나오고 또 나오는 동안 저는 햄버거가 정말 먹고 싶었습니다. 아마 그 날 저녁 끼니를 제대로 못먹고 영화를 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햄버거와 같은 정크 푸드는 제발 먹지 말라고 설득하기 위해 만든 영화를 보며 도리어 햄버거와 후렌치 프라이와 콜라가 먹고 싶어지다니요. 주인공이 스스로에게 행한 '수퍼사이즈 실험'과 그 결과도 빅맥 세트로만 약 한 달 가량의 식사를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조건 하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증상이란 생각이 들었으니 논리적인 면에서도 <슈퍼 사이즈 미>는 완전한 실패였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패스트푸드 네이션>도 일종의 프로파간다 영화입니다. 정크 푸드의 영양학적인 문제점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극 영화의 형식을 빌어 그 주변부의 풍경을 관통하고 있는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합니다. 미키스(Mickey's)라는 가공의 패스트푸드 회사와 그 중역들이 나오고, 수 만 마리의 소를 사육하고 가공하는 정육 공장의 살풍경이 등장하며,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보로 국경을 넘는 멕시코인들과 이런 상황에 분개하여 행동하는 젊은 학생들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한 편의 드라마로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한 편입니다. 세련된 화법을 구사하기 보다는 이제는 그리 새롭지도 않은 장면들과 수많은 대화들을 담아내기 위해 전력하는 영화라고 할까요. 문제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담기만 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어떤 대화 씨퀀스는 지나치게 길기만 해서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힘들기까지 합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입장을 가장 가깝게 대변하는 인물은 피트(에단 호크)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앰버(애쉴리 존슨)에게는 약간 돈키호테적이면서도 정의감에 넘치는 삼촌으로서 용기와 조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든 <패스트푸드 네이션>은 어쩌면 앰버와 다른 학생들이 벌이는 '소떼 방출 계획'처럼 치기 어린 노력으로 끝나버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울타리를 열어줘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소떼들처럼 영화 관객들의 각성이라는 것은 무작정 정보를 전달하기만 한다고 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막판에 비장의 무기처럼 공개되는 정육 공장의 도살 장면은 이 영화를 18세 이상 관람가로 만든 주 원인이 될 만큼 노골적이지만 불행하게도 이 영화가 목표로 하고 있었던 바와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연결되지를 못하고 맙니다. 정크 푸드를 사먹지 말라는 얘기인가요? 아예 육식을 끊으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면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사는 것이, 특히 멕시코인들의 처지가 처참하게 도살 당하는 소와 같은 신세라는 건가요? 실비아(카탈리나 산디노 모레노)의 눈물은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건 지나친 비약입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니까 적어도 실망할 일은 없으리라고 했었는데 한 편의 영화로서 상당히 지루한 작품이었습니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원작 <패스트푸드의 제국>(Fast Food Nation: The Dark Side of the All-American Meal, 2001)의 작가 에릭 슐로서가 제작과 공동 각본을 맡으면서 드라마의 구축 보다는 사실의 전달에 촛점을 맞춘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마이클 무어가 같은 내용으로 영화를 찍었다면 실제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가 되었을테지요. 극 영화이지만 노골적인 선전선동을 앞세운 다른 작품으로는 <로스트 라이언즈>(2007)를 언급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등장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직접적인 메세지 전달과 계몽을 목표로 한다는 점은 같지만 <로스트 라이언즈>는 배우들의 연기와 밀도 높은 연출로 크게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패스트푸드 네이션>이 지루함을 상쇄시키기 위해 동원한 전술은 정말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유명 배우들의 릴레이식 출연입니다. 비교적 주연급이라 할 수 있는 그렉 키니어, 카탈리나 산디노 모레노, 윌머 발레라마를 시작으로 패트리샤 아퀘트, 폴 다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블루스 윌리스, 에단 호크에 급기야 캐나다 출신의 록가수인 에브릴 라빈까지.

생각해보면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영화라곤 <비포 선라이즈>(1995)와 <비포 선셋>(2004), 그리고 <스쿨 오브 락>(2003)을 본 것이 전부였네요. <패스트푸드 네이션>은 언제든지 동의해줄 수 있는 내용이고 용기백배하는 연출 의도에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지만 영화 자체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의 영화를 만든다기 보다는 자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부분에만 집중하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스캐너 다클리>(2006) 보다도 먼저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와 광우병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된 이 시점을 틈 타 개봉을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안타깝게도 <패스트푸드 네이션>은 광우병 문제까지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보다는 비위생적이고 비인간적인 동물 사육과 도축 과정을 통해, 그리고 이를 용인하는 미국인 다수의 목소리(브루스 윌리스)를 통해 자본의 논리와 미국 사회의 병폐를 비판하는 데에 집중합니다. 그다지 새롭지도 않는 이야기입니다만 이에 관한 레퍼런스 영화로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체제와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암묵적으로 용인하거나 대안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 대중들의 모습을 강조했더라면 한발짝 나아간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울타리를 열어주어도 뛰쳐나갈 줄을 모르는 소떼들의 모습이 아마도 그런 은유가 아니었나 싶긴 하네요.


Richard Linklater, director @ Fast Food Nation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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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Cinema Blues | 2008/07/18 06:04 | DEL
햄버거 하나가 가진 정치학만 이해해도...몇 년 전 영국에서 커피 농가를 착취하는 초국적 거대 커피기업들에 대한 보이콧 운동이 벌어지며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참가했을 때,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콜린 퍼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 그 안에 담긴 만큼만의 정치에 관심을 가져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의 일상 하나하나가 복잡다단한 정치와 경제, 무역과 직결되어 있다는 뜻...
Tracked from 새로운 출발 | 2008/07/19 16:38 | DEL
어제 패스트푸드네이션을 봤다. 최근 미국산쇠고기 정국이 이어지면서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서 나까지 보게되었다. 일반 영화관에서 볼수 있는 곳을 찾다가 포기하고, 결국 서대문(또는 광화문)에 있는 미로스페이스에 가서 봤다. 영화는 시작하면서 햄버거에 똥이 들어간 사건을 시작으로 미국의 공장형축산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문제가 된 정육회사에 멕시코 이주노동자들이 극도의 노동착취와 산업재해속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로 미..
g. | 2008/07/11 10: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울타리를 열어 주어도 뛰쳐 나갈줄을 모르던 소떼들의 모습. . .
이 장면 하나가 영화의 키워드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길을 내어주는 자와 그 길을 보고도 감히 발을 내딛지 못하는 자.
나는 어느쪽에 속해 있을까...

하는 의문은.. 영화는 실망스러웠지만 풀어야 할 숙제 한가지를 내 놓았으니
그다지 영~ 아닌 영화도 아니였나..하는 쪽으로 방향전환하고 있는 기점이 관람 일주째이군요.
이넘의 되새김질은 변할 줄 모르는군요^^
BlogIcon 신어지 | 2008/07/11 12:53 | PERMALINK | EDIT/DEL
2시간 동안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영화도좋지만 영화가 끝난 이후로도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도 훌륭하죠. <패스트푸드 네이션>에서 소떼들의 모습에서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을 읽어내는 건 어디까지나 유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으면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 관객이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줬어야 하는데 <패스트푸드 네이션>의 그 장면에서 주목을 하게 되는 건 학생들의 무모한 도전 뿐이거든요. 길을 내어주는 자에게도 어떤 책임의 문제는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대안 없이 이건 아니라고만 말하는 건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죠.
BlogIcon 인생의별 | 2008/07/11 14:2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이 영화를 2년 전에 미국에 있을 때 봤어요.
자막도 없고 듣기도 안 되고 해서 내용파악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런데도 영화를 보게 만든 건 계속해서 등장하는 새로운 캐릭터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네요.
대신 영화를 보고 나서 한 동안은 햄버거를 입에도 안 댔습니다ㅋㅋ
기회가 되면 다시 보고 싶기는 한데, 막상 극장에 가지는 않게 되네요;;
BlogIcon 신어지 | 2008/07/11 23:39 | PERMALINK | EDIT/DEL
자막의 도움 없이 대략의 내용 파악만으로 본다면 느낌이 좀 다를 수도 있겠어요. 몇몇 장면들은 더 강한 이미지로 다가올 수가 있겠고요. 아무튼 저는 자막의 도움(?) 덕분에 마지막의 그 험악한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육식은 물론이고 햄버거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거나 하지는 않았네요. 오히려 영화 초반에 폴 다노가 이물질을 첨가하는 장면이 더 무서웠어요. ㅎㅎ 암튼 뭔가 참고 자료로 쓰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자막 없이 봤을 때와 다시 봤을 때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굳이 다시 볼 정도의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
g. | 2008/07/11 18: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장면은 필시 달걀로 바위치기가 맞습니다. 잘 꼬집으셨습니다. 제가 그 장면만을 분명히 '확대해석'한 것입니다. 영화 자체만으로는 너무나도 한숨이 나왔던 나머지...그렇게라도 확대해석하여 나름 버리는 시간이 아니였음을 자신에게 인식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지리멸렬한 탁상토론을 본다는것이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것도 내 주머니에서 내 돈 내고 보는거라면 더욱.
BlogIcon 신어지 | 2008/07/12 00:05 | PERMALINK | EDIT/DEL
아니 뭐 g.님의 해석을 '꼬집으려고' 그런 건 아니고요. ^^;; 직업적인 평론가가 아닌 이상 영화를 보는 동안 그리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그래서 그다지 즐겁지가 않았다면 영화 볼 때의 그 느낌에 충실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특정 장면 하나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가 개인에게 얼마든지 큰 가치를 제공해주는 경우도 많이 있죠. 하지만 <패스트푸드 네이션>의 경우 영화 보는 재미라는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워낙 떨어지는 편이라 한 두 가지 미덕 만으로 그 부족분을 전부 채우기에는 힘든 영화라고 생각되고요, 특히 울타리 밖으로 못나가는 소떼 장면도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못했어요. 작가가 정말 그런 은유를 의도했던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죠. 저는 이런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실패를 덮어주고 작가의 의도만으로, 또는 가능한 재해석만으로 해당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새로운 창작이나 다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화를 통해 본 어떤 이미지를 통해 좀 더 발전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예요. ^^
BlogIcon 신어지 | 2008/07/12 00:17 | PERMALINK | EDIT/DEL
그럼에도 <패스트푸드 네이션>은 보는 이에 따라 대단히 충격적이고 그리하여 두고두고 잊지 못할 영화로 남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봐야겠죠. 어쨌거나 저나 g.님은 그 반대의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내 주머니에서 내 돈 내고 내 시간 들여서 본 영화들은 사실 왠만하면 자기 선택에 대한 자존심 같은 것 때문에 왠만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마련인데 <패스트푸드 네이션>은 안타깝게도 그 '긍정 가능의' 마지노선을 넘었다고나. ^^;
BlogIcon 별이빛나는밤 | 2008/07/19 16:3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주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정말 운동권 영화 보는 것 같았습니다.

보고 나오는데 좀 깝깝하더군요
BlogIcon 신어지 | 2008/07/19 17:03 | PERMALINK | EDIT/DEL
깝깝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대중적인 화법이 필요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지식하게 담기만 하는 연출은 나름대로
의도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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