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22 13:14
★★★☆☆제목 그대로 정치 기자와 여배우 두 사람 간의 인터뷰가 내용의 전부라고 해서 약간 걱정을 했습니다만 의외로 지루한 줄을 모르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두 남녀 배우가 대사를 주고 받는 것이 대부분이니 자연스럽게 연극적인 구성이라는 얘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특별한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만 두 자아가 갈등과 화해를 반복해나가는 과정을 쫓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 만큼은 상당히 역동적인 편입니다. 대단히 사실적인 듯한 내용이지만 관객에 대한, 또는 관객을 위한 눈속임을 의외로 잘 해내고 있는 작품이 <인터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카메라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시에나 밀러와 스티브 부세미의 진검승부를 보는 듯한 연기 대결 역시 충분히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좋은 배우들이니까 두 사람이 출연하는 이 영화도 볼 만 하다는 보도자료 같은 얘기가 아니라 영화를 실제로 보니 그렇더라는 목격자의 전언입니다. 시에나 밀러도 훌륭하지만 스티브 부세미도 배우로서 식지 않은 열정을 과시하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습니다.
사실 <인터뷰>와 같은 설정의 영화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불보듯 뻔한 전개와 결말입니다. <인터뷰>가 생각 보다 좋았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우려를 벗어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직업 상의 이유가 아니면 서로 상종할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두 남녀가 만나 단박에 틀어지는 첫 장면은 닳고 닳은 상업 멜로 영화의 출발점을 반복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인터뷰>는 처음 보는 남녀(특히 여자 쪽의 섹스 어필이 상당한 경우) 사이에 있을 수 있는 멜로 또는 에로적인 요소를 노골적인 언사로 간단히 즈려 밟고 지나갑니다. 이제 남은 건 숨겨진 서로의 깊은 상처를 확인하고 보듬으며 인간적인 유대를 형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반적인 인터뷰였다면 절대 밝힐 필요가 없었던 각자의 진실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두 사람은 어느덧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의 빌 머레이와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터뷰>는 이것 마저도 거부하더군요. 아니, 거부라기 보다는 같은 설정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모든 유형의 장르적인 관습을 갖고 놀다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야겠군요.
의외의 결말을 통해 영화 전체를 완전히 다시 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입니다만 이제껏 보여졌던 두 사람의 갈등과 화해가 결국 망가질 대로 망가진 두 인생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었다는 건 영화를 끝까지 보고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씁쓸한 깨달음입니다. 2003년의 원작(테오도르 홀만 각본)을 만들었던 테오 반 고흐 감독은 혹시 영화와 관객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비관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보게 됩니다. 캠코더와 TV 화면을 통해 상대방의 모습을 보는 피에르(스티브 부세미)와 카티야(시에나 밀러)의 각자 홀로 남겨진 모습은 엄마의 자궁 속을 닮았지만 사실은 그 마저도 자본의 논리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극장 안의 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진실된 만남의 순간은 짧고 상대방의 뒤통수를 쳐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속에서 순진한 생각은 금물입니다. 먹는 순간 달콤하지만 금새 허기를 느끼게 만드는 판타지 보다 <인터뷰>와 같은 불편한 진실은 소화불량에 걸릴 지언정 과식이나 비만의 염려가 없어 좋습니다.
ps.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하는 피에르 기자의 동생은 스티브 부세미의 실제 동생인 마이클 부세미더군요.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카티야의 애인은 제임스 프랑코였군요.(시에나 밀러와 제임스 프랑코가 실제 공연을 해도 참 볼만 할텐데 말이죠) 영화가 끝나가는 무렵에는 실제 카티야(Katja Schuurman)라는 이름의 배우가 깜짝 등장을 하는데, 테오 반 고흐 감독의 2003년작에서 카티야 역을 맡았던 네덜란드 출신 배우로군요. 몰라도 상관없는 사항들입니다만 알고나니 참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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