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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과 낮>은 홍상수 감독의 여덟번째 영화다. 장편 데뷔작 <돼지가 우물의 빠진 날>(1996)을 강남역 동아극장에서 보고 나오며 달뜬 기분에 젖었던 것이 96년이니까 그게 벌써 12년이다. 그 사이에 홍상수 감독은 영화를 계속 만들었고 나는 그의 영화를 계속 봤다. 홍상수 영화는 항상 같은 내용이지만 또 조금씩 달라진다. 마치 산봉우리들이 다 비슷하게만 보여도 막상 산을 타다보면 이것저것 다른 점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달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대하는 나의 태도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이 거기 있으니 나는 산을 오를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해져 버린 것 같다. 대단한 기대감을 따로 갖지 않아도 이제는 홍상수 감독이 새 영화를 만들면 나는 그의 영화를 찾아가 본다. 물론 결국은 좋아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홍상수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살아갈 것이고 나 역시 홍상수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 살게 되리란 생각을 한다.

<밤과 낮>은 홍상수 감독이 드디어 도인의 세계로 접어들었나 보다 싶은 영화다. 마치 중광 스님의 그림을 보는 듯 영화 속에 해학과 자유로움이 넘친다. 극중 인물들과 그들이 겪게되는 일들을 아주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이 느껴진다. 전업 화가인 성남(김영호)의 캐릭터부터가 이전에 보아온 홍상수 영화 속 주인공들과 많이 다르다. 지식인의 면모가 배제되고 좋은 풍체에 농사꾼 같은 심성을 지녔다. 주인공의 몸이 너무 잘 단련되어 보여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절만 잘 타고 났으면 장군감이시라는 소리를 듣질 않나 아무 데에서나 팔씨름으로 힘 자랑하기를 즐긴다. 화가에 대한 통념을 벗어나면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 성남이다. 대마초를 피운 것이 경찰에 알려져 급히 파리로 줄행랑을 온 것이나 밤마다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하며 괴로워하면서도 낮에는 여자 유학생에게 꽂혀서 용감하게 들이대는 모습은 홍상수 영화 속에서 늘상 보아오던 낯익은 모습이면서도 또한 새롭게 느껴진다.

이전의 어떤 영화들 보다 박장대소하는 순간들이 많았고 그런 만큼 가볍고 자유로워진 것 같다. 다른 영화에서는 감히 해볼 생각도 못하는 캠코더 홈비디오식 줌-인과 아웃조차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는 이제 자연스럽기만 하다. 결국 누구나 찍을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다른 사람은 결코 흉내내지 못하는 홍상수 감독만의 영화란 홍상수라는 사람 안에 쌓인 내공 - 영화인으로서, 예술가로서, 철학자로서, 그리고 자연인으로서의 내공이, 그리고 관점 자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잘 짜여진 강의를 들은 듯한 영화가 있는가 하면 도사님과 허허롭게 차 한 잔 마신 듯한 영화가 있을텐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이제 후자 쪽으로 접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릇 진정으로 깊은 내공이란 비언어의 영역에 가까운지라 표현 방식 자체가 점점 우화에 가까워지는 법이 아니던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무엇이냐고 그대가 묻는다면 나는 차라리 한 떨기 꽃이라고 답하리. 말 통하는 사람들과 소주 한 잔 마시며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과 <밤과 낮>에 관한 이야기를 밤낮으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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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여인 (2006)
극장전 (2005)
생활의 발견 (2001)
강원도의 힘 (1997)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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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과 낮, 2008

    FROM Throw me Tomorrow 2008/03/22 00:37  삭제

    밤과 낮 , 2008 완전 코미디. 이 영화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너무 당연하게 웃고있는 나를 보니 약간 씁쓸하다. 이렇게 남자의 행동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은 영화가 됐든, 소설이 됐든, 정말 여자들에겐 소중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자의 진짜 마음을 남자의 입으로 듣기는 절대 쉽지 않으니까. 김성남을 누가 욕하랴. 물론 좀 짜증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짜증났던건 너무나 우유부단한 모습과, 거기서 빈둥대는 꼴이 보기 싫었던거지, 낮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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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누들스 2008/03/11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정말 보고싶다.
    홍 도사님 영화의 매력은 바바리 안을 발가벗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듯한 묘한 쾌감~
    (변태인가 -_-;;)

  2. BlogIcon 투모로우 2008/03/11 0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거 참 보고싶은 영화인데 말이죠...흠흠.
    찾아보니 압구정 스폰지에서도 하네요. 시간을 한번 맞춰봐야겠어요.

    그나저나 RSS 100명 돌파하셨네요. 짝짝짝.

    • BlogIcon 신어지 2008/03/11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압폰지에서 봤는데 화면 윗 부분이 살짝 잘리더군요.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쉬웠어요.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고 있는 상영관인데 이제는 더이상
      안되겠다 싶기도 하고요.

      블로그와 관련한 다른 숫자들에 대해서는 무감해졌는데
      RSS 구독자 수는 그래도 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호. ^^

  3. BlogIcon smirea 2008/03/11 0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단락만 읽었어요.
    보려고요. 보고와서 마저 읽을께요. ^^*

  4. BlogIcon comodo 2008/03/11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울~ 저도 빨리 보고싶어요 ㅜㅜ
    홍상수의 영화는 참 매력적이에요 크킄
    이번 영화는 포스터부터 남다르던데요 :)

  5. BlogIcon 투모로우 2008/03/22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압구정에서 안하더라구요.
    씨네큐브에서 봤는데. 늦어서 초반 10분을 못봤어요. 이런 ㅠㅠ

    영화를 거의 안보는 친구가 한명 있는데
    이상하게 옛날부터 홍상수 영화는 다 챙겨 보더라구요.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오 수정, 등등 제게도 꼭 보라고 했던 영화들인데
    그동안 까먹고 있다가 이제 기억이 나네요.
    저는 해변의 여인을 조금 지루하게 봤는데 밤과낮은 예고편보고 괜찮겠다 했더니,
    정말 이건 재밌게 봤어요. ㅋ
    다른 영화는 모르겠는데, <오 수정>은 조만간 꼭 봐야겠어요.

    • BlogIcon 신어지 2008/03/22 1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밤과 낮>의 첫 10분이라... 내용 상으로는 별거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아쉽네요. 과천 현대미술관장께서 써주셨다는 독특한 필기체 크리딧에 주인공이 대마초 때문에 파리로 오게 되었는 설명, 그리고 드골 공항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주인공과 행인의 대화가 전부입니다. 담배불을 빌린다며 말을 걸어온 노숙자처럼 보이는 행인이 "이곳에서 당신 조심해라"는 뜬금없는 말을 남겨요.

      <오! 수정> 정말 좋습니다. 홍상수 감독 작품들 가운데 유일한 흑백 영화이기도 하고요 정보석-이은주-문성근의 찌질한 트라이앵글도 무척 재미있어요. 이 영화 덕분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댓구를 이루는 구조화에 관심이 많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채기 시작했죠. 그런 형식 미학에 있어서는 <오! 수정>과 <극장전>이 좀 유난한 편이예요.

    • BlogIcon 신어지 2008/03/22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제 보니 이 영화는 투모로우님이 보내주신 트랙백이 유일하네요. 홍상수 감독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뭔가 있어 보이는 영화를 다시 만드셔야겠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