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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STORY 2007 우수블로그
2008/03/25 09:00



최근 새로운 화상통신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광고하고 있는 모 이동통신사의 CF 중에 여자 친구 어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의 언니시냐고 물으며 당사자의 지극히 아줌마스러운 웃음소리를 이끌어내는 버전이 있다. TV를 거의 안보는 사정 상 주로 영화 시작 전에 쏟아지는 여러 광고들 틈에서 이 장면을 반복해서 보곤 했는데 정윤철 감독의 영화 <좋지 아니한가>(2007)에서 심씨 집안 어머니 역으로 출연했던 문희경씨가 그 주인공이었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87년 대학강변가요제에서 '그리움을 빗물처럼'이란 곡으로 데뷔한 이후 뮤지컬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다가 실명과 같은 '희경'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에 첫 나들이를 한 그녀는 이동통신 CF에서 무척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준다. 다림질을 하다가 무심코 받은 딸내미의 핸드폰에서 젊은 남자로부터 '언니' 소리를 듣고는 남편 와이셔츠를 태워먹으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주책 없는 아줌마상을 보여준다.

얼마 전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다가 밥 공기를 유심히 쳐다보게된 일이 있었다. 갑자기 밥 먹는 일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좋지 아니한가>에서 밥을 하고 먹는 일이 인생의 전부였다가 어느날 문득 커피의 세계에 빠져드는 희경씨를 생각하게 됐다. <좋지 아니한가>의 흥행 실패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문희경씨가 너무 현실적으로 우울해 보였던 탓도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 한국영화의 주 관객층들이 절대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미래의 공포가 희경씨와 같은 삶 아니겠는가. <추격자>의 지영민은 그런 놈을 만날까봐 무섭지만 <좋지 아니한가>의 희경은 내 자신이 그런 모습으로 늙어갈까봐 무섭지 아니한가. 어쨌든 그 표정 하나로 이미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희경은 황새 쫓던 잡새 마냥 독서실에 안가고 노래방에서 땡땡이를 치던 여고생 딸내미를 쫓아가다가 다리를 다쳐 갑작스런 병원 신세를 지게 되지만 변변한 병문안 한번 못받아 보던 중에 급기야 일탈을 결심하게 된다. 꽃미남 노래방 총각(이기우)의 접근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길을 떠나지만 다시 찾아온 듯한 생의 환희는 저 멀리 춤추는 오렌지색 티셔츠와 같은 허상이었던 거다. 미숙이 그 잘난 년은 동생 약혼자까지 뺏어서 잘도 달아나더니만. 결국 집으로 돌아온 희경에게 남겨진 것은 MP3 플레이어 기능까지 탑재된 수 백 만원짜리 최첨단 커피메이커. 여전히 남편 허리띠로 뚜껑을 고정시켜줘야 하는 대따 큰 밥통으로 밥을 지어먹을 지언정 이제사 알게 된 커피향의 의미는 그냥 포기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 된다.

당장 내동댕이 치고 싶은 비루한 일상이란 영화 속에서 흔히 채용되는 생활 공감형 출발점이 되곤 한다.(생활 공감이라는 말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미래 공포형이라고 하자) 그런데 매일 먹던 밥에서 비린내가 느껴진다면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성장해온 삶의 터전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유일하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피난처이긴 하지만 더이상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 된다면 그때는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좋지 아니한가>는 비교적 너그러운 판타지를 보여준 편이다. 희경씨의 대모험은 처음 뜻했던 바와는 크게 어긋나고 말았지만 결국 일상을 다시 견디고 그런대로 살아갈 만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무언가를 남겨주었으니 말이다. 커피도 매일 마시다보면 어느덧 밥이나 마찬가지가 될 수도 있으니 무엇이 생활이고 무엇이 꽃단장인지는 곰곰히 따지고 명확하게 구분해가며 살아야 할 일이다. 밥 먹는 일 외에도 다른 즐길 만한 거리가 많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한다면 어느날 문득 찾아드는 밥 비린내도 너끈히 다스릴 수 있을런지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우리 희경씨에게는 <문스트럭>(1987)의 로레타(셰어)와 같은
젊은 남자와의 멜러가 허락되지 않는 건가. 희경씨를 그렇게
쓸쓸하게 내동댕이 쳤으니 영화가 쫄딱 망하는 건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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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gIcon J준 | 2008/03/25 10: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전 좋지아니한가를 너무 좋게 본터라..망한 이유라면 제 감성에 맞는 대부분의 영화는 망한다는 J의 법칙때문?? -_-a
저 광고 재미있네요. ^^
BlogIcon 신어지 | 2008/03/25 21:17 | PERMALINK | EDIT/DEL
어차피 농담 삼아 '망했다'고 한 것이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정윤철 감독의 두번째 영화로서 흥행이
너무 안좋았다는 얘기일 뿐입니다. 작품으로서의
만족도와는 무관한 '망함'입니다.

J준님은 정말 처음 보시는 광고시겠군요. 요즘
KTF가 SKT 따라잡으려고 재미있는 광고 무지하게
많이 해대고 있어요. ^^
BlogIcon 투모로우 | 2008/03/25 13: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제가 먹을 밥이 있다는 그 사실에 감사해요.
이만하면 괜찮겠죠?

좋지 아니한가, 저 영화는 안봐야겠어요.
저의 긍정적인 생각을 아주 쉽게 뒤집어놓을 것 같네요. 한숨 막 푹푹 나오고. -.-;;
BlogIcon 신어지 | 2008/03/25 21:22 | PERMALINK | EDIT/DEL
음, 한숨 푹푹 나오게 만드는 일상의 비루함이 리얼하게
묘사되는 뭐 그런 영화는 아니예요. 나름 코미디 영화이고
마무리도 분명히 긍정적인 톤으로 매듭지어 집니다.
희경씨의 마지막도 뭐 절대 슬프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이 영화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참고해주세요. ^^
BlogIcon 주드 | 2008/03/25 13: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분이 그분이셨단 말입니까? 와..정말 몰랐네요.
BlogIcon 신어지 | 2008/03/25 21:23 | PERMALINK | EDIT/DEL
넹 같은 문희경씨랍니다. ^^
BlogIcon 라면한그릇 | 2008/03/25 14: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가끔은 너무 현실적인 작품(영화, 소설, 드라마)을 보게되면 너무 현실하고 같아서 보고나서도 영 기분이 씁쓸하곤 해요.
그러면서도 리얼리티리얼리티를 찾는 경우도 있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한거 같기도 하구요
목요일까지 교육이시라구요? 재미없을지도 모르지만 잘보내시길~ㅎㅎ
BlogIcon 신어지 | 2008/03/25 21:26 | PERMALINK | EDIT/DEL
사실 <좋지 아니한가>는 사실적이기 보다는 좀 엉뚱한 코미디에 가까운 작품인데도 왜 희경씨에 대해서 만큼은 이지우와의 연애를 허하지 않았는지 몹시 불만이라니까요. ㅎㅎ 음, 다시 생각해보니 연애가 제대로 진행되는 등장 인물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군요. 아들 놈 하나만 정유미와 잘 되는 걸로 끝나던가요? 김혜수가 임혁필과? 벌써 가물가물합니다.
BlogIcon 기차니스트 | 2008/03/26 01: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랫만이지요^^? 신어지님 글은 RSS로 살짝 살짝 보고 있었는데,
댓글은 정말 오랫만인것 같네요^^

희경씨가 어쩌면 댓글을 쓰게 하고 싶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그 분 내력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좋지 아니한가라는 영화를 볼 이유가 하나 생긴것 같네요^^
BlogIcon 신어지 | 2008/03/26 12:08 | PERMALINK | EDIT/DEL
기차니스트님 정말 오랜만이십니다. 희경씨에게 낚이셨군요. ㅎㅎ
저도 이거 쓰면서 강변가요제 출신이라는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어요. ^^
BlogIcon 빈상자 | 2008/04/02 12: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랬군요.

전 그냥...왠지 낯이 익은데...하기만 했죠.
BlogIcon 신어지 | 2008/04/02 13:04 | PERMALINK | EDIT/DEL
의외로 영화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시더군요.
비슷하게 생기신 다른 배우분하고 좀 헷갈려요.
BlogIcon 메아리 | 2008/04/02 16: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어쩐지 낯이 있더니 좋지 아니한가에 나오신 분이셨네요ㅎ

그냥 엉뚱한 아줌마라고 생각했는데

글 읽고 생각 많이했습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BlogIcon 신어지 | 2008/04/02 17:37 | PERMALINK | EDIT/DEL
댓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Shain | 2008/05/18 17: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리얼리티를 마주 보면서 슬퍼지고 우울해지고
그 감정을 부담스러워하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나날이 약해지는 모양이에요
그런 말하면서도 지극한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소설, 영화는
마음 한편이 지끈거려서 볼 수가 없습니다.
행복한 인어공주의 뻔뻔한 애니는 이런 약한 마음에서 나오는 거겠죠..
드라마나 영화가 꿈을 주고.. 뻔한 일상에 재미를 주고 살아갈 힘을 주고..
그 모든게 만성이 되면 현실을 마주할 기력을 잃고 ^^
그래도 MP3 플레이어도 달린 커피메이커가 있어 참 다행일..지도..(일까나..)
BlogIcon 신어지 | 2008/05/19 07:52 | PERMALINK | EDIT/DEL
말씀대로 현실을 마주한다는 건 무척 피곤한 일이죠.
그래서 영화 속에서 만큼은 좀 피해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습니다. 영화관 밖으로 다시 나왔을 때
계속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어떤 것. 희경씨에게
커피메이커는 확실히 그런 역할을 해주는 물건이었는데요
그래도 희경씨의 표정이 무척 밝아서 보기 좋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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