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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즐링 주식회사
감독 웨스 앤더슨 (2007 / 미국)
출연 애드리언 브로디,오웬 윌슨,제이슨 슈왈츠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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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스 앤더슨 감독의 다섯번째 장편 <다즐링 주식회사>는 2001년작 <로얄 테넌바움>에 이어 국내에서는 두번째로 정식 개봉된 작품입니다. 2004년작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은 빌 머레이가 주연을 맡으며 적잖은 기대를 모았었지만 결국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하고 DVD로만 출시된 바가 있습니다. 낯익은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은 지극히 소수 취향의 영화로만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번 <다즐링 주식회사>도 오웬 윌슨, 애드리안 브로디와 같이 잘 알려진 배우들을 앞세운 작품임에도 모 멀티플렉스의 인디영화 전용관 3군데에서 지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상영될 뿐입니다.

그렇다고 웨스 앤더슨의 영화가 난해한 내용을 다루거나 지나치게 독특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선호도에 따라 다소 지루한 감을 줄 수는 있으나 코미디와 가족 드라마의 범주를 결코 벗어나는 일이 없는 것이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입니다. 가족의 발견과 성장을 주제로 세련된 유머 감각을 구사하면서도 6 ~ 70년대 포크 음악과 슬로 모션을 적절히 사용하며 인상적인 '영화적 순간'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단순한 코미디 영화 그 이상의 뭔가가 더 있지 않겠냐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면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대중적인 감각으로부터 다소 거리가 먼 작품들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 웨스 앤더슨 영화의 딜레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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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즐링 주식회사>은 Part 1으로 명명된 13분짜리 단편 <호텔 슈발리에>로 시작됩니다. 파리의 호텔방에 처박혀 한달째 머물고 있는 잭(제이슨 슈왈츠먼)이 헤어진 애인(나탈리 포트먼)과 재회하는 이야기입니다. 짧은 단편이지만 일찌기 <로얄 테넌바움>에서 선보였던 디테일과 극적인 감수성을 다시 한번 응축해서 보여주는 작품이 <호텔 슈발리에>라고 생각됩니다.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등장해 남자 여럿 잡아먹을 듯한 도발적인 매력을 선보이는 나탈리 포트먼도 이채롭지만 그 앞에서 자궁 회귀본능을 달래는 콧수염 기른 제이슨 슈왈츠먼은 <로얄 테넌바움>에서 얼굴의 털을 다 밀어버린 채 손목을 긋고 말았던 리치 테넌바움(루크 윌슨)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합니다. 인도 출신의 영국 가수 피터 사르쉬테트(Peter Sarstedt)의 69년 히트곡 Where Do You Go To (My Lovely)를 들으며 호텔의 발코니로 이동하는 두 사람의 마지막 슬로 모션은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전형적인 '영화적 순간'의 재현입니다.

<다즐링 주식회사>의 본편은 아버지가 죽은 후 1년만에 만난 세 형제가 수녀가 된 어머니(안젤리카 휴스턴)를 찾아 인도를 여행하는 로드 무비입니다. 고용인이나 형제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나 여성들과 자기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세 형제는 아직 미성숙한 소년들에 불과합니다. 이런 남자 주인공들의 면모는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줄기차게 대물림되고 있는 공통 유전인자라고 할 수 있는데, 전작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노년이 되어서도 유소년의 내면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던 아버지들이 부재하다는 사실입니다.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빌 머레이의 출연이 첫 장면에서 다즐링행 열차에 탑승하지 못하고 이내 사라지는 것으로 처리됨으로써 <다즐링 주식회사>의 내러티브는 동세대의 인물들만을 남겨놓는 한층 축약적인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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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세 남자의 인도 여행은 어찌보면 세상살이의 진짜 쓴 맛이라곤 한번도 경험해본 일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법한 부잣집 철부지들의 성장담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명품 여행가방 풀세트를 들고 기차를 향해 뛰고 또 올라타는 우아한 슬로 모션의 반복이라니요. 거의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에 가깝던 주인공들이 열차 밖에서 극적인 경험을 하게 되고 과거의 공유된 기억을 떠올리며 관계를 복원하는 모습은 대부분의 로드 무비와 성장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장르적 컨벤션에 가깝습니다. 자신들을 버리고 왜 떠났느냐,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왜 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어머니는 대사가 아닌 보여주기1)를 통해 세 아들과 관객들에게 화답합니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웨스 앤더슨 영화의 기존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친숙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주제를 앞뒤 딱 맞게 요약 정리하는 상당히 대중적인 화법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다지 새로울 건 없지만 불변의 가치를 지닌 보편적 깨우침을 전달하는 영화가 <다즐링 주식회사>입니다. 주연급 배우들이 조연으로서 대거 참여해왔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에는 애드리안 브로디만이 새로 참여해 오웬 윌슨이나 기타 단골 배우들과의 순도 높은 케미스트리를 선보입니다. 주요 등장 인물들의 숫자가 적절하고 내러티브 또한 전형적이라 할 만큼 기승전결이 맞아 떨어지는 대중친화적인 작품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제껏 보여줘왔던 웨스 앤더슨 영화의 스타일 상의 개성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참에 <다즐링 주식회사>를 출발점 삼아 웨스 앤더슨 영화들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도 썩 괜찮은 '웨스 앤더슨 월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복잡한 분석과 인용을 필요로 하는 소수 취향의 영화가 아니라 누구나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보편적인 요소들에 좀 더 집중해보면서 말입니다.



1) 다소 장황할 수가 있는 대답을, 그리하여 작품 전체를 망쳐버릴 수도 있는 부분을 하나의 초현실적인 롱테이크로 펼쳐보이는 수법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차라리 침묵하라"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 ~ 1951)의 통찰을 떠올리게 합니다. 논리적인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은 언어적 표현 대신 '보여주기'의 방법을 통해 전달이 가능하다고 했던 바, <다즐링 주식회사>의 이 장면이야 말로 형이상학적 주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친절한 설명문이라 하겠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객실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지만 삶이란 결국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진정한 나'가 되기 위한 하나의 여정이란 깨달음을 웨스 앤더슨은 이 한 테이크를 통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논리적인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대중적인 소통의 한 방식이 아니던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7 : Comment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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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Stephan 2007.12.15 10:19 신고

    어제 마지막 시험도 다보고, 기분이다 하고 상암에서 "다즐링" 보고, 을지로에서 "안경"을 보았습니다. 피로도 200% -_-a 아침에 조조 예매한거 못보러 간다는..1500원밖에 안들어서 다행이지만;

    어쨋든 세명의 형제들의 모습이 참 재밌더군요. 처음에는 한명 빠지면 그녀석 뒷담화(-_-)나 하다가 결국에는 싸우고.그래도 형제인지라, 같이 돌질하는거 보면^^

    제이슨의 키가 작아서 형제 같지 않다고도, 얼굴(특히 코!)만 보면 수긍이 가는 묘한 모습;;

    다른 곳들에서 보면 이 형제들을 두고 루저라고 하던데, 제가 가지고 루저란 이미지가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뒤쳐진 이들이란 생각이 강해서인지 그런 생각은 잘 안 들더군요. 돈 많은 집에서 자란 철부지 어른들 정도? 돈도 많으니 인도여행 하다 뒤늦게 철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12.15 10:34 신고

      <다즐링 주식회사>의 열차 여행으로 쌓인 피로가 <안경>의 해변가에서 좀 풀리셨으면 좋았을텐데요. 저도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영화 한편 못보고 수요일에 봤던 이 영화 글만 하나 겨우 쓰고 잤습니다. 참, 웨스 앤더슨 필모그래피 포스트도 만들었구나.

      아버지의 장례식 때 엉뚱하게 차고로 몰려가는 모습과 엄한 트럭 운전수한테 화풀이 하면서 똘똘 뭉치는 모습이 완전 귀여움의 극치잖아요. 열차에 돌팔매질 하는 장면도 얼마나 웃기던지. ㅋㅋ 처음엔 '왜 나만 모르고 있는거냐'고 하지만 여행을 통해 누군가 전화하는 내용이 뭐겠구나 하는 거 금방 눈치로 알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니까 된 거죠 뭐.

      조금 전에 필름2.0의 <다즐링 주식회사> 특집 기사를 읽었는데요 저도 일반적인 의미에서 '루저들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로 '스스로의 삶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라는 뜻이라면 웨스 앤더슨 영화의 모든 인물들이 루저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일도 없이 파리의 고급 호텔에 한 달 넘게 머물거나 6천불짜리 허리띠를 하고 럭셔리 인도여행을 하고 다니는 루저가 어디 루저라고 할 수 있겠냔 말입니다. ㅋ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장씨 2007.12.18 01:23 신고

    정말 꼭 봐야겠어요
    더 늦기전에..처음에 로얄테넌바움을 보고 참 이영화 이렇게 재밌는데 왜몰랐을까?
    이러면서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를 보았고 보면서 빌머레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고
    스티브 지소의 해저생활을 보면서 정말 웨즈앤더슨의 영화에 푹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다즐링 주식회사가 개봉관이 두군데 뿐이라 정말 아쉽네요
    꼭 봐야겠어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12.18 08:31 신고

      원래 1주일 정도 밖에 상영일정이 잡혀있지 않다가 어느 정도 반응이 괜찮았는지 일단 다음 주 수요일까지 연장된 듯 합니다. 서두르시는게 좋겠어요. 극장까지 좀 멀더라도 웨스 앤더슨 영화는 다녀올만한 가치가 충분하잖아요. ^^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GoldSoul 2007.12.28 16:49 신고

    반응이 계속 좋은가봐요. 저번주에 제가 볼 때는 거의 꽉 찼었거든요. 주말이긴 했지만요.
    영화보고 인도 가서 꼭 저런 열차 타고 여행해봤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위트 라임 한 잔 마시면서요. ^^

    아. 티스토리 우수 블로그에 선정된 거 축하드려요.
    100개 목록 훓기 시작하면서 신어지님 있을거라 확신하고 있었어요. 역시-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7.12.28 17:10 신고

      일단 31일까지 상영일정이 잡힌 걸 보니 무척 흐뭇합니다. ^^

      그러고 보니 GoldSoul님이 빠진 게 좀 이상하네요...
      포스팅이 그리 많지 않은 블로그도 선정이 됐던데 분야별로
      쿼터 같은게 있었나. 제가 괜히 미안해집니다. ㅠ.ㅠ

  4.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allak 2008.09.15 19:27 신고

    오랜만에 들려서 글 잘보고 간만에 트랙벡도 걸어보고 갑니다.
    글잘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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