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0/07 15:33
72년생 여성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세번째 장편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 2006)은 핀란드에 살고 있는 한 일본인 여성이 헬싱키 변두리에 조그만 일본 가정식 식당을 오픈하여 첫 손님을 맞이한 이후부터 만원 사례가 되기까지의 작은 성공담입니다. 성공담이라고 해서 전유럽에 식당 체인을 열어 국제적인 기업가로서 성공한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소소한 성공, 즉 행복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가 <카모메 식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모메 식당>은 그 자체로 성공적인 저예산 영화 만들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블로그라는 1인 미디어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좋은 이야기 거리들을 제공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블로그란 내가 직접 요리하고 손님들을 대접하는 작은 식당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카모메 식당>에서 제가 배운 행복한 블로깅의 비법들을 하나씩 정리해보겠습니다. (영화를 안보신 분들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1인 미디어인 블로그가 다루어야 할 내용도 결국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사에서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가장 친숙하고 그리하여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깃 거리를 블로그의 중심 소재으로 내놓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블로깅의 첫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블로그에서 다루는 대상을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그 블로그가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봐도봐도 지겹지 않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내 주먹밥' 같은 소재로 블로깅을 시작합시다.
식당 일을 돕겠다고 나선 여행객 미도리(카타기리 하이리)가 현지인 입맛에 맞춘 퓨전 주먹밥을 제안합니다. 또한 여행 가이드북에 식당 소개를 올려 적극적으로 홍보하자고 합니다. 이에 대한 사치이의 답변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습니다. "주먹밥 본연의 맛을 지킬 때에 현지인들도 좋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관객들을 위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지나가다 언제든지 쉽게 들릴 수 있는 평범한 식당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소 고지식하고 완고한 운영 방침이었지만 카모메 식당은 애초에 원했던 바를 이루어내고 맙니다.
개인적인 다이어리나 자료 저장 창고로만 블로그를 이용하는 경우가 아닌 모든 블로그는 방문자들의 반응에 신경을 씁니다. 방문자의 숫자 뿐만 아니라 댓글을 통한 호응에 대해 신경을 쓰고 이는 포스트를 작성하거나 블로그 스킨과 레이아웃 등을 결정할 때에 직간접적으로 반영이 됩니다. 그럼에도 블로깅의 중심은 여전히 내가 되어야 합니다. 더 많은 트래픽을 불러일으키고 더 많은 댓글을 유도하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것 역시 성공적인 블로깅이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블로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성공은 좀 다른 것입니다. 사치이의 표현처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블로깅이 되어야 합니다. 행복한 블로깅이 되려면 방문자들의 반응 이전에 내가 좋아하는 그것에 집중하고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카모메 식당은 술도 팔고 커피도 팝니다. 어느날 남자 손님이 한명 들어와 커피를 주문합니다. 그러더니 "진짜 맛있는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으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드립식 커피메이커 안의 커피 분말 가운데에 손가락을 얹더니 눈을 감고 "커피 루왁"이라고 합니다.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주문이라며 자기 가슴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커피는 다른 누가 마셔보아도 확연하게 좋은 향과 맛을 내는 커피가 되었습니다.
똑같은 소재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훨씬 좋은 포스트를 구성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정성을 담으면 됩니다. 작성한 이의 정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듯 하지만 그걸 읽는 사람들은 다 알아챕니다. 실력에 상관없이 정성을 들인 연주가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전달할 수 있듯이 정성이 담긴 블로그는 그걸 알아보는 방문자들을 머물게 합니니다. 정성이 담긴 블로그가 되려면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담아야 하고 또한 즐거운 방식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얘깁니다. 모니터 가운데에 손가락을 대고 "블로그 루왁"하고 주문을 걸어보세요.
카모메 식당의 첫 손님은 일본 만화를 좋아하는 오타쿠 청년이었습니다. 오픈한지 한 달이 되기까지 손님 한 명 없다가 '갈매기 식당'의 뜻을 이해하고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온 그가 주문한 것은 다름아닌 커피였습니다. 첫 손님의 영예를 얻은 그는 이후로도 매일 같이 찾아와 공짜 커피를 얻어마십니다. 매일 식당 옆을 지나가던 세 명의 중년 여성들은 식당 안에는 들어오지 않으면서 이러쿵 저러쿵 말만 많습니다. 또 어떤 손님은 식당 안에 들어오지는 않고 창 밖에서 뚫어져라 노려보기만 합니다. 이들은 모두 카모메 식당의 가장 좋은 이웃들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다 다릅니다. 취향도 다르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선입견을 버리고 느긋한 미소로 대하다보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블로그를 하다보면 내가 가장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고 대충 끄적거린 이야기가 메타 사이트 메인에 걸려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일도 있게 됩니다. 블로그의 중심은 내가 되어야 하지만 내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열린 마음을 갖고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방문 경로를 통해 방문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새로 꺼내놓는 유연한 자세도 필요합니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카모메 식당이 시나몬롤을 만들었듯이 말입니다.
사치이는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외식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사치이의 즉흥적인 접근 방식에는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낙관의 힘이 깔려있습니다. 그것은 실패를 모르는 왕성한 추진력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들입니다. 그 믿음대로 카모메 식당의 음식을 헬싱키의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게 되었을 때 사치이는 자기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칭찬해줄 수 있었습니다.
블로그를 하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성공적인 블로그의 기준도 각자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블로그가 성공적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보다는 나는 과연 행복한 블로거인지 스스로 질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블로깅이 즐겁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습니다. 블로그는 거창한 주제를 놓고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시위하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블로거 각자의 관심과 개성을 드러내는 개인 미디어입니다. 아마도 이상적인 블로고스피어란 헬싱키 변두리의 카모메 식당과 같은 행복한 블로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 그런 모습일 겁니다.
'movie tal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명보극장이 작은영화 전용관으로 자리잡기 위해 해야 할 일 (20) | 2007/10/11 |
|---|---|
| 딕시칙스 영화 보러가면 주는 DVD, 글래스톤베리 (2) | 2007/10/09 |
| <카모메 식당>에서 배우는 행복한 블로깅 (26) | 2007/10/07 |
| 김조광수 대표의 디 워 패러디 <색화동> 홍보 동영상 (4) | 2007/09/30 |
| 네오이마주 9월 정기 오프모임(9/29, 토)에 다녀왔습니다 (18) | 2007/09/30 |
| 명동 스폰지하우스(중앙) 개관기념 영화제 : 10/1(월) ~ 24(수) (8) | 2007/09/27 |
Trackback Address :: http://differenttastes.tistory.com/trackback/667
|
Tracked from Crevasse's Kinolife | 2007/10/12 10:23 | DEL
토요일 아침..조금 일찍 일어나서 본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 영화 속의 주 무대인 그 식당의 벽에 걸린 갈매기 그림...일러스트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 듯한 간단한 필치(마치 초등학생의 그림과 같은)는 담백한 영화의 내용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원작 소설의 표지에도 그려진 이 하얀색의 갈매기 그림.....기분이 깨끗해 지는 것 같다. 작가의 이름은 모르지만...영화와 닮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고 생각이 나는 그림...이다. |
|
Tracked from Crevasse's Kinolife | 2007/10/12 10:26 | DEL
영어제목 : Kamome Diner 2006년, 102M, Color 감독 : 오기나미 나오코(荻上直子) 각본 : 오기나미 나오코(荻上直子) 음악 : 콘도 타츠오(近藤達郎) 출연: 코바야시 사토미(小林聡美) 카타기리 하이리(片桐はいり) 모타이 마사코(もたいまさこ) 원작 : 로키 루오카라(群 ようこ )의 [かもめ食堂] 일본 여자가 운영하는 핀란드의 조그만 식당..카모메.. 그 식당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순박한 영화 [카모메 식당]은 손님이 없어서.. |
|
"카모메 식당(2006)" - 마음을 치유하는 소울 레스토랑 <카모메 식당>은 핀란드 헬싱키의 자그마한 일식당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핀란드와 일본음식의 만남,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 극 중에서 핀란드 사람들은 왜 여유로운지 묻자 핀란드 청년의 대답은 "핀란드 사람들의 고요함과 평안함의 원천은 바로 숲" 이라는 것이다. 핀란드의 깨끗하고 고요한 이미지와 깔끔한 일본 음식이 잘 어울려진다. 카모네 식당을 운영하는..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