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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STORY 2007 우수블로그
2007/09/09 17:42

   ★★★☆☆

실사영화면 됐지 극장용/성인용 애니메이션은 뭐하러 만드냐던 저에게 '오직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황홀한 경지를 보여주었던 작품이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아키라>(1988)였습니다.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이 워낙 좋아져서 그런 어마어마한 장면들을 3D로 만들어 실사 화면에 이어붙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역시 컴퓨터로 그린 일종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선 결국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아무튼 <아키라> 덕분에 그전까지 애니메이션을 홀대하던 저의 불손한 태도를 고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등 좋은 애니메이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죠. 그와 동시에 장편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실사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이어야만 했던 이유'를 찾아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면서는 이 정도라면 실사만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60년대에 발표된 원작자(츠츠이 야스타카)의 동명 소설이 83년에 영화화가 되어 일본에서 대히트를 쳤던 모양이더군요. 이번에 애니메이션으로 새로 만들어진 버전은 원작 소설과 영화에 이은 23년만의 후속작인 셈입니다. 주인공 카즈코의 미술관 큐레이터 이모가 주인공의 타임리프 경험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조언까지 해주게 되는 건 그녀가 바로 원작의 여고생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모의 방 한켠에 학생 시절의 사진이 놓여 클로즈업되는 컷이 있었는데, 결국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전작과 함께 두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시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해서 역사적 사건을 뒤바꾸거나 하는 무슨 대단한 일이 시도되는 것은 아닙니다. 약간 노다메스럽기도 한 마코토의 관심사는 망쳐버린 시험을 다시 봐서 100점으로 되돌려놓거나 가라오케에서 1시간 값만 내고 10시간을 노는 소소한 재미에 집중됩니다. 과거의 일을 되돌려 내가 이득을 봤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가지 않겠느냐는 이모의 경고처럼 타임리프로 바꿔놓은 일로 인해 마음 상하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마코토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은 그간 친구로서만 지내던 치아키에게서 "사귀자"는 고백을 듣게 되는 일이죠. 처음엔 당황스러워하며 피하기만 하다가 조금씩 자신도 치아키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치아키와 타임리프의 비밀도 알게 됩니다.

치아키와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캔디>의 테리우스가 계단 위에서 캔디를 와락 껴안았던 컷이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던 캔디의 독백과 함께요. 저의 쉰내 나는 예상과는 좀 달랐지만 아무튼, 치아키와 마코토는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미래를 기약합니다. 저에게도 이런 소녀적인 감성이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정도이니 지금 한창 나이의 관객 분들이라면 오죽했을까 싶었던 좋은 엔딩이었습니다. 일본 대중영화를 보면 '산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너무 자주 강조하곤 하는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그보다는 좀 더 진취적인 메시지를 들려준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Time waits for no one), 그러므로 있는 힘껏 달려가 잡아야 한다는 얘깁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치아키가 기다리는 곳으로 열심히 달려가던 마코토의 롱테이크였습니다. 이런 장면에선 보통 주인공의 독백을 나레이션으로 들려주면서 어쩌고 저쩌고 하기 마련인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아무런 말 없이 마코토가 있는 힘을 다해 뛰는 그 모습만을 오랫동안 보여주더군요. 시간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지만 자기가 가진 힘을 다한다는 게 역시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인 거죠. 또 그런 순간의 심정을 말로 표현한다는 건 오히려 관객 각자의 상상을 가로막는 일이 될 수 있었을테구요. 약간 아쉬웠던 부분은 치아키가 보고 싶어했고 이모가 복원 작업 중이었던 수 백년 전 그림에 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건데요, 이 부분 또한 각자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보라는 작가의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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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페니웨이™의 In This Film | 2007/09/10 15:17 | DEL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관객과의 친화력이 매우 높은 작품이다. 깔끔한 작화와 동심을 자극하는 감수성, 거기에 시간여행이라는 독특한 코드를 삽입해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주제의식도 가미했다. 얼핏보면 한 작품에 너무 많은 기교를 부린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도 들지만 그 모든 요소들을 버겁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유머와 새련된 구성으로 무난히 소화해낸 연출력이 돋보인다. 주인공 콘노 마코토가 우연히 손에 넣게 된 '타임리프' 능력. 평범한..
BlogIcon 투모로우 | 2007/09/11 11: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애니메이션은 이상하게 안보게되어서..
보다보면 빠지게될 것 같기도 한데... 그 처음이 잘 안되네요.ㅋㅋ
하울의 움직이는 성인가..? 친구가 강추를 하던데....그것두 몇년째 안보구있어요.
BlogIcon Cinerge | 2007/09/11 11:49 | PERMALINK | EDIT/DEL
저도 비슷했죠. 실사영화 보기도 바쁘잖아요. ㅎㅎ 지금도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 꽤 많더라구요.

에반게리온의 새로운 영화판이 이번 부산영화제 폐막작이라더군요. 극장 개봉 기대기대~
BlogIcon smirea | 2007/09/13 18:37 | PERMALINK | EDIT/DEL
투모로우님.. 저두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강추입니다^^
그 뭐라 말할 수 없는 분위기와 음악 정말 압권이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들은 대략 재밌게 봤지만, 특히 하울은 기억에 남더라구요. 기억이라는게 지극히 개인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유령신부도 참 좋았구요.^^

Cinerge님, 이영화는 전 아직 못봤는데요. 제목이 너무 좋아요!^^
BlogIcon 투모로우 | 2007/09/14 01:36 | PERMALINK | EDIT/DEL
smirea님 말씀 듣고보니 진자 시간내서 봐야겠군요..^^
근데 좀 오싹한 느낌도 있다던데..맞나요.
미야자키 하야오. 워낙 유명하지만 하나두 본게없어요.-.-;;
BlogIcon Cinerge | 2007/09/14 08:40 | PERMALINK | EDIT/DEL
smirea/ 제목 만큼 영화도 무척 좋더군요. 기회되면 꼭 보세요. ^^

투모로우/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이시라면 <이웃집 토토로>가 첫순서 아닐까요.
쿠온 | 2008/05/09 11: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리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도 마코토가 치아키를 향해 달리는 롱테이크 입니다. 일정한 속도(시간)으로 흐르는 카메라워크를 마코토가 결국 앞질러 버리는 그 씬은 정말 재치가 넘치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모가 원작의 주인공이라는 건 몰랐던 사실인데 흥미로운 설정이네요.^^ 원작에서 컨셉만 빌려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거의 동시에 보았던 "초속 5cm"와 비교되는 애니였는데 최근 DVD로 두 작품을 다시보니 정적-동적으로 분위기에서는 완전히 대비되는 두 작품이지만 "시간"이나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나름 통하는 점이 있는 애니 같습니다.(개인적으로는 초속 5cm의 정적인 연출이나 애절함이 더 좋았습니다만...)
BlogIcon 신어지 | 2008/05/09 12:43 | PERMALINK | EDIT/DEL
그러고 보니 <초속 5센티미터>도 봐야하는게 계속 미루고 있었네요. 말씀해주신 김에 이번 연휴 동안 그 작품도 봐야겠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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