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쓰 프루프>를 직접 보고나니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 성적은 기대에 못미쳤다'는 얘기가 쉽게 이해되더군요. 한마디로 쿠엔틴 타란티노의 '소문난 집안 잔치' 같은 영화가 <데쓰 프루프>입니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시종일관 깔깔대며 즐거워하는데 멋모르는 외부 손님들은 뻘쭘하게 서있다 돌아서게 만드는 파티장 같은 영화 말입니다. <킬 빌> 때도 그랬듯이 국내 첫 주말 개봉은 적정한 숫자의 스크린만 확보한 채 조심스럽게 시작되었고 개봉 첫 날 저녁의 객석 점유율도 역시나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옛날 동시상영관에서 2편의 영화를 연이어 상영했던 것처럼 한번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절친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과의 <그라인드하우스> 프로젝트였습니다. <데쓰 프루프>는 로드리게즈 감독의 <플래닛 테러>, 그리고 중간의 가짜 예고편들과 함께 <그라인드하우스>를 구성하는 한 짝입니다. 국내에서는 두 영화가 별개의 작품으로서 따로 개봉하지만 두 작품이 연속 상영된 미국 현지에서는 왠만한 매니아가 아니고서는 다소 버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영화 체험이었을 겁니다. <매트릭스 리로디드>와 <매트릭스 레볼루션>이 애초에 동시 상영작으로 기획되었다가 결국 6개월 간격을 두고 따로 개봉하였고 <킬 빌>도 마찬가지였듯이 일반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적인 한계를 별로 고려하지 않고 강행된 프로젝트가 <그라인드하우스>입니다.
<데쓰 프루프>는 그간 쿠엔틴 타란티노가 자기 작품들의 핵심 레퍼런스로 삼아왔던 70년대 B무비의 요소들을 적절히 차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재현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제시되는 경고문처럼 실제로 <데쓰 프루프>는 옛날 동시상영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고의적인 필름 스크래치와 반복 편집, 탈색 현상, 음향 사고 등을 버무려 넣었습니다. 특히 전반부의 카메라 앵글이나 색보정은 60 ~ 70년대 초기 컬러영화의 칙칙한 느낌을 그대로 모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차 안에서나 식당에 둘러앉아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듯한 배우들의 대사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트레이드마크인 동시에 일반 관객들에게는 약간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요소가 됩니다. 타란티노의 영화 중에 이런 식의 장황한 대사 씨퀀스가 없었던 유일한 영화는 흥행 성적이 가장 좋았던 <킬 빌>이었습니다.
<데쓰 프루프>는 타란티노가 <킬 빌>을 만들던 당시에 구상한 작품이고 시종일관 그런 티를 팍팍 드러내는 영화입니다. <킬 빌>의 주요 배경이었던 텍사스의 작은 마을을 주변으로 등장인물들의 남부 사투리 영어가 쉴새없이 쏟아집니다. 특히 <킬 빌>의 첫 씨퀀스에 등장했던 보안관 부자가 다시 등장해 텍사스 깡촌 사투리의 진수를 한번 더 들려줍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킬 빌>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스탭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애버나시(로사리오 도슨)의 핸드폰 벨소리는 <킬 빌>에서 사용된 휘파람 음악이더군요. <킬 빌>에서 우마 서먼의 스턴트 대역을 했던 조이 벨의 출연은 <데쓰 프루프>와 <킬 빌>의 연관성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녀가 직접 보여주는 후반부의 액션 스턴트는 그녀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불가능했던 설정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데쓰 프푸프>가 <킬 빌>의 에필로그나 메이킹 필름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오랜 슬럼프 기간 동안 쿠엔틴 타란티노의 후속작을 기다려주고 <킬 빌>을 열렬히 성원해준 자신의 팬들과 함께 즐겨보겠다는 의도는 명확합니다. 다시 말해, 타란티노의 영화들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가 <펄프 픽션>과 <킬 빌>이었다면 <데쓰 프루프>는 그 반대편에서 자기 스스로와 소수 관객들을 위한 팬서비스 같은 작품입니다. 스턴트맨 마이크(커트 러셀)가 자신이 과거에 참여했던 영화 이야기를 할 때, 바 주변에 있던 생뚱맞은 손님들(전혀 배우 같이 안생긴 안경 쓴 동서양의 여학생들이 일종의 소격 효과를 일으키지요)은 타란티노가 스크린 속으로 직접 초청한 자기 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에 왜 하필 <복수는 나의 것>과 같은 비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었냐는 질문에 박찬욱 감독은 "그때가 아니면 못만들 영화였기 때문에"라고 답했다죠. 그러나 타란티노가 <펄프 픽션> 이후에 만든 <재키 브라운>은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재키 브라운>은 분명 대단한 야심작이었고 그랬던 만큼 실패의 후유증이 컸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킬 빌>의 후속작으로 나온 이 <데쓰 프루프>는 다분히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는 상황에서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 자신의 골수팬들과 함께 한번 신나게 놀아보자고 만든 영화가 <데스 프루프>입니다.
나머지 잡담들>
1. 2008년 개봉을 목표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인 2차 대전 영화, Inglorius Bastards(굳이 번역하자면 불명예스러운 개새끼들 정도?)에서는 예상컨데 <킬 빌> 만큼의 대중적인 친화력을 다시 한번 발휘하리라 생각됩니다. 마이클 매드슨과 팀 로스의 캐스팅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저수지의 개들, 전쟁터로 가다?
2. <펄프 픽션>의 존 트래볼타, <재키 브라운>의 팸 그리어, <킬 빌>의 데이빗 캐러딘에 이어 <데쓰 프루프>에서는 커트 러셀이 '과거로부터 초대받은 손님'입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걸쳐 활약한 액션 스타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이전 아역 시절에는 디즈니 채널의 단골 주연배우였습니다.
3.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중에 유일하게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는 영화가 또한 <데쓰 프루프>네요. 또한 유례없는 반복 편집으로 전반부와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를 과장하고 또 과장합니다.
4. <데쓰 프루프>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홀로 남겨진 리(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의 에피소드를 더 볼 수 있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아마 전기톱으로 갈고 노래 한 곡 뽑지 않았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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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이번 주말에 볼수 있을까 모르겟네요...아, 기자시사를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요...ㅠ
아, 참 저희 블로그 말고 사이트도 들러주세요...ㅎ
http://neoimages.co.kr/ 랍니다.
캬 이런 영화는 취향 비슷한 사람들끼리 몰려가서 봐야 제맛일텐데 말이죠. 이 영화 기자 시사는 좀 그런 분위기였지 않았을까요.
네오이마주,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
헉. 전기톱이...등장하나요....? ㅡ.ㅜ
완전 잔인한 장면이 있긴 있나보군요...쩝.ㅋㅋ
ㅎㅎ 전기톱 안나와요.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신체훼손 장면이 좀 있더군요. ^^;
아 어제 메가박스에서 봤는데 극장 분위기 난리도 아니었어요. 다들 소리지르고 박수치고 깔깔대고..나중에 불켜지고 보니 의외로 아줌마 관객들이 많았는데 이분들 반응이 엄청 뜨거웠다는 ㅋ. 근데 그 홀로 남겨진 애는 이쁜데 멍청한 여자,의 스테레오 타입이잖아요. 그런 여자는 일부러 버려둔 것까지도 통쾌하달까. 암튼 피가 뜨거워지는 신나는 영화였어요 ㅋ. 근데 두 번 보라면 수다 장면을 버텨내기가 쫌...
흐흐흐 너무 부럽습니다. 제가 봤던 고속터미널 씨너스는 너무 정숙했어요.
일부러 버려둔 것까지 통쾌하셨군요. 저는 당장 구해주러 가고 싶었는데. ㅎㅎ
아..아직 안봤는데 꼭 보고싶네요.ㅋ 스타일리쉬한 감독의 연출을 봐야되는데 ㅎㅎ
호불호가 엇갈리긴 하지만 영화를 참 잘만든다는 데에는 이견을 달기가 어렵죠. 늦기 전에 극장에서 보시길 바래요. ^^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영화를 찍겠냐는 말에 100% 동감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은 기쁘지 않을까 합니다..
적절히 대중적인 취향을 맞춰주다가 이따금 하고 싶을 대로 저지르는
유연한 작품 활동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어제 <M>을 보고 나니
더 그런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