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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디악>이 수십 년에 걸쳐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들과 기자들의 이야기였고 <디스터비아>가 이웃집 살인마를 찾아내고 응징하는 하이틴들이 주인공이었다면, <미스터 브룩스>는 드디어 천재적인 연쇄살인범이 주인공으로 나서는 영화가 되겠습니다. 살인마의 행동 패턴을 연구하며 쫓아다니다가 정면 승부를 해야 하는 입장도 아니고 연쇄살인의 피해자나 주변 인물로서 공포와 불안에 떠는 입장도 아닌,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완벽한 살인을 연구하고 그 순간의 흥분을 만끽하며 자기가 만든 작품(?)을 천천히 음미하기까지 하는 자의 입장이란 대체 어떤 걸까요.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주 오래 전부터 수도 없이 많았만 살인범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양들의 침묵>(1991)을 시작으로 한 한니발 렉터 시리즈일텐데요, 이 경우는 안소니 홉킨스에 의해 재창조된 한니발 렉터 박사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매력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한니발 시리즈의 가장 마지막 작품이면서 프리퀄인 <한니발 라이징>(2006)의 실패는 무엇보다 살인마의 탄생 과정을 너무 '설명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즉, 연쇄살인 소재의 영화는 살인범을 주요 배역으로 끌어올리는 것까지는 좋으나(<세븐><큐어>가 좋은 사례죠) 살인범이 아예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경우에는 영화 자체가 너무 설명조로 흐를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게 됩니다.(<몬스터>가 또 하나의 실패 사례입니다) 만약 주인공의 살인 행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면 관객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살인 자체를 즐겨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니 그 역시 밀어붙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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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Hurt & Kevin Costner @ Mr. Brooks (2007) directed by Bruce A. Evans

<미스터 브룩스>는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어느 연쇄살인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브룩스(케빈 코스트너)는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싸이코 킬러 유형이라기 보다는 평범하다 못해 아주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살인 중독증을 이기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는 쪽입니다. 그리고 이 살인 중독자의 심리와 행동을 설명하기 고안된 것이 브룩스의 두번째 자아인 마샬(윌리엄 허트)의 존재입니다. 다중인격 장애가 아니기 때문에 브룩스와 마샬은 서로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농담도 나누고 멋진 파트너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구도는 브룩스가 살인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쪽이고 마샬은 또 한번의 멋진 살인을 저지르라고 부추기는 쪽입니다.

배우로서는 더이상 티켓 파워가 없다고 평가되는 케빈 코스트너와 윌리엄 허트, 거기에 데미 무어까지 모아놓은 영화라서 어쩐지 쉰내가 날 것만 같지만 실제 영화는 잘 정돈된 대저택의 앞마당처럼 놀랍도록 깔끔합니다. 또다른 자아를 가진 살인중독자와 그를 쫓는 여형사를 기본 축으로, 살인중독자의 DNA를 이어받은 딸, 자신도 살인을 해보고 싶어하는 살인현장의 목격자, 형사에게 거액의 이혼합의금을 요구하는 남편과 그의 변호사 정부, 형사에게 보복을 하려고 달려드는 또 다른 살인범 커플 등 언듯 너무 많고 복잡하게 보이는 등장 인물들의 숲을 매끄럽게 통과해 나가는 연출이 아주 일품입니다.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살인 예술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브룩스의 모습은 어쩐지 어려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제임스 본드의 여유를 연상시키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자신의 딸에게 죽임을 당하는 악몽을 꾸고 간절히 기도문을 외우는 브룩스의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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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늑대와 춤을>에서 혼자 제작, 감독,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주요 부문을 휩쓸었을 때 케빈 코스트너는 명실공히 헐리웃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영화인으로 떠올랐습니다. 실베스터 스텔론과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로 대표되는 레이건 시대의 근육질 영웅이 가고 그 자리를 대체한 배우가 브루스 윌리스와 함께 케빈 코스트너이기도 했죠. <늑대와 춤을>을 전후로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들 가운데 졸작이라곤 없던 그가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된 것은 <와이어트 어프>(1994)와 <워터 월드>(1995)의 연이은 실패부터입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영화에 출연하고 있고 제작을 직접 겸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재기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미스터 브룩스>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케빈 코스트너의 최근작일 뿐입니다. 과거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윌리엄 허트나 데미 무어나 모두 마찬가지 처지입니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고, 별다른 기대없이 본 <미스터 브룩스>에서 이들의 앙상블은 수준 이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1992년 크리스챤 슬레이터 주연의 <초보영웅 컵스> 이후 이제 겨우 두번째 연출작을 내놓은 브루스 A. 에반스 감독의 안정되고도 밀도 있는 연출이 <미스터 브룩스>를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볼만한 영화'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입니다.


ps. 연쇄살인범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면서 꽤 성공적이었던 또 한편의 영화로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파트리크 쥐스킨스의 원작에 힘입은 바가 크고 시대와 장소 또한 워낙 이국적이어서 그다지 '사람을 죽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영화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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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天軍 2007/09/03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랙백 걸어두고 갑니다. ^^

  2. BlogIcon 미디어몹 2007/09/03 1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inerage 회원님의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링크되었습니다. 다음 헤드라인으로 교체될 경우 각 섹션(시사, 문화, 엔조이라이프, IT과학) 페이지로 옮겨져 링크됩니다.

  3. BlogIcon 제노몰프 2007/09/27 2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좀 실망스런 작품이었어요.

    저는 영화 전체에 일종의 젠체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는데(특히 음악 때문에 더욱), 영화 자체는 스타일에 비해 그리 잘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X폼을 잡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

    제가 원래 똥X잡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를테면 데이빗 핀처의 영화같은 경우, 영화가 충분히 그 태도를 따라갈 수 있을 때 느껴지는 쾌감 같은게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미스터 브룩스는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네요.

    단, 두 주연 배우의 빛나는 연기는 기억에 남을 듯 합니다.

    • BlogIcon 신어지 2007/11/21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 제노몰프님의 댓글을 이제서야 발견. ^^;;

      나름대로 '품격있는' 연쇄살인극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품격 있으려고 하는 노력이 그 안에서 삐그덕거리는 일 없이 나름대로 일관되게 잘 유지가 되었으니 그 정도면 괜찮은 거죠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