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트래볼타의 새 액션영화로 소개되고 있는 "스워드피쉬 (Swordfish)"는 최근 헐리웃 액션영화들의 기본 문법 몇 가지는 무척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기대하는 '빼어난 범죄 액션물'의 수준에까지는 다다르지 못한 아쉬운 작품입니다. 즉, 영화의 첫 20 ~ 30분 동안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글래디에이터"가 엄청난 스케일의 전투 장면으로, "매트릭스"가 캐리-앤 모스의 환상적인 액션으로 관객들의 오감을 초반부터 단단히 사로잡고 들어갔듯이, "스워드피쉬" 역시 이야기의 시간적 배열을 약간 바꿔 존 트래볼타의 카리스마적인 독백에 이은 긴장감 넘치는 대치 상황과, 어느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폭발 장면'을 통해 아주 성공적인 출발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처럼 성공적인 첫 출발 이후의, 또는 그로 인한 관객들의 높은 기대감(“내가 오늘 끝내주는 범죄 액션 영화를 골라 보는구나!”하는 뿌듯한 기대)을 지속적으로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영화의 남은 부분을 몇 가지 눈요기거리와 액션 장면의 반복으로 채우고 맙니다.

사실 "스워드피쉬"가 갖추고 있는 볼거리는 그 수와 질에 있어서 다른 걸작 액션들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흑인 여배우이면서 금발 미녀에 못지 않은 미모를 지닌 할리 베리가 젖가슴을 드러내며 반라의 열연(?)을 펼치는가 하면 거대한 헬리콥터가 대형 스쿨버스를 하늘로 끌어 올려 도심의 마천루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좋은 영화란 장르를 불문하여 단순한 볼거리의 나열이나 조합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요. 냉정히 말해 "스워드피쉬"가 해낸 개봉 첫 주말 (6월 두번째 주말) 전미 흥행 1위의 성적이란 것도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상황에서 헐리웃 블록버스터라면 의례 한번씩은 하고 넘어가는 일인 데다가 맥빠지는 내용과 지루한 3시간 상영시간 등의 악조건을 두루 갖춘 "진주만"의 개봉 3주차에 따른 어부지리식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오히려 놀라운 것은 침몰하는 "진주만"을 딛고 서서 당당히 흥행 2위를 지킨 "쉬렉"의 선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튼 작년 "배틀 필드"라는 최악의 영화에 최악의 주연배우로 출연해 오명이란 오명은 다 뒤집어 썼던 존 트래볼타가 올해 "스워드피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는 얘기는 6월 세번째 주말 안젤리나 졸리의 "툼 레이더"와 드림웍스의 "쉬렉"에 대한 디즈니의 반격, "아틀란티스"의 개봉으로 단 한 주 동안만의 팡파레로 끝날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스워드피쉬"에서 가장 얘기 거리가 될만한 인물은 가장 비싼 개런티를 받았을 존 트래볼타나 감독인 도미니크 세나가 아니라 "엑스맨"의 늑대인간 휴 잭맨(Hugh Jackman)입니다. "엑스맨"과 "썸원 라이크 유"의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멜 깁슨과 러셀 크로우에 이어 호주 출신 남자 배우로서 또 하나의 성공적인 헐리웃 진출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휴 잭맨에게 이번 "스워드피쉬"에서의 배역은 적어도 그의 대중적 인지도 만큼은 확고히 해주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케 하는 훤칠한 체격에 호주 남성 특유의 호쾌한 매력이 일품인 이 배우가 "인사이더"와 "글래디에이터"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이제는 완전한 주연급 스타로 자리잡은 러셀 크로우의 좋은 선례를 그대로 재연해 낼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는 일 또한 앞으로 꽤 재미있게 따라가 볼 수 있는 일이 될 것 같네요.

"스워드피쉬"에서 존 트래볼타는 "브로큰 애로우"나 "배틀 필드"에서 만큼의 악역 배우로서의 재능을 잘 발휘했습니다. 이번 "스워드피쉬"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70년대 디스코의 상징 인물로서 잊혀져 가고 있던 그를 94년 퀀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이 완전히 뒤바꿔 놓았던 만큼의 큰 변화를 또 한번 기대해 볼만도 했을 그런 캐릭터입니다. 적어도 영화의 초반에는 그렇게 나오구요. 그런데 초반 이후 영화의 중심이 휴 잭맨과 존 트래볼타를 사이에 두고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다 마는 바람에 결국 미적지근한 캐릭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스워드피쉬"에서의 존 트래볼타에 대한 제 아쉬움은 연출자인 도미니크 세나에 대한 아쉬움으로 그대로 연결됩니다. 그가 만든 전작들의 작품성을 떠나 그의 연출 스타일은 토니 스코트나 마이클 베이의 박력과 데이빗 핀쳐의 꼼꼼한 카메라 워킹을 잘 배합해 놓은 듯한 흡인력 있는 그림을 만들어 내는 장점이 있는 데다가 "칼리포니아"와 "식스티 세컨스"에 이어 이번 "스워드피쉬"에 이르기까지 그가 줄곧 연출해 온 '범죄 액션 영화' 부문에서 확고한 인정을 받았으면 하는 기대가 내심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드라마를 장악하고 이끌어 가는 능력에 있어서 미완의 연출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영화 제작의 야전사령관인 감독의 함량 미달은 해당 작품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출연한 배우들의 공로를 퇴색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스워드피쉬"만 하더라도 존 트래볼타와 휴 잭맨 뿐만 아니라 영국 출신 비니 존스의 강력한 악역 캐릭터나 오랜만에 사악한 상원의원으로 모습을 보인 샘 셰퍼드의 빼어난 연기까지 전부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범죄 액션 영화로는 간단히 퀀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과 데이빗 핀쳐의 "파이트 클럽" 정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작품은 전체적인 영화적 완성도와 기발한 아이디어, 출연 배우들의 선명한 캐릭터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시선과 관심을 사로잡는 흡인력있는 연출 등이 가히 최고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영화들이라 생각합니다. 보는 영화마다 이런 정도의 흥분과 탄복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자꾸 기대하게 되는 것이 일개 관객으로서는 좀 지나친 일일까요. 아무튼 제게 "스워드피쉬"는 이모저모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입니다.

2001.06.13 @ column.dreamwiz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0 :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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