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하우스에서 "데블스 에드버킷"을 봤다. 그저 도산사거리의 두 극장(상영관은 8개)에서 괜찮은 거 있으면 보려던 계획으로 갔었는데, 전에 "스타쉽 트루퍼스"를 볼 때 예고편이 인상적이었던 "데블스 애드버킷"을 보게 됐다. 키네마에서 하는 "티벳에서의 7일"도 볼만 하지 않았을까 미련이 남는다.

사실 요새 "데블스 애드버킷"만큼 홍보를 열심히 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싶다. 마치 이 영화 말고는 통 볼만한 영화가 없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문제는 홍보가 지나쳐 막상 영화를 보는데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영화보는 재미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줄거리 다 까발리기'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영화보다 큰 지면으로 영화 광고를 신문에 싣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영화에 대한 신문 지상의 소개 또는 논평, 그리고 방송에서까지 영화를 거의 다 까발리고 있다.

바로 내가 그 피해자다.

"데블스 애드버킷"은 테일러 핵포드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빼어난 원작 또는 각본에 한껏 의지하고 있는 영화다. 바꿔 말하자면 "데블스 에드버킷"은 스토리가 주는 것 이외엔 별 볼 일이 없는 영화다.

그렇다고 이 영화 자체가 후지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저 스토리를 알고 보면 '스토리가 주는 것 이외의 것'이 별로 없음으로 인해 약간 화가 날 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데블스 에드버킷"을 가장 즐겁게 보는 방법은 바로 이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영화관에 들어가는 것이다.

'스토리가 주는 것 이외의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배우. "데블스 애드버킷"에는 알 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다. 두 사람에게 제작비의 대부분을 써버리느라 그랬는지 조연 중에는 그닥 주목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 알 파치노나 키아누 리브스나 너무 평면적인 연기를 한다. 연출의 탓이고 감독의 잘못 탓이다. "히트"나 "시티홀"에서의 알 파치노가 그리운 것은 물론이고, 키아누 리브스는 "필링 미네소타"에서의 연기나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테일러 핵포드 식의 무능력한 연기 통제는 키아누 리브스의 부인 역으로 나온 조연 여배우의 연기에서 극을 달한다. 좀 짜증스러운 정도까지 갔다. 그러고 보면 "돌로레스 클레이본"도 스토리가 좋아서였지, 배우들의 연기는 별로 남는게 없다.

그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 이외의 다른 것들도' 훌륭한 여러 편의 영화들에 비해 "데블스 애드버킷"은 너무 빈약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두시간 동안 정신없이 볼 수 있게, 보고 나서도 가슴 한구석에 뭐가 남아있게 하는 건 진정한 영화 감독의 재능이다.

"출발! 비디오여행"이 바로 가해자였다.

이노무 방송 프로에는 "왜?"라는 괴상한 코너가 있다. 개봉 예정 영화의 ABC를 다 보여주는 잔인한 코너다. 전엔 "퍼니 게임"을 까발려 결국 영화 못보게 만들더니 이번엔 "데블스 애드버킷"이었다. 예고편을 봤을 때부터 '이 영화 재밌겠다. 꼭 봐야지.'했기 때문에 보고 말았는데, 역시 결과는 잔인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지루함은 없었지만, 생각해 보라. 철들면서 낯선 영화, 컬트 영화 찾게 되었던 건 그간 즐겨 보아오던 그렇고 그런 종류의 영화가 이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빤히 보이기 시작하고, 자꾸 본전 생각만 간절해져 왔기 때문이지 않았냔 말이다.

1997.12.23 @ hitel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0 :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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