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티 극장에서 "No.3"를 봤다. 시나리오 작가였던 송능한 감독의 데뷰작이다. 탄탄한 구성과 완성도 높은 영화가 나올거란 기대감을 주었었는데, 크게 틀리지 않다. 여름 시즌에 헐리웃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우리 영화들이 깨갱하고 앉아있는 판국에 애초부터 여름 개봉을 목표로 해서 현재 잘 나가고 있다.
조직 폭력배, 깡패, 건달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넘버원이 되고자 하는 모두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한번도 넘버원이 되고 싶어 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별로 공감이 안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석규와 이미연이 부부싸움 할때의 대사는 인상적이다. "난 뭐 애 갖기 싫은줄 알아? 애 생기면 맘 약해져서 이짓도 못한단 말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자식이 생겨 가면서 사람 맘은 그만큼씩 약해져만 간다.
3개의 에피소드에 소제목을 달아 놓았다. 퀀틴 타란티노의 영화 보다는 미셀 파이퍼, 매튜 모딘, 알렉 볼드윈 등이 나왔던 코믹 갱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갱들의 '생활' 쪽에 비중을 두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들과도 다르다. 허황되지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으면서 무척 재미있다.
아직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 배우, "초록 물고기"에서 진짜 쌩양아치로 나왔던 그가 "No.3"에서도 한 연기 보여준다. 똘마니 셋을 여관방에 앉혀놓고 문자 써가며 가르침을 베풀 때까지는 저게 뭐하는 건가 했었는데, 임춘애를 현정화로 잘못 알았던 그때부터 난생 처음보는 희한한 청부살인자를 연기해냈다. 롱테이크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의 연기 앞에 카메라는 눈 한번 껌뻑하지 못한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와 주제 의식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조직폭력배들을 주인공을 해야 했을 이유는 물론 없다. 하지만 그네들이 나오면 영화가 돈으로 쉽게 바뀐다. 박중훈이 나오는 영화도 흥행이 된다. 하지만 박중훈의 영화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같은 TV 프로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별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반면, 한석규가 나오는 "No.3"는 확실히 '영화 답다'.
카오스라는 고급 룸싸롱인지 단란주점인지에서 한일 폭력배 모두가 일망타진되는 대단원과 반전은 훌륭한 것이었지만, 마지막 에필로그 부분은 왠지 허전하다. 지도 완장을 찬 형무소의 주인공이 왜 쇠기둥에 머리를 막고 자빠져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1997.08.17 @ hi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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