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보기 전에 내가 알던 "매트릭스"라는 영화는 참신한 설정과 비주얼에 많은 영화 외적 요소을 융합한,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수퍼히어로 영화의 골격(영웅의 탄생)을 충실히 따름으로써 전세계 영화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SF 액션 영화였다.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들보다 훨씬 더 많은 진기한 볼거리들을, 완벽하게 짜여진 극적 구조 속에서 알차고 재미있게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죽음에서 부활한 네오의 출사표로 마무리함으로써 속편에서 이어질 새로운 영웅의 활약상을 수년동안 고대하며 기다리게 만든 영화가 "매트릭스"였다.

4년만에 마침내 공개된 "매트릭스"의 속편을 통해 관객들이 보고싶어 했던 것은 말 그대로 "매트릭스"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였다. 전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로 치솟았던 네오가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기계의 앞잡이들을 마구 때려주고 괴롭히다가 마침내 도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내는 통쾌한 후속편을 기다렸던 것이다. 바로 이정도가 영화 관람을 일상생활로 삼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1년에 한두어번 대박 영화 만들기에 참여할 때에만 극장을 찾는 훨씬 더 많은 수의 불특정 영화 관객들까지도 만족시킬 수 있는 신나고 재미있는 속편 영화로서의 적정 수위다. 그러나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많은 관객들이 환호할 수 있는, 전편에서는 비교적 충실히 따름으로서 많은 관객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대중적인 장르 영화로서의 적정 수위'를 훌쩍 넘어서 버리고 말았다.

"매트릭스 2 리로디드"를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스토리 상의 가장 핵심적인 사실은 매트릭스 세상의 메시아, 네오가 기계를 까부수는 방식으로는 인류를 구원할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2천년전 예수가 대다수 유태인들의 바램대로 로마인들을 통쾌하게 무찔러 주기는 커녕 힘 없이 십자가형에 처해짐으로써 그들을 크게 실망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네오도 그에 대한 모피어스의 신념, 그리고 새로운 수퍼맨의 본격적인 활약상을 보러온 관객들의 '당연한' 기대를 일단은 저버려야 하는 것이 2편의 내용이었다. 따라서 매트릭스 3부작의 최종회가 될 "레볼루션"은 그것이 기계와 인간의 사랑을 통한 평화의 완성이 되건 어쩌건 간에 1편에서 영웅의 탄생과 희망, 2편의 실망과 좌절에 이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결말을 제시하게 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물론 "매트릭스 2 리로디드"가 실망스러운 이유는 그 내용이 대단원의 막으로 가기 위한 중간 과정에 불과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1편에서 죽음과 부활의 체험을 통해 매트릭스의 원리를 완전히 체득하여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하게 된 전무후무한 수퍼히어로 네오가 그깟 100명 남짓의 스미스 요원을 한 손가락 동작으로 가뿐하게 없애 버리질 못하고 지루한 쿵후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은 실망도 실망이거니와 조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전편에서 일취월장한 네오의 능력으로 보아 원래는, 네오의 상상을 초월하는 활약상을 딱히 할 일이 없진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모니터로 지켜나 보는 것이 맞는 그림이 아니었던가? 예상치 못한 기계의 덫에 걸려 초인간 네오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야 목숨을 걸고 모피어스와 트리니티가 출동해서 네오를 구해주고, 다시 힘을 되찾은 네오의 일격에 기계의 메인프레임이 박살나면서 영화가 끝났어야 하는거 아니었나?

하지만 영화가 뻔한 속편의 패턴을 밟았을 때 그것에 만족했을지 아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현명한 관객이라면 예고편으로 이미 본 장면들의 길게 늘인 버전에 불과할 지라도 한 편의 잘만든 SF 액션 영화, "매트릭스 2 리로디드"의 업그레이드된 액션 시퀀스들을 충분히 즐기는 편을 택할 것이다. 더구나 우리의 스타들이 보다 나은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서 몇 개월씩이나 하드 트레이닝을 했다지 않은가. 나도 시온에서의 레이브 파티 장면과 네오와 트리니티의 베드씬이 교차되는 시퀀스는 이상하리 만치 길게 느껴졌었고 대부분의 액션과 특수효과가 새롭다기 보다는 당연한 것들로만 생각됐었다. 하지만 기왕 돈내고 시간 들여 보러온 영화, 트집 잡고 지루해하기 보다는 이럴 때야말로 감독의 의도 뭐 그런 걸 헤아려 보면서 영화에 나를 한번 맞춰볼 필요가 있다.

워쇼스키 형제가 "바운드"(1996)를 만들기 전부터 이미 매트릭스 이야기의 전편을 다 완성해 놓고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그들이 1편을 처음 연출할 때부터 정말 3부작까지 갈 수 있게 될지는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조엘 실버가 조달해준 7천만 달러의 제작 예산에 감격해하며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을 최고의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과 온갖 영화적 아이디어들을 모두 다 쏟아 부었고, 이 때문에 속편에서는 1편에서 이미 소진해버린 여러 극적 요소들의 재탕이 불가피했다라고 보는 시각엔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정말 안이한 태도로 속편과 3편의 제작에 임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에서 보여준 재능을 2편, 3편을 준비하면서도 충분히 발휘했을 것으로 믿는다. "매트릭스 2 리로디드"가 3편 "레볼루션"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라고 생각하고 맘 편안히 11월을 기다릴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003.06.03 @ blog.naver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0 :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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