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요한슨의 새 영화라는 점에서, 그리고 콜린 퍼스가 함께 출연한
영화라는 점에서 우선 관심을 끌게되는 영화지만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17세기의 네덜란드에서 빛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선보였던 실존 화가에
관한 진지한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영화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작품들을
스크린 위에 고스란히 옮겨오듯 몇몇 장면에서는 대단히 회화적인,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빛의 미장셴을 선보이며 이 영화가 다름 아닌
베르메르의 작품들에 대한 헌사이자 그 자체로서 한 폭의 그림으로 오래
기억되길 소망했던 결과물로 받아들여지게 한다.
 
영화의 플롯은 베르메르의 1665년작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뒤에 감춰진
사연을 소개하는 것이 전부지만 (물론 원작자인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상상
력에 힘입은 픽션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가진 설득력은 충분하다) 그 안
에는 여느 '예술과 예술가에 관한' 영화들에서 보듯 작가-화상-자본가의
역학관계가 작품 탄생의 주변 환경으로서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무엇
보다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차마 열어 내보이지 못한 내밀한 욕망의 스케치가
탁월하다.
 
스칼렛 요한슨이나 콜린 퍼스, 두 사람 모두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섬세한 성격의 캐릭터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라 이 영화의 주연
들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굳이 평가를 하자면 스칼렛
요한슨의 일취월장에 콜린 퍼스가 도우미로 나선 형국이랄까. 두 배우의
연기를 평이한 수준으로 보이게 만든 베르메르의 부인, 에씨 데이비스의
호연은 몇몇 영국 영화에서만 이따금 맛볼 수 있는 '독보적인 배우의 힘'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게 해준다.

2004.09.05 @ blog.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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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1 : Comment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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