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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감독 김기영 (1960 / 한국)
출연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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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흑백 영화였다. 우리나라에서 총천연색 컬러 영화가 정확히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는 흑백 영화였다.

물론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를 먼저 보고난 후에야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처음 봤다. 예전에 <이지 라이더>(1969)가 그랬듯이 <하녀>도 '여기저기서 자주 듣다 보니 나도 언젠가 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작품을 감상해보면 이 영화 생전 처음 보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하녀>에 대한 막연한 선입관은 아마도 비슷한 설정이나 이미지의 다른 영화들 - 아마도 <영웅본색>(1986)을 보러 재개봉관에 들락거리며 동시상영으로 봤던 <빨간 앵두 2>(1985)나 <산딸기 2>(1984)의 영향이 가장 컸고 그외 칼부림으로 마무리되곤 했던 해외 영화들의 영향인 듯 - 로부터 형성되었던 듯 하다. <하녀>를 실제로 보지 않았으면서 그 제목을 들을 때마다 다른 영화들에서 본 장면들을 엮어서 막연히 상상하곤 했던 것이다.

1960년의 <하녀>와 2010년의 <하녀>는 모두 서스펜스 스릴러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원작 <하녀>가 그로테스크하다는 평을 자주 듣곤 하지만 글쎄, 뭐 이런 정도에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를 붙이기 시작하면 좀 곤란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상기 작곡, 한국영화음악교향악단 연주의 시종일관하는 배경음악만 걷어내보면 이것이 과연 특별히 기괴하다고 할 정도의 영화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된다. 감독 복원판이 완성되기 전에 듬성듬성 건너뛰던 그것을 기괴하다고 했던 거라면 달리 할 말은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 작품 간에 차이점은 유사점 보다 훨씬 많다. 무엇보다 시점의 차이가 크다. 두 작품 모두 전지적 시점이긴 하지만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하녀의 입장에서 바라본 '마님들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마님 같지도 않은 마님들의 입장에서 하녀를 바라본다. 1960년의 마님은 이제 막 가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음악 선생과 재봉질의 달인이신 부인이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2층 집을 지었는데 그야말로 집 안 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 하녀를 구해 들인다. 그런데 이 하녀가 좀 원초적 본능 계열이신지라 - 아마도 이 점이 김기영 <하녀>의 줄거리를 형성하는 핵심이지 싶다 - 남자를 유혹하고 덜커덕 애까지 갖게 된다.

임상수 <하녀>의 은이(전도연)가 순정파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것과 달리 김기영 <하녀>의 하녀(이은심)는 - 1960년에 설마 '하녀'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싶었는데 이 하녀는 이름도 없이 그야말로 하녀라고만 불리운다 - 집 안을 아예 통채로 집어삼켜버린다. 이 추잡한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감으로 해서 남편이 직장에서 짤리지 않을까 싶어 자기 아이의 죽음까지 덮어버리자는 부인은 알고보면 하녀에 못지 않은 흠좀무 계열이시다 - 이렇게 두 여성을 인식하는 남자의 시각이 바로 김기영 <하녀>의 주제를 형성하는 핵심이다. 두 여성의 틈바구니에 낀 남편 동식(김진규)은 영화 속 모든 갈등과 번민을 짊어진 채 욕망의 굴레에 빠진 소시민의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액자 형식의 구성을 취함으로써 본 줄거리로부터 전달되는 심적 부담감을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해소시켜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보면 <하녀>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누가 죽거나 하는 장면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시종일관 오만상을 찌푸리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고야 말았던 동식이가 에필로그로 전환되면서 멀쩡하게 살아남아 관객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호탕하게 웃어제끼는 대목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에필로그까지를 모두 포함한 전체로서의 <하녀>는 서스펜스 스릴러이기는 커녕 일종의 세태 풍자극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는 셈이라고 생각된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사용했다느니 하는 말 보다는 오히려 이런 구성적인 측면이 <하녀>를 당대의 작품들과 확연히 구분시켜주는 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동시대의 관객들이 보기에 <하녀>는 뭐가 그리 좋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는 쪽도 있을 것이고 한국 영화 최고의 걸작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일치된 의견을 보이는 쪽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하녀>가 별로라는 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인 동시에 걸작으로 추앙하는 쪽에는 당대의 기준이 아닌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 무엇이 그리 잘 되었다는 것인지를 물어보고 싶다. <하녀>는 역사적인 작품의 발견과 복원이라는 의미 이상의, 지금의 관객으로 봤을 때에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한 정도의 수준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물론 업계 종사자분들의 입장에서는 달리 받아들일 만한 이유가 여럿 있을 수가 있겠지만 말이다. 같은 시기의 다른 영화와 굳이 비교를 하고 싶지는 않고, 그저 영화가 별로였으면 그냥 별로라고 얘기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해서 토를 달고 마는 것이다. 나는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훨씬 재미있고 의미도 풍성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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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1 : Commen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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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10.06.18 20:09

    비밀댓글입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0.06.19 09:15 신고

      ㅋ 그러실 필요가 절대 있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요~ 사람마다 영화 보는 눈이 각자 취향과 상황에 따라 다 다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놀랍도록 비슷한 감상을 갖게 된 걸 확인하는 경우도 있지요. 뭐 그러다보면 표현 방식도 얼추 비슷하게 나오는 수도 있는 거겠고요.

      두 영화의 차이점을 발견하는 시각은 같지만 각도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리메이크가 하녀의 시각에서 마님들의 세계를 조망하는 부분에서 좀 더 흥미를 느꼈고(그 안에서도 다시 대왕 마님과 하녀들로 구분되긴 하지만) 원작에서 동식이 절대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식의 입장에서 상황을 받아들이게끔 연출되었다고 보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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