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투 더 와일드
감독 숀 펜 (2007 / 미국)
출연 에밀 허쉬, 빈스 본, 캐서린 키너, 크리스틴 스튜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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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 술 김에 주절주절 써놓았던 것을 싹 날려버리고 지저귀듯(twittering) 다시 쓴다.

- 크리스틴 스튜어트 출연작 찾아보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알게 되어 감상.  <메신져 - 죽은 자들의 경고>(2007)가 크리스틴 스튜어트 얼굴 보는 거 외에는 별로 얘기할 만한 건덕지가 없었던 영화였던 반면, <인투 더 와일드>는 그 한 명의 배우를 까맣게 잊어먹게 만들 만큼 아주 크고 깊은 영화였다. 이럴 땐 '크리스틴 스튜어트 덕분에' 이 영화를 봤다고 해주면 되는 거겠지.

- 존 크라카우어의 원작을 숀 펜이 각색, 감독한 작품. 에밀 허쉬가 주연을 맡았다. 포스터만 봤을 때는 흔한 로드 무비, 성장 영화, 자연 동경 뭐 이런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인투 더 와일드>가 로드 무비, 성장 영화, 자연 동경이란 표현은 크게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종교적인 감화의 단계에까지 근접하는 영화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유에 관한 영화라고 하면 될 거 같다. 진정한 자유를 추구했던 어느 젊은 영혼의 이야기. 주인공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홀로 미국 땅을 돌아다니면서 자유를 추구하는 영화니까 미국적인 느낌이 들 수 밖에 없긴 하다. 그 자유란 물질주의와 부도덕함 위에 뿌리 내린 미국의 역사에 대한 거부감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였고 불꽃처럼 살아 숨쉬는 히피 정신의 대를 이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현대판 어린왕자의 이야기 같은 우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러나 영화는 결국 그 보다 훨씬 더 먼 지점까지 나아가며 마무리된다.

- 대학 졸업 직후 모든 것을 버리고 길을 떠나는 시점과 2년 후 알래스카의 모처에서 겨울을 보내는 시점, 영화는 그렇게 두 갈래로 시작되어 교차된다. 누이 캐린(제나 말론)의 나레이션을 통해 주인공 크리스(에밀 허쉬)의 방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개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낸 영화는 이제껏 많이 봐왔지만 풍광과 함께 사람, 동물, 그외 사물들까지 함께 어우러지며 이토록 아름답게 비춰지도록 찍은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막연히 사색적인 분위기로 이끄는 것도 아니면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영상시를 툭툭 던져준다. 올리비에 아싸야스 감독과 작업했던 에릭 고띠에의 카메라다.

(심각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2년 간의 이야기가 끝나고 크리스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비쩍 말라간다. 저러다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라는 문장을 남기고 그대로 숨지고 만다. 크리스찬 베일이 <머시니스트>(2000)를 위해 했던 끔찍한 체중 감량에는 못미치지만 감독과 배우가 이 영화를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했는지는 충분히 전달이 될 수 있는 정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크리스의 가출이 출가로 다시 생각되고 알래스카의 오지에서 홀로 버티고 있는 이유도 깨달음을 위한 정진으로 다시 보이더라.

- 그 고독과 죽음에까지 이르는 상황 속에서 마침내 공생의 진리를 깨달았 것만, 막상 그 자신은 공생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그의 깨달음은 책으로, 그리고 영화로 전해져서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에밀 허쉬는 <알파 독>(2006)에서 봤던 뺀질한 이미지가 있어서 <스피드 레이서>(2008)에서도 그냥 연기 잘 한다는 정도였는데 이번 <인투 더 와일드>를 통해 배우로서 발견했다.

- 숀 펜은 재능 많은 젊은 배우였지만 그 보다는 마돈나의 남편이요 파파라치를 때려서 법정에 서기도 했던 망나니 스타 이미지를 오랫동안 갖고 있지 않았던가. 지금의 숀 펜은 배우로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탁월함을 여러 차례 입증해왔지만 이렇게 직접 만든 작품들을 통해, 그리고 정치적인 발언들을 통해 존경받는 영화인들의 대열에 서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설 수 있었던 데에는 <인투 더 와일드>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포일러가 아닐 수도 있지만, 마지막으로)




-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이었던 것은 <인투 더 와일드>가 허구가 아닌 실화라는 사실이었다. 크리스가 죽고 마지막 컷에 남겨진 자막을 통해서야 알았는데 영화 전체의 내용이 다시 정리되고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청춘 방랑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인투 더 와일드>는 그 이상의 진지함으로 가득했고,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실존 인물이었던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의 이야기라고 해서 한 마디로 쇼크를 먹었다.

- 수 많은 신화와 전설들이 있었지만 특별히 예수나 부처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실존 인물의 이야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크리스 맥캔들리스의 이야기인 <인투 더 와일드>는 실화이기 때문에 그런 만큼의 무게감을 지니게 된다. 차라리 그냥 허구였다면 이렇게 영화 한 편에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과 내가 만약 이 영화를 대학 시절 즈음에 봤더라면 지금과 달리 분명 무슨 짓이든 했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실화이기에 듣는 이에게 전달되는 영감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크리스가 다녀갔던 그 여러 곳을 성지 순례라도 다녀오고 싶다. 크리스의 그 142번 마법 버스 옆에라도 잠시 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검색을 해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다녀오고 계신 듯)



Christopher Johnson McCandless, 1968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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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1 : Comment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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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도미애 2010.01.08 10:36 신고

    전 이 영화가 너무 좋아서 Happiness only real when shared 이 문구를 제 좌우명으로 삼았어요. 생각할거리가 너무 많은 영화죠.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0.01.08 16:17 신고

      이런 정도로 큰 영감을 주는 영화를 만나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valentine 2010.01.08 12:38 신고

    몇 개월전 동생이 추천해서 보려고 했었는데, 포스트를 읽으니 빨리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0.01.08 16:19 신고

      저도 좀 미루다가 봤는데 미처 몰라봐서 죄송한 영화네요.
      몇 개월의 미루심은 이제 그만~ ^^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chocodama 2010.01.08 16:32 신고

    영화가 보고 싶어서 글을 다 읽진 않았어요.
    심각한 스포일러란 말은 왠지 영화 볼거면 보지마셈...같아서리...
    잘 보고 다시 오겠습니다.ㅋ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0.01.08 22:24 신고

      넵 바로 그런 의미의 스포일러 경보입니다.
      이야기의 결말을 미리 알게 되시면 영화 볼 때 밋밋해지니까요.
      꼭 보시고 다시 와주세요. ^^

  4. addr | edit/del | reply kstew♡ 2010.01.09 00:05 신고

    저두 몇주전 보고 친구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있다는...(이런 영화는 많은 사람이 보고 느끼면 좋은것 같은 생각이..)젊은패기라는깡으로라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맘도 들지만 여러 사회적 제약 때문이란 핑계로 상상만 하고 있어요ㅎ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0.01.09 23:18 신고

      출발의 동기는 아마도 다들 비슷하겠지만 그 여정이나 목표 지점이
      남달랐던 인물의 이야기죠. 크리스처럼 여행하기에 저는 이미
      너무 속물이더라고요. ㅎㅎ

  5.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재준씨 2010.01.09 14:20 신고

    저도 아주 우연찮은 기회로 보게된 영화인데 보고나서 꽤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특히 실화라는 점도 꽤 충격적이었고...깨달음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는 말을 새삼 떠올렸습니다.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0.01.09 23:20 신고

      벼르다가 본 것도 아니고 그저 우연한 기회에 본 영화치고는
      내용이나 깊이가 남달라서 더욱 인상적인 감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 실화라는 사실이 상당한 충격을 주죠. 다른 분들도 이거 모르고
      보셔야 할텐데. ^^;

  6.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몬스터 2010.01.17 09:36 신고

    보고싶어서 글을 자세히 읽진 않았습니다.
    이 영화 개봉했었나요?
    DVD로 봐야되는건가해서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0.01.17 11:35 신고

      아직 국내 개봉을 못했고 DVD로도 정식 출시가 안되었어요.
      2008년에 충무로 영화제에서 한 차례 상영이 되었던 정도... ㅠ.ㅠ

  7. addr | edit/del | reply g. 2010.02.10 23:43 신고

    포스팅 보자 마자 주문해 버린 DVD와 책. 책은 진도가 안나가요...ㅠ.ㅠ

  8. addr | edit/del | reply twilighter 2010.04.03 22:42 신고

    크리스틴 팬이신가요봐요^^
    저도 팬이예요~~저도 크리스틴의 출연작을 찾다가 봤거든요~
    정말 님의 말대로 크리스틴 때문에 본 영화라는 걸 잊게되는 아주 감명깊게 봤던 영화예요~
    갠적으로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못 보신분들은 꼭 보시길!!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0.04.05 12:31 신고

      크리스틴도 나쁘지 않았지만 영화 전체가 워낙 큰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그 안의 크리스틴은 좀 작아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

  9.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에소테릭 2015.01.25 11:38 신고

    어제 영화를 보고 감격에 겨워 검색했다 들어왔습니다. 아무런 지식 없이 봤었는데, 숀펜이 참여했었군요. 저도 실화라는 무게감에 spiritual한 뭔가가 느껴져서 영화 이상의 감동을 받았네요. 제가 갔었던 알래스카의 풍경도 보이고 거기서 곰을 만났던 기억이나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갔던 기억들이 떠올라 더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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