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레이서
감독 앤디 워쇼스키, 래리 워쇼스키 (2008 / 미국)
출연 에밀 허쉬, 크리스티나 리치, 존 굿맨, 수잔 서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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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닌자 어쌔신>의 관람에 앞선 일종의 선행 학습 차원에서 작년 5월에 개봉했던 <스피드 레이서>를 감상했습니다. <매트릭스> 3부작 이후 5년만에 내놓은 워쇼스키 형제 감독의 연출작인 데다가 비(정지훈)가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고 해서 많은 기대를 모았었는데 지나치게 '만화 같다'는 이유로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는 작품이 되고 말았죠. <스피드 레이서>의 설정과 비주얼은 확실히 3D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만화경의 세계인 것이 맞습니다. 사실적인 묘사 속에서 몇몇 만화적인 대목이 튀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 전체가 아주 의도적으로 만화 그 자체로 보일 수 있도록 연출된 작품입니다. 등장 인물들의 이름에서부터 각자의 캐릭터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미래의 경주용 자동차들이 머리 위로 붕붕 날아다니곤 합니다. 이 작품이 너무 '만화 같다'고 재미없어 하든 아니면 그 만화적인 세계 속에서 신나게 즐기든, 선택은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긴 합니다만 분명한 사실은 <스피드 레이서>에 묘사된 세계 자체가 허술하게 보이는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더라는 점입니다.




알려진 바 대로 <스피드 레이서>는 19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마하 고 고 고!> 원작의 실사판 영화입니다. 일장기처럼 하얀 본넷 위에 붉은 색 M 마크가 칠해진 경주용 자동차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모험 활극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달려라 번개호>라는 제목으로 76년에 방영이 되었다는군요. 저 역시 TV를 통해 이 작품을 봤던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이 나긴 합니다만 너무 어렸던 시기라서 특별한 감흥이 남아있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차 앞으로 톱니 바퀴가 나오는 장면이 기억나는 걸 보면 아마도 TV 방영 보다는 그 이후에 프라모델이나 딱지 등을 통해서 더 자주 접했던 작품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언제 방영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패니메이션의 팬으로 알려진 래리(65년생)와 앤디(67년생) 워쇼스키 형제는 그야말로 매니악한 취향의 영화 한 편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자신들이 좋아라 했던 작품을 실사 영화(라고 하지만 만화나 다름없는 비주얼과 액션의 영화)로 재탄생시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나아가 새로운 세대의 어린이들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꿈을 실현시킨 것이죠 - 더불어 그 뒤에서 이런 '매니악한' 작품의 탄생을 가능케 해준 제작자 조엘 실버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피드 레이서>는 매니악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글로벌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가수 출신인 비(정지훈)만 출연시킨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영미권 배우들과 독일(크리스티안 올리베르,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 프랑스(멜빌 포푸), 일본(사나다 히로유키, 이가와 토고), 중국(위난, 유팡), 그외 박준형과 릭윤의 동생 칼윤도 모습을 보이더군요. 각 나라별로 홍보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취지도 있겠습니다만 이는 워쇼스키 형제의 프로젝트에 대한 폭넓은 지지와 스케일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비주얼과 스타일에 있어 전작 <매트릭스>와 상당히 다른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스피드 레이서>는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자로 참여했던 <브이 포 벤데타>(2005)까지 포함해서, 관객들을 변함없이 선동하고자 하는 의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자동차 경주를 계속 해야 할 이유에 대한 스피드(에밀 허쉬)의 질문은 곧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한 질문이고, 거짓과 탐욕으로 뒤범벅된 세상을 자신의 실력으로 눌러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라고 워쇼스키 형제는 작품을 통해 여전히 재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그랑프리에서 시동이 꺼져버린 마하호를 스피드가 다시 살려내던 장면에서조차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면 <스피드 레이서>는 저에게도 그저 안타깝기만 한 당신들의 영화로 기억되었을런지 모르지만 다행히 안구가 시큼할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을 안겨주더군요. 덕분에 <스피드 레이서>에 대해서는 작품에 대한 호불호의 다름이 있을 뿐,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워쇼스키 형제가 다시 한번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었다는 데에 이견이 있을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전체 관람가 영화이거나 '만화 같다'고 해서 워쇼스키 형제 영화의 극장 개봉을 감히 외면하는 불상사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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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0 : Comment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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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shinlucky 2009.11.29 19:21 신고

    전 이거 꽤나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비가 나오는 닌자 어쎄신도 최근에 보았네요 ㅎ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11.29 20:01 신고

      저도 어제 <닌자 어쌔신>을 봤습니다. 규모 면에서는 두 영화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가 어렵겠더군요. 비의 액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잠본이 2009.11.30 21:28 신고

    남들은 만화를 실사처럼 만들려고 하는데 이분들은 실사도 만화처럼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를 보여줬죠. =]

  3. addr | edit/del | reply fptmtfidrtf 2010.01.02 23:40 신고

    지금방영하는데요 완전히만화네요 똥꾸방구

  4.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chocodama 2010.01.03 16:04 신고

    어제 스피드레이서를 ocn에서 방영해줘서
    아주 재밌게 봤는데 여기서 궁금증이 풀리는군요.
    너무 만화같은 작품이라 새로운 시도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근데 원작이 만화라니 정말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 낸거군요.
    만화를 만화처럼 만든 영화라니....
    대단하네요..^^
    쫌 늦은감은 있지만 포스팅 잘 읽고 가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0.01.03 16:35 신고

      chocodama님도 케이블로 보셨군요.
      원작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정말 만화처럼 보이기 위해 만든 영화라고 하면
      '만화 같은 영화'라는 표현에 오해의 여지가 없죠.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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