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용의자 X의 헌신
감독 니시타니 히로시 (2008 / 일본)
출연 후쿠야마 마사하루, 츠츠미 신이치, 시바사키 코우, 키타무라 카즈키
상세보기

★★★★★


'두 남자의 뜨거운 대결'이라는 헤드카피와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낯선 제목만으로는 극장에 가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다는 것이 변명입니다. 영화가 꽤 괜찮다는 평도 접했지만 여태 미루기만 하다가 드디어 감상을 했네요. <용의자 X의 헌신>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추리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신 분들은 조금 다른 평을 하시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원작이나 영화 보다 앞선 TV 시리즈 <갈릴레오> 등에 관한 사전 지식 없이 영화만 본 입장에서 <용의자 X의 헌신>은 정말 오랜만에 접하는 만점짜리 작품입니다. 영화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TV 시리즈도 바로 구해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만 역시 영화의 감동 만큼은 아니로군요.

원작과 TV 시리즈에는 단편 마다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성격의 말단 여형사 우츠미 카오루(시바사키 코우)가 불가사의한 사건을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노부 교수(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의뢰하면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현상을 설명하고 범인을 잡아내는 식입니다. 마치 <양들의 침묵>(1991)에서 클라리스 스털링 형사와 한니발 렉터 박사의 관계와 유사한 두 사람 앞에 범인들이 하나씩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식이지요. 원작이나 TV 시리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와 동일한 패턴 내에서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을 감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판은 TV 시리즈와 달리 용의자 X에 해당하는 천재 수학자(직업은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며 유카와 교수의 대학 시절 친구인 이시가미 테츠야(츠츠미 신이치)의 입장 쪽으로 관점을 이동시켜 전개해나가는 작품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하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는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작품 자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범죄 수사극으로 시작해서 두 남자의 두뇌 싸움으로 발전하는가 싶더니 결국은 지독한 순애보인 동시에 삶과 진실에 관한 감동적인 드라마로 끝나고 있으니까요. 용의자 X가 누구이고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처음부터 밝히고 있음에도 범행의 자세한 경위와 용의자 X 이시가미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감춰놓기 때문에 미스테리 스릴러로서의 재미도 결코 포기하고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용의자 X의 헌신>이 선사하는 최고의 미덕은 진득한 인간적인 감정을 담고 있으면서도 결코 감정을 구걸하거나 특정한 메시지를 명시적으로 전달하지 않는 성숙함에 있습니다. 이시가미의 삶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가 하나오카 모녀(마츠유키 야스코 & 카나자와 미호)에게서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심지어 그들의 미래에 관해서도 관객 각자가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대중 영화의 차원을 넘어선 품격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츠츠미 신이치의 열연은 <용의자 X의 헌신>가 진득한 감정의 영화가 될 수 있도록 만든 일등공신입니다. 용의자 X 이시가미가 어떤 인물로 비춰지느냐에 따라 <용의자 X의 헌신>은 그 내용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게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온 천재 수학자의 자폐적인 성격을 표현하가다 때로는 싸이코패스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는 츠츠미 신이치의 섬세한 표정 연기는 정말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을 쏟아내는 이시가미의 오열은 <용의자 X의 헌신>에서 가장 격렬한 액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TV 시리즈에 비해 우츠미 카오루 형사의 비중이 매우 작은 편이지만 유카와 교수는 <갈릴레오>의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 충분히 균형잡혀 있습니다. 물론 이처럼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는 다름아닌 TV 시리즈와는 다른 영화판만의 고유한 호흡과 균형추를 잘 잡아낸 니시타니 히로시 감독(TV 시리즈도 연출)의 역량 덕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직접 각본까지 쓴 <아말피 여인의 보수>(2009)는 어떤 작품일런지 궁금하네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1 : Comment 2

트랙백 주소 : http://differenttastes.tistory.com/trackback/1291 관련글 쓰기

  1. 삭제

    Subject: 용의자 X의 헌신 - 그 남자 츠츠미 신이치

    2009/10/28 12:01 tracked from 대마왕 이야기

    용의자 X의 헌신&nbsp;(容疑者Xの獻身, 2008)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이상한 제목의 영화를 고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츠츠미 신이치의&nbsp;얼굴 때문에 보게 됐다. 만성적인 중년의&nbsp;피로를 온몸으로 발산하는 듯한 무력한 표정과 그 누구도 옆에 오기를 거부하는 듯한 어둠에 끌렸다. 툭 치면 화악하니 먼지가 피어오를 거 같은 무거운 자켓. 2차 세계대전에서나 쓰였을 법한 타자기 같은 게 들어 있을...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함장 2009/10/28 13:08

    아~ 올해 최고의 영화였어욧!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10/29 00:09

      아 이런 영화는 제때 콕 찍어주는 데가 있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