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썸머워즈
감독 호소다 마모루 (2009 / 일본)
출연 카미키 류노스케, 사쿠라바 나나미, 후지 스미코, 타니무라 미츠키
상세보기

★★★★☆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내놓은 신작치고는 의외로 조용하게 상영관에서 물러나고 말았었죠. 포스터에서 연상되는 이미지가 시골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동극 정도로 보였던 것이 악재는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썸머 워즈>의 소재는 의외로 현실 세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대재난 상황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오즈(OZ)라고 명명된 세계적인 통합 네트워크에 대한 소개가 사이버 공간 상에서 진행되는데 마침 국내 모 이동통신사의 무선인터넷 서비스 명과 같아 실제로 배급 협찬까지 진행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썸머 워즈>에서의 오즈는 실제의 그것 보다 훨씬 더 확대된 형태의 서비스 개념으로 사실상 현존하는 인터넷 서비스 전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광대한 편입니다. 이 사이버 공간에 해킹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공공 서비스가 마비되는 등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우리나라 보다 훨씬 더 지독한 지연과 학연 사회라고 알려진 일본이지만 막상 일본 내에서 만들어지는 컨텐츠 속에는 그런 모습이 거의 그려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 기업 드라마류에 등장하더라도 보통 비판적으로 그려지곤 하던 일본의 '뼈대 있는 집안' 이야기가 <썸머 워즈>에서는 주요 등장 인물들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별 볼 일 없는 집안의 평범한 고등학생 소년(수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긴 합니다)이지만 여름방학 동안 그가 초대받아 방문하게 되는 집안은 에도 시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그야말로 명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의 90세 생일 잔치를 치르려니 모여든 가족들의 숫자도 엄청나고 다들 가문의 영광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한데 이런 광경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는 일 자체가 약간 낯설기까지 하더군요. 스토리 전개를 위한 설정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썸머 워즈>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해킹 인공지능의 개발자)도 이 집안 사람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들 뿐만 아니라 최고의 게이머까지 전부 이 집안 사람들이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농촌 드라마처럼 보이는 포스터와 달리 <썸머 워즈>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혼란과 전투 장면을 통해 상당한 시각적 스펙타클을 선사합니다. 그 중에서도 전세계 수 억 명의 어카운트를 해킹한 인공지능의 거대한 모습은 사이버 공간 상의 모습이기는 해도 비주얼 면에 있어서는 단연 압권이라고 하겠습니다. <썸머 워즈>를 이야기할 때 빼먹을 수 없는 부분들 가운데 하나가 흔히 '맞고'로 알려져 있는 온라인 고스톱 게임이 작품 속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인데요, 인공지능에게 대패해서 판돈으로 사용하던 어카운트가 부족해지는 바람에 더이상 게임 진행을 할 수 없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전세계인들의 참여로 다시 게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을 맛보게 해주는 대반전이라고 하겠습니다.

<썸머 워즈>는 사이버 공간을 통해 연결된 전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으면서도 일본의 전통 가옥과 사무라이 유품들, 그리고 고교야구 중계나 화투장 등을 통해 가장 일본적인 것들을 적극적으로 녹여넣고 있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유언장을 통해 전해지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겠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감독들 보다 특별히 앞서가는 애니메이션 기술을 선보이거나 드라마틱한 내러티브를 엮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 수 있는 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통합 네트워크와 사이버 공간을 소재로 하더라도 오시이 마모루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이렇게나 다른 얘기를 펼쳐냅니다. 철학적 성찰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작품에서, 좀 더 보편적인 재미와 감동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에서 찾는 것이 맞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2 : Comment 3

트랙백 주소 : http://differenttastes.tistory.com/trackback/1283 관련글 쓰기

  1. 삭제

    Subject: '썸머 워즈', 거장이 되기 위한 진통인가?

    2009/10/06 17:10 tracked from 영화리뷰전문 무비조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디지몽TV” 시리즈를 통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알려졌다. 이후 계속해서 자신의 캐리어를 쌓아가던 그는 전격적으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연출을 맡게 된다. 그 당시 지브리 스튜디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후계자라고 인정한 콘도 요시후미가 갑자기 사망한 후, 눈에 띄는 후계자가 나오지 않아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미야자

  2. 삭제

    Subject: 썸머 워즈 (Summer Wars, 2009)

    2009/10/28 20:50 tracked from 죽은 블로그

    2009년 일본 제작인 애니메이션이다 올 여름엔 시간이 없어 친구들과 많은 감상은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 끼리 하나 같이 야기하던 올해 인상깊었던 애니메이션 ? 이라하면 '썸머 워즈'라고 하나 같이 말들을 한다. 하기야 주말 지루함 속에 봐서 그런지 눈에 쏙 들어옴과 동시 장면 하나하나 거부감 없는 그림체라 그런지 기억에 오래 남은 듯 하다 위 포스트를 얼핏 보면 여 주인공이 히로인..? 사실 아니다. 주인공이라기엔 비중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그..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마루. 2009/10/06 13:59

    보고싶었는데 소리소문없이 들어갔더군요...조니댑이나오는 퍼블릭에너미도 쏙들어가고...ㅠㅠ..요즘에는 볼것이 없어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10/06 20:35

      말 그대로 눈 깜빡 하고 있는 사이에 사라져버렸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우리나라 극장가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지난 봄에 <박쥐>와 <마더>를 연이어 보며 즐거워하던 때가 정말 까마득하네요. 10월달은 간만에 챙겨봐야겠다는 영화가 두어 편 보이고 있어요. ^^

  2. addr | edit/del | reply 413 2009/10/29 22:51

    왠지 디지몬극장판을 보는것같은 ... 나름 재미있었지만 무언가 아쉬운감이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