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크리스트
감독 라스 폰 트리에 (2009 / 덴마크, 독일, 프랑스, 스웨덴, 이탈리아, 폴란드)
출연 윌렘 데포, 샬롯 갱스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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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샬롯 갱스부르에게 올해 깐느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 <안티크라이스트>를 감상했습니다.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어버린 여인의 심리적 공황 상태를 묘사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전반부 때문에 같은 영화제에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밀양>(2007)과 겹쳐 보이기도 했고 중간에는 갑자기 <미저리>(1990) 부류로 빠지는가 싶었습니다만 결국 <안티크라이스트>는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서 가장 대표적인 모티브인 에덴 동산에서 원죄를 저지른 아담과 하와, 또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와 아기 예수의 신화를 재연하는 동시에 현실 그리스도교가 여성성과 반문명, 광기와 성욕을 억압해왔던 역사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등장 인물이라곤 이름도 없는 남자(윌렘 데포)와 여자(샬롯 갱스부르)가 전부이고 그외 프롤로그에서 사고사를 당하는 어린 아역과 숲 속의 동물 몇 마리, 그리고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얼굴 없는 수많은 여인들이 전부이니 그 자체로 은유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무섭기는 또 어찌나 무섭던지. 아주 끔찍한 수준의 신체 훼손 장면이긴 하지만 마침내 과격한 액션들이 터지기 시작해준 것이 고마웠을 정도로 영화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극도의 긴장감에 입안이 아주 바짝 말라버릴 지경이었습니다. <호스텔>(2005)처럼 대놓고 잘라대는 영화는 현실감이 떨어져서 그닥 무섭다는 느낌이 없고 그 보다 좀 더 현실적인 공포를 강조하는 작품일 수록 긴장감의 수위가 높은 편인데 <안티크라이스트>는 그 자체로 악몽이나 다름없는 몽환적인 공포로 가득 채워진 극강의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도그마 선언 이후 <도그빌>(2003)과 같은 작품에서는 일체의 세트 미술을 배제하는 등의 형식 실험을 거듭해왔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엔딩 크리딧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헌사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회화성이 강한 작품을 내놓았다는 사실 또한 보는 내내 이채롭게 느껴졌던 점입니다. 내용에 대한 이해나 호불호를 떠나서 시청각적인 이미지의 독창성만 놓고 보더라도 한번쯤 봐둘 만한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런 반면 깐느에서의 상영회 중간에 객석을 나가버렸다는 몇몇 분들의 입장도 이해하기가 어렵지는 않을 만큼 여러모로 도전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윌렘 데포는 <만덜레이>(2005)에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데 제게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원작,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에서 예수를 연기했던 이력과의 연관성을 찾게 되더군요.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은 배우는 아니지만 은근히 기념비적인 작품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배우들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윌렘 데포라고 생각됩니다. 샬롯 갱스부르는 에바 그린의 캐스팅이 불발이 되면서 감독을 직접 찾아가 "이 역을 맡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며 따낸 배역인 만큼 그야말로 온 몸을 내던지는 강렬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안티크라이스트>와 같은 작품 자체가 여성에 대한 남성 중심적인 해석이 투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텐데, 이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들에서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널리 인정받은 여배우들의 연기가 대체로 이런 부류 -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개고생을 하는 배역에서 나오곤 했었다는 사실은 한번쯤 곱씹어 볼만한 부분입니다. 그에 비해 남자 배우들은 근사한 영웅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으로도 자주 부와 명예를 얻어내곤 하는데 말이죠.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0 : Comment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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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몬스터 2009.09.24 14:38 신고

    아직 개봉안한거 맞죠?
    저도 보고싶은데...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아쉬타카 2009.09.24 15:55 신고

    헛 어떻게 보셨어요? 이거 보고 싶은데 흑... 갱스부르와 라스 폰 트리에를 다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더라구요. 국내에는 클린버전으로 수입되었다던데;; 가능하면 오리지널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9.24 22:45 신고

      극장 스크린 앞을 벗어나니(?) 봐야할 영화가 오히려 더 많아졌다는. ㅠ.ㅠ
      수입은 일단 무삭제판으로 되었는데 심의를 통과해 상영하지 못하게 될 경우
      계약 금액을 돌려받는 조건이라더군요. 도저히 국내 상영 불가라고 생각했던
      작품들이 과거에도 여럿 개봉했던 전력을 보면 이 작품도 한번 기대해볼만은
      할 것 같습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okto 2009.09.24 20:01 신고

    흑.. 외국에 거주하시나요? 저도 예전에 이거 소식은 들었는데 볼 기회가 영 없어서 까먹고 있었네요. 신어지님 소감을 보니 무지 보고싶어지네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9.24 22:47 신고

      국내 거주인데 어떻게 구해서 보게 되었네요. 저도 <박쥐>와 <마더>가 출품되었던
      지난 깐느 영화제 때 잠깐 소식을 접했던 작품이었는데 그간 잊고 있다가
      발견하자마자 다른 볼거리들을 다 제치고 먼저 보고 말았네요. ^^;

  4.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tmrw 2009.09.25 21:55 신고

    이 영화는 보고나서 일주일 잠 못자는 희생을 치르더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국내개봉은 과연 언제쯤일지...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9.26 13:48 신고

      지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자극이 되어줄 만한 작품입니다.
      일단 수입은 되었다는데 심의도 통과해야 하고 배급 일정도 잡아야 할테고
      아직은 개봉 시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네요.

  5.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giantroot 2009.09.27 16:31 신고

    헉 보셨군요. 저도 솔직히 볼까말까 심히 고민되는 영화랍니다. 한국 개봉이 될련지 모르겠네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9.27 17:54 신고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 검색어 유입으로 드러나네요.
      이렇다할 개봉작도 별로 없는 와중에 빨리 개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볼만한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예요. ^^

  6.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마루. 2009.09.28 00:18 신고

    개봉이 된다면 논란이 많을듯 한 내용들이 많더라구요..그리고 남자주인공은
    스파이더맨 1에서 악당 그린고블린역을 맡았던 그분이군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9.28 18:53 신고

      윌렘 데포가 1대 고블린의 그 분이시죠. 처음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1986)이었는데 분장이 따로 필요 없는 악역 마스크에
      의외로 깊이 있는 연기를 자주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7. addr | edit/del | reply 콰이 2009.09.29 17:28 신고

    시종일관 어두우면서도 파격적인 이미지와 몽환적인 긴장감
    곳곳에 숨겨놓은 메시지 독창성 흡입력 전부 좋습니다.

    기교는 좋습니다만 최종적 결과물에 대한 호불호를 가린다면 좋은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결론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공감하기가 힘들다는거지요.
    여기에는 시사회장에서 기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도못하고 자신이 세계최고의
    영화감독이라고 괴변을 늘어놓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자뻑드립도 한몫을 했습니다만.

    아내를 치료하는 상대가 같은 여자라하더라도 뾰죡히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요?
    누가 해도 비숫할거라는 거지요. 고로 남녀간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문제를 초점으로 하는게 더 설득력 있겠지요.
    아담과 릴리스의 이야기를 가장 어둡게 표현하려다보니 맞지않는 옷을 입히는
    무리수를 두는 느낌입니다.

    거기다 마지막의 정사중 창가로 올라가는 아들을 보고도 섹스에 열중하는 릴리스
    의 모습을 넣어 생뚱맞은 원죄를 끌어 붙이는것은 마치 빨간색이 필요해 자기심장에 칼을 꽂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고 싶군요.

    결과물로 던지고자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억압 힘있는자(기독교)에 의한 강요와 억압의 고통과 그 악순환의 메시지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어두운 기교들과 불필요한 묘사에 묻혀버리고
    관객들에게 남는건 원래의 메시지가 아니라 거지 3인방이 되어버리는.....
    마치 단테의 신곡에 연옥에서 지옥으로 가는길을 실사화한 것같기도 하구요

    샬롯과 데포 둘다 좋아하는 배우인데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실제 정사를 불사하면서 까지 역할 을 맡길 원했다니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영화가 좀더 긍정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었다면 나중에 아이들 보여주기도 수월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솔찍히 가장 뇌리에 각인되는건 두배우의 정사 장면이네요 ㅎㅎ 제가 좀 속물이라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9.30 22:52 신고

      내용면에서는 모호한 부분이 많고 그다지 긍정적인 결말을 제시하는 작품이라고도 볼 수 없죠. 그런 기준에서라면 감독의 전작들이 <안티크라이스트> 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주제나 스타일을 작품을 제대로된 꼴을 갖춰 만들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고요 어쩌면 앞뒤 딱 맞아떨어지는 교훈적인 이야기 방식 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 역시 아쉬운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그러나 이미지만으로도 이미 꽉 찬 느낌이라 사실 더 바랄 것도 없지만요) 이 영화를 통해서야 비로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자화자찬을 어느 정도 수긍하기 시작했어요. ㅋ

  8. addr | edit/del | reply galahed 2009.10.06 00:43 신고

    영화를 앞으로 돌려 보는 성격인데.
    중간 까지 돌려 보다가 다시금 처음부터 보게 되더 군요.
    중간까지 스릴러 물 일거 같기도 했지만,
    가위 나오는 장면은 크게 충격적이었습니다.
    마지막의 포스터의 가위가 저에게는 상당히 여러가지를 생각해주는 장면이네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10.06 20:32 신고

      장면 장면도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면서
      감상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죠.
      호주판 포스터라고 하는데 다른 포스터들 보다 훨씬 보기도 좋고
      내용을 상징적으로 잘 축약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서 모셔왔습니다.
      무삭제로 개봉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가위 장면을
      비롯해서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몇 장면은 들어내더라도 무방하지 않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9. addr | edit/del | reply 21gram 2009.10.09 22:57 신고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기독교 왕국인 우리나라에선 불신지옥을 걱정한 나머지
    개봉될 일은 없을듯 합니다. 몇해 전 크라이시스트는 엄청난 환대를 받았죠. 그러나 이 용감한 영화는 아마 예기 조차 못꺼낼듯합니다. 장로님께서 보고있기 문에라도 말때문에라도말이죠.

    왕따당하면 살아남기 힘든 나라가 우리나라죠. 씁쓸~

    우리의 씨앗과 굴레를 제거함으로서

    용감한 감독은 아마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신과 맞짱을 뜬거같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10.09 23:21 신고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선 제목에서부터 선정성 시비가 붙을 수도 있겠어요. ㅎㅎ
      감독이 맞짱 뜨고자 했던 상대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신'이라는 말씀이 정말 맞는 듯 합니다.

  10. addr | edit/del | reply anti 2009.10.16 19:07 신고

    영화 개봉하기전에 불법경로로 다 봐버리면 또 이런 예쑬영화들은 개봉도 못하거나 개봉해도 금방 내려지겠죠 그 이유가 영화의 대중성문제도 있겠지만 이런류의 영화문화가 국내에 활성화 될려면 매니아들 부터 솔선수범 , 어둠의 경로로 보지 말아야 할듯, 전 예고편 보고 개봉하는지 검색하다가 들렸다가 갑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10.17 12:58 신고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국내 미개봉작이더라도 영화제나 해외 발매 DVD를 통해 볼 수도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11. addr | edit/del | reply so 2009.10.25 10:23 신고

    영화를 보고 나서 님의 글을 읽어보니 너무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아무런 지식없이 그냥 본 영화라서 뭔가 진한 메세지는 분명한데 제대로 간파를 못하고 있엇거든요...
    너무너무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10.25 22:38 신고

      그리 깊이 있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도움이 되셨다니 기쁘네요.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12. addr | edit/del | reply Jae 2009.11.11 05:51 신고

    저 이 영화 보고 며칠을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요근래 본 영화중에 최곱니다.
    저는 뉴욕에서 보았는데.. 여기서도 일반극장 개봉을 안하는군요.
    뉴욕에서도 딱 한곳 IFC Center에서만 한정상영중이네요.
    저 포스터에 가위보니까...다시 섬뜩하네요.. ^^;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구요..
    겉으로 나타나는 공포가 아니라 인간 공포심의 본질을 막 자극하는 그런 영화같아요.
    그리고 위에 어떤분이 '실제정사'라고 하신분이 계신데 윌리엄데포의 주요부위 클로즈업과 정사장면 등등 전부 다 포르노배우 대역이라고 밝힌걸로 알고 있는데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11.12 19:59 신고

      겉으로 나타나는 공포가 아니라 인간 공포심의 본질을 막 자극한다는 말씀에 절대 동감합니다. 딱히 공포영화라고 내세우는 작품도 아닌데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훨씬 더 무서웠어요.

      정사 장면은 제가 생각해도 대역이었지 싶네요. 사실과는 좀 다른 정보지만 그런 정보가 영화 홍보에는 적잖은 도움이 되곤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