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메이션 추천 정보를 여기저기서 수집해서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그중 1 ~ 2회 정도 훑어보면서 괜찮다고 생각되는 작품들만 끝까지 보는 중입니다. 그림이 보기 좋게 잘 그려지기도 해야 하겠지만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호흡이랄까요, 그런게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소재나 분위기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라 하겠고요. <블러드 플러스>는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명성 덕분에 무려 50회 분량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지나치게 늘어지는 감이 있어서 장면을 스킵하면서 보다가 그나마도 중단해버렸습니다. 같은 뱀파이어 소재의 <헬싱>과 <트리니티 블러드>도 유명세에 비해 그닥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못되어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겠더군요.

그런 와중에 SF 액션물이라 할 수 있는 <흑의 계약자>(2007)는 진행하는 호흡도 적당하고 작품 전체적으로 아주 준수하게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더군요. 총 26회 분량(TV 반영 25회와 미방영 DVD 수록분 1회)인데 하나의 에피소드를 2회씩 진행해주니까 감상 시간을 조절하기에도 좋았습니다 - 매번 <시구루이>처럼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상당히 곤란한 일이죠. 작품 전체의 주인공은 검은 사신이라 불리는 헤이(黒)이지만 중간의 에피소드들는 헤이의 동료들과 경찰, 기타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별개의 드라마로 구성됩니다. 팀 동료들인 험상궂은 아저씨(黃), 맹인 소녀(銀), 그리고 말하는 검은 고양이(猫)를 처음 봤을 때는 이래가지고서야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오겠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후반부로 갈 수록 캐릭터들의 매력이 드러나는 동시에 마지막 대단원을 위한 꼼꼼한 사전 배치 작업이었음이 밝혀집니다.




<흑의 계약자>의 가장 큰 매력은 상실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인류는 더이상 진짜 하늘을 볼 수 없는 세상을 살게 되고, 이때부터 인간적인 감정을 잃어버린 계약자라고 불리는 초능력자들이 나타나 암약을 하는 상황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통된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지만 등장 인물들 또한 각자의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까요. 그런 와중에 계약자들을 한꺼번에 말살하려는 비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일부 계약자들의 조직인 EPR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정부 기관과 대립합니다 - 궁극적으로는 계약자들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인데 이는 수많은 인류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죠. <엑스맨> 시리즈의 뮤턴트들에 관한 이야기를 연상시키면서 결국 인간성 회복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작품이 <흑의 계약자>라고 하겠습니다.

소설이나 만화 원작이 따로 없이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제작되어서인지 캐릭터들의 설정과 이야기의 구성, 배경음악의 사용 등에서 매우 높은 균형감을 보여줍니다. 1화 ~ 14화와 15화 ~ 25화에서 각기 다른 오프닝과 엔딩을 사용하면서 변화를 주었고 마지막 26화는 DVD에만 수록되었다고 하는데 일종의 에필로그처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2001)의 본즈에서 제작했고 오카무라 텐사이 각본·감독, 칸노 요코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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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0 : Commen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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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giantroot 2009.07.28 01:07 신고

    이거 2010년 10월에 후속작이 일본에서 방영된다고 합니다.

    여튼 저도 괜찮게 봤던 애니메이션입니다. 결말도 좋았죠. (비록 후속작이 나온다고 하는 바람에 살짝 그 감흥이 사라진것 같지만.) 여담인데 본즈라는 제작사에서 만든 애니들은 왠만해서 후진 경우가 거의 없어서(물론 처지는 작품이 있긴 하지만 안전빵 수준입니다.), 체크해두시는 것도 좋으실듯 싶습니다.

    블러드 플러스... 솔직히 막판 들어서면 더 실망스럽더라고요. 프로덕션 IG에게 최초로 실망했던 순간이였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7.28 20:38 신고

      헬스 게이트와 EPR이 잔존하는 한 스토리를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도 같네요. 내년 10월에 시즌 2를 방영한다니 저는 언제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꼭 봐야겠습니다. <흑의 계약자> 팀이 만든 <울프스 레인>을 보고 있는데 저에겐 <흑의 계약자>가 훨씬 낫네요.

      막판 들어서 더 실망스럽다니 <블러드 플러스> 보다가 중단했던 걸 다시 재개할 필요는 없겠군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조금 높은 연령대를 겨냥한 작품들이 아무래도 저에겐 잘 맞는 듯 합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마루. 2009.07.29 13:19 신고

    시구루이....ㄷㄷㄷㄷㄷ...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푸르메™ 2009.07.29 18:39 신고

    <흑의 계약자> 참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이야기 내내 계속되는 등장인물들의 상실감과 그게 모티브가 되어 행동하는 모습이 너무 흥미로웠지요. 적당히 성인풍 (어느정도 느와르적?) 코드를 심고 있는 것도 맘에 들었습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니 기대되네요. 신어지님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한 한 주 되세요 (--)(__)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7.29 21:02 신고

      굳이 정의하자면 SF 느와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등장 인물들의 매력에 빠지기가 쉽지 않은데 <흑의 계약자>는 그런 점에서 참 성공적인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푸르메아이스님도 좋은 한 주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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