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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강의 하드코어라고 했는데 취향에 따라서는 첫 회부터 비위가 상해 도저히 못봐주겠다고 할만한 장면으로 시작되긴 하더군요. 순푸성의 영주가 좀 사디스틱한 취향의 소유자인지라 목검이 아닌 진검으로 어전시합을 열게 했다는데(총 22명의 사무라이가 출전해서 11회의 시합을 했고 그 결과 여럿이 죽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건 <시구루이>의 설정이자 시작일 뿐이고, 실제 내용에 들어가서는 첫 시합부터 맞붙게된 외팔이 무사(후지키 겐노스케)와 장님/절름발이 무사(이라코 세이겐)의 지난 수 년 간에 걸친 철천지 원수지간의 내막을 첫 만남에서부터 소상하게 밝혀주는 줄거리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총 12회의 분량이 <시구루이>의 전부가 아니라 시즌 1에 불과하다는 점인데요 현재 만화로 출간되고 있는 원작은 애니메이션화된 작품 이후의 줄거리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는군요.

절대 잔혹 취향은 아닙니다만 그렇다고 몇몇 잔혹 장면들 때문에 <시구루이>의 나머지 그림들까지 저버려야 했을 정도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본 모든 영상물 가운데 최고 중에 하나로 <시구루이>를 흔쾌히 꼽을 수 있을 만큼 시각적으로나 내용면에서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이네요. 사실은 다른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너무 지루해서 졸음이 쏟아지던 판에 <시구루이>를 보기 시작했는데 밤을 새워 12회를 다 보고 말았습니다. 진행이 느리다는 분들도 있지만 그 느린 장면들조차 흡입력이 대단한 작품이 <시구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같은 시대극이면서도 <사무라이 참프루>가 명랑 쾌활과 퓨전의 한쪽 끝에 있었다면 <시구루이>는 진지하면서도 가장 극단적인 일본의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서도 특정 취향만을 위해 봉사하는 작품이거나 많은 사무라이 영화들이 그렇듯이 영웅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작품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그 비극적인 결과를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구루이>의 손을 자신있게 들어줄 수가 있겠습니다. 코간류의 원조인 이와모토 코간의 젊은 시절과 현재의 모습은 마치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의 다니엘 플레인뷰의 말년을 연상케 합니다. 코간과 좀 더 유사한 인물은 수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후지키 겐노스케가 아닌 밖에서 굴러 들어온 돌, 이라코 세이겐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등장 인물들의 무공 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바로 이라코 세이겐의 출세욕이고 그것으로 인해 이 비극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순푸성의 영주로부터 주인공들 주변의 인물들 모두가 인간 욕망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릴 적 만화를 보더라도 보기 좋게 그려놓은 작품 아니면 손에 잘 잡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만족도가 은근히 작화 스타일에 많이 좌우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구루이>는 단연 최고 수준의 작화와 연출 스타일에서부터 대단한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제작사 매드하우스의 이름은 곤 사토시 감독 작품들을 통해 처음 접했었는데 여기에서 만든 작품들이 은근히 제 취향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시구루이>는 전반적으로 흑백 톤의 영상을 보여주는데 그 때문인지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본 것인지 만화책으로 본 것인지 구분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액션 활극 같지만 오히려 정적인 컷이 많은 작품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실사 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의 스틸컷들은 왜 이리 유치해보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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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1 : Comment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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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2009.07.22 11:05

    비밀댓글입니다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CN- 2009.07.22 13:12 신고

    애니로는 못 보고 만화로만 보고 있는데 작화의 취향만 극복하면 상당히 볼만하더군요.
    광기가 넘실넘실 뿜어나오는듯한 전개가 일품인데... 만화책은 아직도 1권에서 시작된 그 승부가 아직도 결말이 나질 않았군요 -_-;;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7.23 16:50 신고

      작품 전체가 결국은 1권의 그 한판 대결의 뒷배경 이야기이고 마지막엔 마지막 대결의 결과로 끝나지 싶네요. 만화 보다 애니가 더 걸작이라고들 하지만 애니에서 놓친 디테일이 만화에 있다고들 해서 동네 대여점에서 한번 빌려볼까 생각 중입니다. ^^;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mahabanya 2009.07.22 14:50 신고

    1화를 보자마자 연구퍼 볼 수 밖에 없었던 작품. 일본 특유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뻥을 영상으로 설득력(?)있게 그린...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7.23 16:52 신고

      사실 보는 동안에는 정말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가 하는 생각은 눈꼽 만큼도 들어오질 않죠. 시청각적인 몰입도가 상당히 높아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4.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juang 2009.07.23 01:16 신고

    덕분에 다운받아 봤습니다. 중간에 멈출수가 없네요;;

  5.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재준씨 2009.08.01 23:14 신고

    만화는 봤는데 애니는 아직입니다. 찾아봐야겠네요.
    엘펜리트(제목이 확실치 않은데) 야튼 그넘도 그림체와는 달리 꽤 진지했던 기억입니다.
    잘 지내시죠?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8.21 17:08 신고

      에고 댓글 달아주신 걸 너무 늦게 발견했습니다. 죄송하네요.
      만화 원작 보다 애니가 더 명품이라는 말들을 하더군요. 기회가 되시면
      애니로 다시 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엘펜리트도 봤는데
      제 기대에는 못미치더군요. 그 놈의 뉴~ 뉴~ ㅋ

  6. addr | edit/del | reply ㅋㅋ 2009.11.30 22:43 신고

    엘펜리트 ㅋㅋ 뉴뉴 ㅋㅋㅋㅋ
    취향이겠지만 별루던디,, 시구루이가짱,!! 시구루이 결말 나옴??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12.01 00:48 신고

      저도 시구루이가 짱입니다. 만화 연재가 아직 안끝난 걸로 알아요.

  7.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만화가 엄두 2012.08.16 19:04 신고

    만화로는 전부 봤는데, 애니로는 아직 보지 않았네요. 만화는 괜찮게 가다가... 왜 마지막에 산으로 슈웅~ 날라가버린지 모르겠습니다. 원작 자체가 구렸나... 싶기도 하구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12.08.19 21:45 신고

      만화 연재가 끝나긴 했는데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급정리해버린 모양이로군요.
      만화 연재를 계속 이어갈 수 없는 무언가 사정이 있었나 봅니다. 좀 아쉽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

  8.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만화가 엄두 2012.08.21 13:22 신고

    저도 뭔가 급정리된 게 아닌가 해서 수소문 해봤는데, 그냥 원작도 그렇게 끝난다는군요... 정말 허무했습니다. 난 이걸 왜 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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