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감독 봉준호 (2009 / 한국)
출연 김혜자, 원빈, 진구, 윤제문
상세보기

★★★★☆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는 어느 어머니의 춤으로 시작해 다시 어머니들의 춤으로 끝난다. 부성을 중심 축으로 삼았던 전작 <괴물>(2006)에 이어 <마더>는 모성을 주소재로 삼고 있으나 그것은 윤리 교과서 속에 이상화된 모성이 아니라 가난과 무지,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 중심의 착취 구조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고통을 감내해온 모성이다. 희생자 문아정(문희라)의 고통과 죽음은 어머니가 살아온 나날 동안 겪어야 했었을 고통들과 정확히 포개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더>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는 검사, 변호사, 의사가 젊은 여성들을 끼고 폭탄주를 돌리며 아들의 운명을 결정하고자 하는 룸싸롱 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회 환경 속에서 <마더>의 모성은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외아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투쟁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런 모성이 어찌 한 어머니만의 일이겠느냐고 슬피 묻는다.




한편의 스릴러 영화로서 <마더>의 이야기 자체는 늘상 보아오던 그런 구조를 지녔다. 꼭 아들과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살인 사전의 용의자로 몰리고 그의 결백을 굳게 믿는 사랑하는 이가 외로이 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비극이나 반전이 일어나며 영화는 작품의 지향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끝을 맺는다. 광기로 치닫는 모성이란 것도 특별히 새로울 일은 없는 소재이지 않은가. 결국 <마더>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에 봉준호식 비틀기가 다시 한번 마법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작품인 셈이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 하는 이병우의 기타 연주 때문인지 그간 지속적으로 여성과 모성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온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스페인 영화 느낌이 난다. 그리고 전작들 만큼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 사회적 컨텍스트들을 촘촘하게 깔아놓곤 하는 감독의 취향이 잘 드러난다.

<마더>의 두드러진 특징은 여전히 진실은 알 수가 없으며 그 진실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 보다는 영화가 정말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더욱 집중해달라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은 도준(원빈)이 어머니가 '잤다'는 것이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살인 사건의 범인지 도준인지 고물상 노인(이영석)인지 알 수가 없다. 핸드폰 속에 사진이 있었고 그날 밤에도 생쌀과 자리를 준비해놓고 희생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고물상 노인이 범인이며 무고한 도준에게 뒤집어 씌우려던 것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극의 흐름상 목격자의 증언에 의해 반전이 일어나면서 그 진실에 대한 괴로움에 드디어 모성이 광기로 전환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여전히 그 증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마더>에서는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그저 화자들의 입장일 뿐, 전지적 입장에서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모호함 자체가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 초반에 보여주었던 장면을 후반부에 손바닥 뒤집듯이 뒤바꾸면서 반전을 꾀하는 이런 방식은 좀 치사하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초반에 본 장면을 사실적인 대전제로 믿으며 그 이후 주인공의 행동과 심정을 따라가게 되어 있는데 후반부에 와서 '아까 그 장면은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니거든요'라며 뒤집는 방식이라 좀 얄밉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식상하다는 얘기까지 나올 법하다.(그러나 비슷한 줄거리를 놓고도 이처럼 완전히 격이 다른 작품을 빚어내는 건 그야말로 봉준호 감독의 출중한 능력이다) 물론 <마더>에서 처음 장면은 도준이 기억하는 장면이고 후반부의 장면은 제 3자가 증언하는 장면이니까 그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설명될 수 있긴 하다. 어쨌든 관객들은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도준이 100% 결백하다고 믿기 때문에 진태(진구)의 방에서 골프채를 들고 나올 때 어머니와 함께 초긴장을 하게 되고 이후로도 어떤 관객들은 이 어머니의 절망과 투쟁, 고통과 슬픔에 몰입하게 된다.

결국 후반부의 장면에서 주인공의 감정과 행동이 폭발하게 되므로 전개상 꼭 필요한 뒤집기이기는 하나 그렇다면 처음 장면에서 굳이 도준이 100% 결백한 것으로 보이게끔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예를 들면 도준이 맨하탄을 나오고 길을 비척비척 걷는 것만 보여주었거나 애궂은 골프공을 내던지던 장면 정도까지만 보여주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어도 그 다음 날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내몰리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도준이 살인을 했을 수도 안했을 수도 있는 다소 모호한 상황에서 이후의 줄거리를 전개해나갔어도 큰 문제는 없었지 않았겠느냐는 얘기다. 이것은 그야말로 플롯 구성의 문제이고 연출자의 선택 문제다. <마더>는 관객들에게 좀 더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부분이 봉준호 감독만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또는 한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일부 관객에게는 다소 거추장스러웠다고 평가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의도 전달에 충실하다는 것, 하지만 그것이 다수 관객들에게는 차라리 나은 방법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또 다른 메시지가 발견될 수 있는 여지를 숨겨두고 있다는 것까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만 발견되곤 하는 특징들이 <마더>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16 : Comment 2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끝없는 수다 2009.05.31 17:00 신고

    우와 영화 전문 리뷰어신가봐요~~RSS숫자에 기죽고 갑니다~ 글 숫자도 그렇구요~ 암튼 잘 읽고 갑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페니웨이™ 2009.05.31 17:10 신고

      블로그스피어에서 신어지님 모르면 간첩이라긔~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31 17:20 신고

      그건 페니웨이님한테나 해당사항이 있는 말이지않냐능.
      왜 블로그스피어를 간첩 집단으로 몰아버리는 거냐능.

    • addr | edit/del BlogIcon Evelina 2009.06.02 00:59 신고

      위 두분 모두 저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뿐입니다. ;;

      * 저는 기가 죽어 RSS 숫자를 꺼두었다는...

  2. addr | edit/del | reply 한나 2009.05.31 17:36 신고

    박카스 병을 쥐고 엄마를 빤히 올려다 보던 다섯살 도준이의 얼굴말고, 엄마의 눈에 보이는게 없다는 게 여러가지로 설명이 되지 않나 싶어요. 항상 그게 제일 먼저였던 엄마였기 때문에 그날 밤의 살인에 대한 진실 역시 엄마에게는 중요한게 아니었던 게 아닐까요. 그 얼굴을 배신하느니 모든 사실을 그 얼굴에 맞추게 된 엄마의 그로테스크한 광기가 이야기의 아귀보다 더 중요 했지 싶어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31 19:35 신고

      말씀대로 <마더>는 여러 갈래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채 최종적으로는 어머니의 입장과 시각에서 모든 일들이 수렴되도록 의도하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다섯살 도준이의 얼굴 밖에 눈에 보이는게 없다'는 고백이나 암시가 있었던가요? 어찌되었건 어머니는 도준의 살인을 처음부터 눈꼽 만큼도 믿지 않았고 고물상 노인의 증언에 대해서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거죠. 이 부분은 다섯살 때의 그 일이 아니더라도 변함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2009.05.31 17:48 신고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도진이 범인 맞는거 같습니다. 고물상 아저씨는 도진이 관자놀이를 돌리는 모습까지 기억하고 있었죠. 봉준호 감독이 실제 범인이 누군가에 대해 모호하게 처리하려 했다면 궂이 관자놀이에 대한 복선을 깔지도 않았을 겁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31 19:40 신고

      네 저도 그렇게 봤어요. 하지만 그걸 도장 꾹 확인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을, 그리하여 진실 공방 보다는 모성에 집중하도록 의도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도준이가 바보가 아니고 어머니에게 의도적인 복수를 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던데 영화가 하마트면 <프라이멀 피어>식 반전을 보여줄 뻔했는데 이 역시 모호하게 남겨지면서 다행히 관광버스춤을 추는 어머니들만 보여질 수 있었던 거죠.

  4.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주드 2009.06.01 10:05 신고

    저는 도준이의 엄마와 진태의 관계가 아직도 의문입니다. 영화를 본 후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여러가지 가설이 있던데 하나같이 흥미롭더군요. 그리고 신어지님이 리뷰에 언급하신것 처럼 도준이가 '엄마랑 잤다' 고 하는 표현이 몇 번 반복적으로 나오다 보니 이 부분도 달리 생각되더군요. 암튼 상상의 여지가 많았던 영화인것 같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6.01 20:48 신고

      저도 진태가 도준의 어머니에게 막말을 할 때에는 허걱, 했었는데 그 이상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대사는 없더군요. 도준과 어머니의 관계는 명확하지는 않더라도 일반적인 모자 관계 이상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씨네21 기사를 보니 봉준호 감독이 "아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페니스이기 때문에 다른 부모-자식 관계와 다르다"고 했더라고요. <마더>는 모성 만큼이나 섹슈얼리티가 무척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작품이라서 이 부분만 따로 모아놓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5.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아쉬타카 2009.06.01 18:09 신고

    어쩌다보니 오랜만에 신어지님 글에 트래백과 댓글을 달게 되었네요 ;;;
    저도 그 '여지'부분이 좋았어요~

  6.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BH_JANG 2009.06.04 02:19 신고

    오랜만의 글 잘 읽었습니다ㅋ
    저는 아무래도 봉준호 감독 취향인가 봅니다. 안 좋은 점보다는 좋은 점만 잔뜩 눈에 들어와서... 그래서인지 신어지님이 지적하신 한계들이 꽤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한 번 생각을 해봐야겠어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6.07 23:07 신고

      개인적으로 <마더> 보다는 <박쥐>가 더 볼만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다른 왠만한 영화들에 비해 출중한 작품들이긴 하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박쥐>가 갖지 못한 대중적인 호소력을 <마더>가 보여주고 있는 건 확실히 봉준호 감독 영화의 장점이라고 하겠고요, 그러나 스릴러라는 외피와 대중성을 우선시하면서 자신이 정작 얘기하고 싶은 내용이나 주제 의식을 노골적으로 전시하지 못하는 건 박찬욱 감독 영화에 비해 다소 아쉬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7.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chul2 2009.06.09 10:38 신고

    그런가요. 전 이 영화에서의 반전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흔히 반전영화라고 불리우는 다른 영화들 만큼이나 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반전도 좋았고 다른 장치들 다른 재미들이 풍부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니까요. 그리고 전 도준이 살인을 했다는 것을 알았을때의 충격보다, 모성애의 극한을 보여준 이후에 등장한 도준의 농약박카스 장면이 더 충격이 컸답니다.

    글 재미있게 읽고 가요. ㅎ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6.13 15:15 신고

      저와 같은 경우는 영화에 크게 몰입이 안되다보니 스릴러라는 외피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었던 것 같네요. 솔직히 도준의 결백/살인이나 농약 박카스도 저에겐 그다지. 모성에 대해 좀 삐딱한 생각을 원래부터 하고 있어서 그랬나봐요. ^^; 댓글 감사합니다.

  8.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배트맨 2009.06.11 16:06 신고

    상당히 만족스럽게 보고 왔습니다. 완성도 측면에서는 <박쥐>보다는 <마더>에 손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요. ^_^

    진구와 어머니의 관계가 특히 좀 이상하다고 느껴진 부분이기는 했었는데, 감독이 별 다른 묘사를 안해서 코멘트를 좀 들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 밖에 범인도 그렇고요. 플래시백으로 보여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노인의 이야기를 빌은 건데, 도준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것은 조금 다르더군요. 문제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파악하기가 좀 애매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 날 문 틈 사이로 도준을 매섭게 노려보던 노인의 그 눈이 의미한 것은 무엇이였을까요?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6.13 15:29 신고

      <박쥐>가 좋아 <마더>가 좋아? 라고 묻자
      "나안 뚤 다"라고 베컴이 답했다고 합니다. ㅎㅎ

      나름 반전이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 자체에 그닥 큰 방점을 찍는 작품은 아니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진실 보다는 모성에 대한 다른 측면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고요 이 부분이 잘 받아들여지신 관객분들을 꽤 감흥이 크셨던 것 같아요. 박찬욱 감독의 97년작 <3인조>를 보면 자기 아이를 수면제 먹여 재워놓고 짜장면 배달부와 놀아나는 엄마도 나오니까 상식을 뒤엎는 주제와 내용 측면에서는 역시 박찬욱 감독이 한참 위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관객들이 그걸 그다지 좋아라 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

  9.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지재이 2009.06.12 08:24 신고

    저는 아예 첨부터 악의적인 스포일러 도배질의 피해로 결말을 알고 보았지요.
    그래도 영화는 재미고 흥미롭더라구요. 반전을 위한 영화가 아닌 애시당초
    반전도 쉽게 풀리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오프닝과 엔딩을 보면서 거의 넘어가버렸죠. 너무 놀랍고도 좋아서 ㅎㅎ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6.13 15:33 신고

      정말 좋은 영화들은 내용을 다 알고 보더라도 결국 재미있게 볼 수 있더군요. 내용을 모르거나 엉뚱한 기대나 예상 없이 보는 편이 훨씬 나은 것이긴 합니다만.

      스릴러의 구조를 갖고는 있으나 말씀처럼 그 자체에 크게 공을 들이고 있지는 않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보는 동안 의외로 술술 풀린다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좀 아쉽게 생각되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