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감독 박찬욱 (2009 / 한국)
출연 송강호, 김옥빈, 신하균, 김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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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러적인 요소가 중심일 줄 알았는데 그 보다는 범죄 드라마에 가까운 내용을 보여준다. <친절한 금자씨>에 등장했던 백 선생(최민식)은 복수 3부작 내에서 유일하게 '죽어 마땅한' 극악의 캐릭터였는데 <박쥐>는 드디어 그 범죄자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상현(송강호)의 대사처럼 피를 먹는 행위도 일종의 취향 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백 선생이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서 살해하고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놓고 두고두고 즐기는 것 역시 일종의 취향인 것 아니겠는가. <친절한 금자씨>에서 백 선생이 밥을 먹다말고 부인(이승신)을 강간했던 바로 그 주방 겸 거실에서 <박쥐>의 등장 인물들은 간통과 패륜을 저지르고 '한 집안에 풍지박산이 나던 말건' 마작에 몰두하기도 하며 심리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도 한다.

송강호의 성기노출 장면은 맥락상 그 의미가 충분히 이해되기는 하지만 확실히 급조된 삽입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서 이런 김기덕식의 끼워넣기라니. 하지만 "그럼 이 장면을 뺐어야 했을까요?"라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박쥐>가 불편하다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럼 이제까지 박찬욱 감독 영화를 칭찬했던 건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물론 감독의 전작을 좋아했었지만 이번 <박쥐>는 영 불편하다는 분들께만 해당) 묻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과속 스캔들> 같은 영화만 환영하시겠다는 말씀이냐는 거다. 영화를 보는 데에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허탈함과 짜증스러움이 아니던가. 만든 이의 취향을 제대로 판가름하지 못할 정도로 영화가 허술하게 만들어졌을 때 느끼게 되는 짜증스러움 말이다. 박찬욱 감독은 최소한 만든 이의 취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만들어주고 있고 관객인 나로서는 이런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감독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박찬욱 만만세.

체력적으로 꽤 피곤하기는 했다. 이런 걸 보면 나도 이젠 정말 나이를 먹었구나 싶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코믹하고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꼽고 싶은 명대사는 "드세요"다.




<박쥐>에는 섹스도 있고 살인도 있고 벰파이어도 있다. 벰파이어 영화로서 <박쥐>에서는 역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태주(김옥빈)을 상현이 자신의 피로 다시 살려내는 장면이 가장 빛났다. 오직 하나님(예수)만이 갖고 있다는 부활의 권능을 하나님도 아닌 것들이 발휘하고 있으니 벰파이어라는 존재는 확실히 불경스러운 취급을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사랑하는 이를 다시 살려내고자 하는 심정은 인류 보편의 것이 아니던가. 그와 같은 가장 인간적인 심정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만들어진 벰파이어 영화들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박쥐>는 그런 감정의 표현에 가장 큰 방점을 찍고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상현이 태주를 살려내는 장면 만큼은 훌륭했다는 얘기다. 자기 피를 내주기 위해 반복적으로 자해하는 상현의 단호한 표정, 그것을 표현해낸 송강호의 연기가 이 영화의 백미다. 그래서 이 장면까지만 보여주고 영화가 끝났더라도 충분히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13 : Comment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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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진사야 2009.05.09 14:34 신고

    앗 드디어 보셨군요 +_+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지금까지 두 번을 봤는데 한 번 더 도전해 봐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를 간만에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단 한 번 볼 때마다 머리에 가해지는 중력이 상상 이상;;이긴 했지만요.
    '범죄자의 입장' 에서 영화를 보신 것 같군요. 영화 속 요소들을 대상으로 [박쥐]를 읽으신 분들은 많지만 이렇게 어떤 입장을 놓고 읽으시는 분은 보기 힘들군요.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은 것 같습니다. 이 글을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09 22:13 신고

      저에게도 한번 정도는 충분히 더 볼 만한 작품이네요. 여러 텍스트들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다시 보더라도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박쥐>의 주인공들은 일반적인 정서로는 쉽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캐릭터들도 아니고 연출도 그럴 의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같은 벰파이어라고 해도 <렛 미 인>의 주인공들에겐 관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죠. 하지만 주인공에게 완전하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어야만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아니니까요. ^^

  2.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cutnpaste 2009.05.09 16:31 신고

    저도 다시 보려고요. 겸사 겸사해서 책으로 나온 소설 박쥐 역시.

    박찬욱이 만들어내는 텍스트는 언제나 여러 방면으로 해석할 가능성을 던져줘서 즐겁죠.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09 22:17 신고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원작으로 소개된 에밀 졸라의 소설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더군요. 벰파이어 영화이기도 하지만 결국 에밀 졸라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말씀하신 그 책은 소설 버전으로도 나온 <박쥐>인 것 같은데 책으로까지 읽으면 정말 깊게 빠져들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담겨있는 주제도 많고 해석의 여지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덕분에 관객들간에 확연한 취향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박찬욱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ㅎㅎ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giantroot 2009.05.09 17:43 신고

    평이 극명하게 갈리던데,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단 이야기가 너무 덜컹거리고 불균질해서 걸작이라는 생각은 안들었습니다. 솔직히 걸작보다는 괴작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여튼 저희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봤는데... 부모님의 반응은 '이 뭥미?'였습니다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09 22:23 신고

      모두에게 환영받는 유형의 걸작을 지향했던 건 분명 아닌 것 같고요, 괴작으로 남겨지더라도 내가 원하는 영화로 만들겠다는 의지는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만듬새가 형편없어서 괴작은 아니고 사람들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만한 톤으로 풀어낸 괴이한 이야기 정도 아닐까요.

      태주의 심리 변화나 마지막에 삽입된 노출씬 같은 것들이 다소 거친 느낌을 줄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제 경우 '이야기가 너무 덜컹거리고 불균질하다'고는 못느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보셨다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싶고요, 같이 보러간 가족이 '이 뭥미'라면 그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 건 저도 종종 경험하는 일이네요. ㅎㅎ

  4.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배트맨 2009.05.09 22:11 신고

    나이를 드셨다니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언제나 20대 아닙니까! 저나 신어지님이나 늘 언제나 20대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너무 날로 먹으려 하는 건가요? T.T

    저도 영화 좋았습니다. ^^*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 불편하다는 분들도 이해는 되요. <공동경비구역>이나 <올드보이>를 본 후 박찬욱 감독에게 반한 관객이라면, 이번 작품은 좀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많이 바쁘셔서 좀처럼 여유가 없으신 것 같으신데 좋은 영화 많이 보셨으면 합니다. 건강 챙기시고요. 나이를 먹으니 전과 다른 것중 하나가, 체력의 회복이 상당히 느려지더라고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현실이 그런 것 같습니다. orz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09 22:25 신고

      아 체력 관리 이야기를 하시니까 정말 요즘 들어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부분이라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네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뭔가에 의욕도 가질 수 있고 또 호의적인 태도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배트맨님도 좋은 영화 많이 보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랄께요. ^^

  5.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하민혁 2009.05.09 23:43 신고

    흠.. 저는 이 영화 보면서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같은 류라고 봤는데 님의 경우는 평이 극과 극이네요. ^^ 무튼, 내가 같은 류라고 생각한 이유는 둘 다 자기 문화 비틀어서 호기심으로 팔아먹기 류로 보였기에 하는 말입니다. 슬밀의 무대나 박쥐의 무대나 그게 어디 정상적인 무대인 건 아니잖어요. 장사질하려고 제멋래도 비튼 거지. 내만 그렇게 보는 건가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10 11:10 신고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박쥐>를 한통속으로 묶는 건 확실히 독보적인 시선이신 것 같습니다. 두 작품 모두 판타지 영화이고 자기가 속한 사회와 문화 요소들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비하면 <박쥐>는 반드시 한국 상황이라서 가능했던 설정인 것은 아니라고 봐야죠. 예를 들어 한복집 풍경은 분명 대단히 한국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다른 나라의 어느 직종으로 바꾸어도 이야기의 흐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두 작품 모두 사실적인 묘사와는 다소 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런 비틀기를 통해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지나치게 순진하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지배계급이 피지배층에게 계속 반복주입하곤 하는)로 연결되는 반면 <박쥐>는 그 반대로 비관주의에 가까우면서 인간의 조건과 삶에 대한 다층적인 고찰을 기반으로 많은 질문들을 남겨주기 때문에 저에게는 완전히 다른 감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6.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에코♡ 2009.05.10 00:07 신고

    전 오늘 보고 왔는데요..

    다른건 둘째치고,.이 영화 보고 났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던지....ㅋㅋㅋ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10 11:18 신고

      러닝타임도 꽤 길었던 데다가 시종일관 몸에 힘을 주면서 보게 만드는 작품이었죠.
      영화도 이쯤되면 체력이 관건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도 해요. ㅎㅎ

  7.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몬스터 2009.05.11 09:56 신고

    오랜만에 보는 리뷰포스트네요 ^^
    많이 기다렸는데 ㅎㅎ
    박쥐 참 괜찮은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욕망의 출발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도 고민하게 만드는...
    그래서 Thirst라는 영문제목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구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13 21:09 신고

      흐흐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실망감을 표현하시는 분들도 많다지만 제 주변에는 이렇게 만족스럽게 보신 분들이 적지 않으시네요. 아주 보편적인 스토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였다고 생각해요. ^^

  8.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스테판 2009.05.12 01:53 신고

    개인적으로는 혹여나 누군가 박찬욱 감독의 필모 중 그의 영화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이 영화 <박쥐>를 꼽을 것 같습니다^^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13 21:15 신고

      박찬욱 감독은 변함없이 삶과 구원에 관한 주제를 탐구하고 있을 따름이라고 생각됩니다. <박쥐>는 그런 박찬욱 감독 영화의 대표작으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고요. ^^

  9.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센~ 2009.05.16 00:21 신고

    저는 피곤한 것도 그렇지만; 중간 중간 장면이 좀;;;;보고있기가;
    피토하는 장면때문에 ㅡㅡ; 암튼 그런데 자꾸만 신하균의 얼굴이 떠올라서..
    밤에 문득 무섭기도 하다는..; 신어지님 말씀처럼..저도 살리는 장면에서 끝났으면;;
    그랬음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송강호의 성기노출은...생각보다 시시했어요 ㅡㅡ;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16 14:05 신고

      깐느에서 상영할 때도 구토를 하거나 기절해버린 기자들이 있었다더군요. 그럴만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의외로 비위가 많이 약하신 분들이 있으신 듯. 송강호 노출은... 제가 생각해도 그 정도로는 성에 안차셨을 것 같아요. ㅎㅎ

  10.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지재이 2009.05.16 15:41 신고

    이런 저런말이 많지만 저에겐 짜릿한 영화체험이 아니였나싶어요.
    박찬욱 만만세에 저도 손 ^^
    박쥐는 박찬욱표 영화의 집대성이 아닐까싶습니다.
    글 잘보고 갑니다 ㅎㅎ

  1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지규 2009.05.18 09:08 신고

    박찬욱이 진리인 겁니다. 박찬욱 만만세!
    그나저나 러닝타임이 짧단 생각 들지 않으셨나요? 저는 보고 나오면서 자꾸 짧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정작 러닝타임은 2시간 13분. 좀 더 길었으면 어땠을까 궁금해요.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9.05.24 11:53 신고

      영화가 엄청 재미있거나 몰입이 많이 되면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지곤 하죠. 저는 좀 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서 참 좋다는 정도였어요. 아무큰 다시 한번 박찬욱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