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TV에서 녹화 방송을 해주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 내가 아는 영화와 배우들이 후보로 거명되며 하나씩 소개되고 또 수상자가 발표되어 단상에 올라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무척 즐거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시상식의 가장 마지막에는 항상 낯선 사람들이 서너 명씩 우루루 올라가 상을 받는 모습에 약간 의아해하기도 했었다. 이들은 올해의 영화, 즉 영화상의 작품상 부문을 수상한 수상작의 제작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유명 배우나 기타 유명인이 아닌, 그 얼굴과 이름들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남여 주연 배우들과 감독들의 모습을 보며 점점 고조되던 영화상 시상식의 맨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항상 낯선 얼굴들의 몫이 되곤 했었던 거다.
작품상은 '영화의 존재 의미'에 대한 질문에 답이 되어주는 작품에 주어지는 상이라고 생각된다. 반면에 감독상은 '얼마나 영화를 잘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 앞에 가장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인 작품의 연출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따라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다지 잘 만들어지도 않은 것 같은 영화에게도 작품상 수상의 기회는 주어질 수도 있으며, 작품상의 후보에 오른 영화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감독상이나 다른 기술적인 부분에도 후보로 선정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다소 투박하게 만들어진 영화라고 할지라도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왜 영화를 만들고, 왜 영화를 보는가에 대한 해답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건 작품상 시상의 필요충분한 이유가 된다.
각 영화상의 최고상인 작품상 부문은, 따라서 그 영화상의 특색을 판가름하는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나 감독의 연출이라는 것은 잘하고 못하고의 일반적인 기준이 있는 반면에 올해의 영화, 최고의 영화,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다양한 영화상 주최 측의 주관적 선택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깐느 영화제는 '영화'라는 예술 장르의 발전에 공헌했다고 판단되는 작품을, 아카데미 시상식은 휴머니즘이나 작품 전체적인 완성도를 통해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해준 작품을 선택하는 특색이 있는 것 같다. 그외 비평가 협회, 독립영화 협회, 또는 기타 인권 단체 등 영화상을 제정하고 시상하는 기관의 정체성에 따라 작품상의 선정 기준은 달라지게 된다. 바꿔 말하자면, 작품상 수상작이란 곧 해당 영화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작품상을 수상하는 사람들이 수상작을 연출한 감독(Director)가 아닌 제작자(Producer)들이어야 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영화 감독이 제작도 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영화가 그 작품을 처음 만들자고 했던 사람, 그리고 그 작품의 완성을 실무적으로 가능케한 사람이 곧 제작자이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가 있었던 거죠? 그 분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이런 경우에 찾아야 할 사람이 바로 그 영화의 제작자다. 물론 영화가 그야말로 너무 잘 만들어져서, 즉 연출이 너무 잘되어서 감동적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 경우엔 영화 감독이 칭찬을 받아야겠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영화의 감동은(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감동도 다르겠지만) 영화를 잘 만들고 못 만들고의 문제 그 이전의 문제다.
영화의 제작은 좋은 영화가 존재할 수 있게 한 '기회'에 대한 이슈이고, 연출은 좋은 영화를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완성'에 대한 이슈다. 영화상의 작품상과 감독상은 바로 그렇게 구분된다.@
2005.12.03 @ blog.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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