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보이
감독 정지우 (2008 / 한국)
출연 박해일, 김혜수, 김남길, 김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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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작품입니다. 일제 강점기라고는 하지만 민초들의 고난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조선총복부에서 근무하는 오렌지족 서기관의 시각에서 다뤄지다보니 전반적인 때깔이 너무 좋은 건 그렇다쳐도 이따금 회상 장면에서나 써먹어야 할 뽀샤시 화면을 빈발하고 있는 점이나 지나치게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재즈바에서의 노래와 춤 장면들도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박해일이 연기한 이해명의 사랑도 후반부에 폭탄 자켓에서 태극기를 뽑아들었을 때에야 그 진정성을 알아볼 수 있는 정도로 시종일관 가볍기만 하고 특히 조난실 역의 김혜수는 참 미안한 말이지만 <모던보이>가 과유불급의 영화가 되는 데에 가장 중심 역할을 하는 캐스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하여튼 김혜수는 너무 심혈을 기울여서 연기를 하면 딱 장미희가 되어버린다니까요. 김혜수가 노래도 잘했고 춤도 잘 췄고 조난실의 상대역인 이해명을 끝까지 헷갈리게 만드는 미스테리한 캐릭터 연기를 훌륭히 해냈다는 건 인정하지만 김혜수의 조난실은 민족주의 마케팅이 아닌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고자 했던 <모던보이>를 어느 한쪽으로 기우뚱하게 만드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어느 배우가 특정 배역에 어울렸다 안어울렸다는 얘기만큼 주관적인 호불호의 영역도 따로 없지만 <모던보이>에서 조난실 역에 김혜수는 역시 별로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문제를 삼아야 할 부분은 김혜수를 조난실 역에 캐스팅할 만큼 영화 전반의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 정지우 감독의 실책입니다. 이지민 원작 소설 <모던보이 -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2000)을 각색하면서 정서적인 흐름의 전달 보다 시각적인 효과에 너무 큰 비중을 두었던 것이 <모던보이>를 과유불급의 영화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 하겠습니다. 애초에 <모던보이>는 일제 강점기의 경성을 재현해야 한다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안고 시작한 작품이고 이는 뛰어난 컴퓨터그래픽 기술에 의해 충분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그래픽으로 만든 자동차 문짝이 갑자기 사라지는 실수가 눈에 띄고 있긴 하지만요) 그러나 관객이 원하는 것은 한국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견본시나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듯한 복고풍 의상의 패션쇼가 아니지 않습니까. <모던보이>는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시각적 요소들로 인해 미스테리와 멜러가 혼재하다가 끝내는 운명의 엇갈림에 가슴을 쓸어내렸어야 할 결말 부분의 정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만 영화가 되었습니다. <해피엔드>(1999)와 <사랑니>(2005)를 통해 미시적인 감정의 결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장인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평가받았던 정지우 감독이지만 <모던보이>는 애초부터 그 스케일 자체가 감독의 스타일과는 잘 맞지 않는 다소 버거웠던 작품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평소 정지우 감독의 방식대로 작품을 다룰 수 있었다면 이안 감독의 <색, 계>(2007)에 버금가는 좋은 시대물이자 멜러 드라마가 될 수도 있지 않았겠냐는 강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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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어지 Trackback 0 : Comment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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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댕글댕글파파 2008.10.13 10:24 신고

    이게 사랑이야기인지 아니면 독립군의 이야기인지 보는 내내 헷갈리더군요. 때깔과 여자에게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춤추는 여자 한 번 보고 눈에 블라인드 처리 해서 나중엔 목숨까지 버릴 각오를 하는지 의아하기도 하고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10.19 00:26 신고

      확실하게 사랑 이야기로 갔어야 했는데 관객들을 납득시키는 부분에서 다소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외형에 들어갔던 노력의 일부를 주인공들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 더 사용했어야 했다고 생각되네요.

  2. addr | edit/del | reply 한나 2008.10.19 00:39 신고

    원래 소설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잘 극복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만 놓고 생각 해보면 훨씬 소설 보다 마무리를 잘 했다 싶기도 한데. 그래도 역시나, 영화를 보고 나오는 심정은, 내 정지우 어디갔니, 내 정지우 돌리도, 였습니다. ;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10.19 02:07 신고

      원작 자체가 그리 명쾌한 작품은 아니었나 보군요. 내용상 <색, 계>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전반적으로 외화내빈의 영화였어요. 그나마 정지우 감독이라서 이 정도나마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역시 정지우 감독은 속히 똘아오라, 라고 해야겠죠. ㅋ

  3. addr | edit/del | reply BlogIcon 센~ 2008.10.19 02:51 신고

    전 김혜수는 타짜 정마담..딱 그거뿐; 그닥 맘에드는 연기하는 연기자도 아니라는..박해일땜에 보고싶었지만 김혜수가 제 발목을 잡았어요.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의 조합은 영 별로거든요..;; 김혜수가 관능적이면서 글래머러스한..몸이라 박해일하고는 등치도 안맞고..아무튼;; 그닥 땡기지가 않더라구요. 역시 안보길 잘했던..;;

    전 김혜수의 가끔 그 엥엥거리는 목소리가 정말 부담스러워요. 특히 제일 짜증났던게 신라의달밤인가 그 영화에서; 최고 짜증...;; 그나마 좀 나았던건 두번째 엄마 정도? 근데 참 밑도 끝도 없던 스토리전개가 황당했던;;(아니 그런 뻔한 얘기를 영화로까지 만들 필요가 있던거야? 라는 게 제 속마음..)

    • addr | edit/del BlogIcon 신어지 2008.10.19 16:34 신고

      김혜수는 거의 성우 같은 목소리 연기를 하는데요 그게 오히려 너무 연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합니다. 최근에 <좋지 아니한가> 등에서 기존의 이미지와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는데 <모던보이>에서는 다시 힘이 너무 들어갔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박해일과의 조합도 영 어울리지 않는 편이어서 멜러의 느낌이 거의 전달되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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