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09 12:00
이번 부산 국제영화제에서는 2박 3일간 머무는 동안 모두 네 편의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진작부터 예매 전쟁에 뛰어들 생각을 했었더라면 상영작 리스트를 꼼꼼히 살펴서 관심 있는 영화들을 미리 골라놓을 수 있었을텐데 이번 부산행은 그럴만한 준비 시간이 없었던 데다가 영화 보다는 가볼만한 부대 행사를 중심으로 스케줄을 꾸리다 보니 결국 그날 그날 남은 시간에 관람이 가능한 영화를 한 두 편씩 보는 식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함께 했던 일행과 티켓 카탈로그를 열심히 뒤지며 볼만한 영화를 골라보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괜찮겠다 생각되는 영화들은 이미 매진이 되어 있더군요.
결국 부산에 도착한 첫 날 <힌드미스> 한 작품만 제대로 입장권을 발권받아 감상했을 뿐, 나머지 세 작품은 예매/발권 절차 없이 프레스 카드만 제시하면 바로 볼 수 있는 '부산 스크리닝' 상영작들로 남은 영화 관람 시간을 채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많은 상영작들 가운데 고작 네 편이라니, 허탈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물리적으로 그 많은 영화들 다 본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니까 그리 큰 미련을 갖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부산 스크리닝' 상영작이라고 해서 다른 일반 상영작들에 비해 결코 모자라거나 했던 것도 아니니까요.
결국 부산에 도착한 첫 날 <힌드미스> 한 작품만 제대로 입장권을 발권받아 감상했을 뿐, 나머지 세 작품은 예매/발권 절차 없이 프레스 카드만 제시하면 바로 볼 수 있는 '부산 스크리닝' 상영작들로 남은 영화 관람 시간을 채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많은 상영작들 가운데 고작 네 편이라니, 허탈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물리적으로 그 많은 영화들 다 본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니까 그리 큰 미련을 갖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부산 스크리닝' 상영작이라고 해서 다른 일반 상영작들에 비해 결코 모자라거나 했던 것도 아니니까요.
힌드미스 (Хиндемит / Hindemith, 2008)
불가리아 / 안드레이 슬라바코프 감독 / ★★☆☆☆
성공한 두 부부가 새로 지어진 이웃집에 이사를 오면서 시작되는 세태 풍자극입니다. 구소련 체제가 붕괴된 이후 동유럽권의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삶의 변화를 경험했을텐데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 대부분은 "옛날에는 무엇을 했었는데 지금은 이걸 하고 있다"는 식의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TV에서는 언제나 왜소증 남자를 등장시키는 힌드미스 상표의 다양한 제품 광고가 이어집니다.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서로를 비교하던 이웃집 두 부부는 결국 갈등 상황을 넘어 참극을 맞게 되는데, 그렇다고 삶 자체가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쿠카씨의 조언 (Herrn Kukas Empfehlungen / Mr. Kuka's Advice, 2008)
폴란드, 오스트리아 / 다리우스 가예브스키 / ★★★☆☆
전날의 피로 때문에 그만 '영화 보다가 한 시간 잠들기'를 해버린 작품입니다. 폴란드 청년이 첫 해외 여행지로 오스트리아를 선택하는데 이웃집 아저씨 쿠카씨의 부탁으로 누군가에게 보석을 전달하게 됩니다. (잠에서 깨어보니) 전통 인형 가게에서 일하며 빈에서 눌러 살게 된 주인공은 같은 집에서 사는 친구들로부터 깜짝 선물도 받고 못된 놈들에게 돈을 빼앗겨 마음 고생도 하지만 결국 신비로운 여인과 함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얻게 되더군요. 영화를 제대로 못본 탓도 있습니다만 일종의 성장 영화이면서도 주제 전달은 다소 모호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음악의 사용이 탁월하고 그외 전반적인 만듬새가 딱 젊은 '유럽 영화'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카운터페이터>(2007)에서 가장 저항적인 캐릭터인 브로거를 연기했던 오거스트 딜이 주인공의 친구로 출연해 섬세하면서도 특유의 광기어린 연기를 보여줍니다.
시집 (Make Yourself At Home / Fetish, 2008)
미국, 한국 / 손수범 감독 / ★★☆☆☆
송혜교가 출연한 한미 합작 영화이지요. 개봉을 앞둔 강이관 감독의 <사과>(2004)를 비롯해 98년 이후 줄곧 촬영 감독으로 활동해왔던 손수범 감독의 이력 덕분인지 화면이 무척이나 좋더군요. 영화는 유명한 무당의 딸로 그 자신 역시 신내림을 받은 숙희(송혜교)가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하여 뉴저지에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국인 관객 입장에서는 자연히 송혜교가 연기하는 숙희를 중심으로 영화를 따라가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숙희가 타자화되면서 일종의 심령 스릴러류로 변모하고 맙니다. <사이에서>(2006)로 시작했으나 <위험한 독신녀>(1992)로 줄거리를 이끌어나가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다 다소 뻔하고 지루한 후반부를 거쳐 마지막 한 장면, 대사 한 마디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끝을 맺는데요, 마치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처지를 상징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운명을 거슬러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던 숙희의 심리 묘사에 끝까지 집중하는, 좀 더 사실적인 영화였더라면 좋았지 않았겠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퍼니 게임>(1997)에 출연했던 아르노 프리쉬가 이웃집 남자 존으로 출연해 무척 반가웠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쓰 홍당무 (Crush and Blush, 2008)
한국 / 이경미 감독 / ★★★★☆
조만간 개봉할 영화이기 때문에 굳이 영화제에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전후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관객 입장에서 작품 자체에 대한 만족도는 가히 최고였다고 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고고 70>이 한국 음악영화사를 다시 썼다면 <미쓰 홍당무>는 한국 코미디 여성영화사를 다시 쓴 작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흥분하면 얼굴이 빨갛게 되어버린다는 주인공 캐릭터의 설정이나 그에 상응하는 제목은 그저 낚시질에 불과합니다. 그런 설정이 영화의 내러티브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에 상관없이 선생님들이 주인공이긴 합니다만 일종의 학원물이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거의 홍상수 영화 수준의 막나가는 매우 부도덕한 전개가 그저 통쾌하고 즐거울 따름입니다. 도대체 어쩌자고 일을 저렇게 벌리기만 하는가 싶었지만 적당히 대중적인 수준에서 봉합하는 놀라운 센스까지 발휘했으니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만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이경미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2005)에 스크립터로 참여한 바 있었는데 박찬욱 감독이 <미쓰 홍당무>의 제작과 공동 각본을 맡아주었고 봉준호 감독은 무슨 인연인지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를 떠올릴 만큼 디테일이 강한 아주 인상적인 장편 데뷔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 <미쓰 홍당무>입니다. 개인적으로 등장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을 살짝 따라가지 못하고 마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작품 전체를 즐기는 데에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개봉관에서 한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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